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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을 위한 기도
오늘 하루의 숲속에서 제가 원치 않아도 어느새 돋아나는 우울의 이끼, 욕심의 곰팡이, 교만의 넝쿨들이 참으로 두렵습니다. 그러하오나 주님, 이러한 제 자신에 대해서도 너무 쉽게 절망하지 말고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어가는 꿋꿋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게 하소서. 어제의 열매이며 내일의 씨앗인 오늘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때는 어느날 닥칠 저의 죽음을 미리 연습해 보는 겸허함으로 조용히 눈을 감게 하소서. '모든것에 감사했습니다' 2. 찔레꽃 아프다 아프다 하고 아무리 외쳐도 괜찮다 괜찮다 하며 마구 꺽으려는 손길 때문에 나의 상처는 가시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남모르게 내가 쏟은 하얀 피 하얀 눈물 한데 모여 향기가 되었다고 사랑은 원래 아픈 것이라고 당신이 내게 말하는 순간 나의 삶은 누구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3. 집을 위한 노래 1 여행길에서 집에 돌아올 때마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 별이 내리는 저녁 내가 끌고 오는 나의 그림자도 낯선 듯 반갑고 방문을 열면 누군가 꽂아놓은 분홍 패랭이꽃 몇 송이 꽃술을 흔들며 웃는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책장 속의 책들도 손 흔들며 인사하는 나의 방 지친 몸을 침대에 눕히고 두 눈을 감으면 사는 게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 잘못한 게 많지만 천사가 되고 싶은 야무진 꿈 하나 가슴 깊이 심는다 2 이사를 자주 다녔던 어린 시절 <집 없는 소녀>를 밤새워 읽으며 많이 울었다 조금씩 자라면서 나는 넓은 집이 되려 했다 생각이 짧고 마음 좁은 나지만 많은 이가 들어와 쉴 수 있는 따뜻한 집 한 채 되고 싶었다 더이상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를 듣지 않으며 모진 말로 나를 외롭게 하는 이도 새롭게 이해하고 용서하며 웃음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오늘도 계속하는데...... 진정 다른 이들을 향하여 활짝 열린 집이 될 수 있을까? 내게 묻는 순간부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나를 모르는 내가 불안하여 잠시 하늘을 본다 3 땅속의 집은 어둡고 답답할 텐데 나 혼자 외로워서 어떡하지? 오늘처럼 비오는 날 이미 땅속에 묻혀 있는 그대의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돌아가야 할 땅속의 집 별이 없어도 흙냄새 정답고 돌과 이끼 그득한 창문 없는 집 그 집에 들어가 울지 않으려면 땅 위의 이 집에서 많이 웃고 즐겁게 살라고 그대가 속삭이는 말을 나는 분명 들었지 뜻없이 외우는 기도보다는 슬픔도 괴로움도 견디면서 들풀처럼 열심히 오늘을 살아내는 일이 더 힘찬 기도가 된다고 비에 젖은 채로 속삭이는 그대의 목소리를 나는 울면서 들었지 4. 꽃 멀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 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 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 향기에 취해서 멀미가 나지. 살아 있는 것은 아픈 것, 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 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 나는 더욱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지. 사람들에게도 꽃처럼 향기가 있다는 걸 새롭게 배우기 시작하지. 5. 아름다운 순간들 마주한 친구의 얼굴 사이로, 빛나는 노을 사이로, 해 뜨는 아침 사이로.. 바람은 우리들 세계의 공간이란 공간은 모두 메꾸며 빈자리에서 빈자리로 날아다닌다. 때로는 나뭇가지를 잡아흔들며, 때로는 텅빈 운동장을 돌며, 바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이 아름다운 바람을 볼 수 있으려면 오히려 눈을 감아야 함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 6. 아무래도 나는 누구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결국은 이렇듯 나 자신만을 챙겼음을 다시 알았을 때 나는 참 외롭다. 많은 이유로 아프고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 곁을 몸으로 뿐 아니라 마음으로 비켜가는 나 자신을 다시 발견했을 때, 나는 참 부끄럽다. 7. 황홀한 고백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 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 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8. 바다새 이 땅의 어느 곳 누구에게도 마음 붙일 수 없어 바다로 온 거야 너무 많은 것 보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예까지 온 거야 너무 많은 말들을 하고 싶지 않아 혼자서 온 거야 아 어떻게 설명할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이 작은 가슴의 불길 물 위에 앉아 조용히 식히고 싶어 바다로 온 거야 미역처럼 싱싱한 슬픔 파도에 씻으며 살고 싶어 바다로 온 거야 9. 해바라기 연가 내 생애가 한번 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여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불치의 병은 사랑 이 가슴 안에서 올올이 뽑은 고운실로 당신의 비단옷을 짜겠습니다. 빛나는 얼굴 눈부시어 고개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은 까만 꽃씨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의 임금이여.. 드릴 것은 상처 뿐이어도 어둠에 숨지지 않고 섬겨살기 원이옵니다. 10. 고독을 위한 의자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으므로, 여럿 속에 있을 땐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고독 속에 헤아려볼 수 있으므로 내가 해야 할 일 안 해야 할 일 분별하며 내밀한 양심의 소리에 더 깊이 귀기울일 수 있으므로, 그래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여럿 속의 삶을 더 잘 살아내가 위해 고독 속에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다. 11. 꽃밭에 서면 꽃밭에 서면 큰 소리로 꽈리를 불고 싶다. 피리를 불 듯이 순결한 마음으로 꽈리 속의 잘디잔 씨알처럼 내 가슴에 가득 찬 근심 걱정 후련히 쏟아 내며 꽈리를 불고 싶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동그란 마음으로 꽃밭에 서면 저녁노을 바라보며 지는 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고 싶다. 남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나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받고 싶다. 꽃들의 죄없는 웃음소리 붉게 타오르는 꽃밭에 서면 12. 제비꽃 연가 나를 받아 주십시오 헤프지 않은 나의 웃음 아껴 둔 나의 향기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웃을 수 있고 감추어진 향기도 향기인 것을 압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내 작은 가슴속엔 하늘이 출렁일 수 있고 내가 앉은 이 세상은 아름다운 집이 됩니다. 담담한 세월을 뜨겁게 안고 사는 나는 가장 작은 꽃이지만 가장 큰 기쁨을 키워 드리는 사랑꽃이 되겠습니다 당신의 삶을 온통 봄빛으로 채우기 위해 어둠 밑으로 뿌리내린 나 비오는 날에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작은 시인이 되겠습니다. 나를 받아 주십시오 13. 풀꽃의 노래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좋아 바람이 날 데려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 하고 싶은 모든 말들 아껴둘 때마다 씨앗으로 영그는 소리를 듣지 너무 작게 숨어 있다고 불완전한 것은 아니야 내게도 고운 이름이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만 서운하지 않아 기다리는 법을 노래하는 법을 오래전부터 바람에게 배웠기에 기쁘게 살 뿐이야 푸름에 물든 삶이기에 잊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14. 다시 바다에서 열여섯 살에 처음으로 환희의 눈물 속에 내가 만났던 바다 짜디짠 소금물로 나의 부패를 막고 내가 잠든 밤에도 파도로 밀려와 작고 좁은 내 영혼의 그릇을 어머니로 채워주던 바다 침묵으로 출렁이는 그 속깊은 말 수평선으로 이어지는 기도를 오늘도 다시 듣네 낮게 누워서도 높은 하늘 가득 담아 하늘의 편지를 읽어주며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내게 영원을 약속하는 푸른 사제 푸른 시인을 나는 죽어서도 잊을 수 없네 15. 별을 보며 고개가 아프도록 별을 올려다본 날은 꿈에도 별을 봅니다. 반짝이는 별을 보면 반짝이는 기쁨이 내 마음의 하늘에도 쏟아져 내립니다.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혼자일 줄 아는 별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으로 제 자리를 지키는 별 나도 별처럼 살고 싶습니다. 얼굴은 작게 보여도 마음은 크고 넉넉한 별 먼 제까지 많은 이를 비추어 주는 나의 하늘 친구 별 나도 날마다 별처럼 고운 마음 반짝이는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16. 어머니의 섬 늘 잔걱정이 많아 아직도 뭍에서만 서성이는 나를 섬으로 불러주십시오, 어머니 세월과 함께 깊어가는 내 그리움의 바다에 가장 오랜 섬으로 떠있는 어머니 서른세 살 꿈속에 달과 선녀를 보시고 세상에 나를 낳아주신 당신의 그 쓸쓸한 기침소리는 천리 밖에 있어도 가까이 들립니다. 헤어져 사는 동안 쏟아놓지 못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바람과 파도가 대신해 주는 어머니의 섬에선 외로움도 눈부십니다. 안으로 흘린 인내의 눈물이 모여 바위가 된 어머니의 섬 하늘이 잘 보이는 어머니의 섬에서 나는 처음으로 기도를 배우며 높이 날아가는 한마리 새가 되는 꿈을 꿉니다, 어머니 17. 단추를 달듯 떨어진 단추를 제자리에 달고 있는 나의 손등위에 배시시 웃고 있는 고운 햇살 오늘이라는 새옷 위에 나는 어떤 모양의 단추를 달까 산다는 일은 끊임없이 새 옷을 갈아 입어도 떨어진 단추를 제자리에 달듯 평범한 일들의 연속이지 탄탄한 실을 바늘에 꿰어 하나의 단추를 달듯 제자리를 찾으며 살아야겠네 보는 이 없어도 함부로 살아 버릴 수 없는 나의 삶을 확인하며 단추를 다는 이 시간 그리 낯설던 행복이 가까이 웃고 있네 18.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지어 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19. 눈 물 새로 돋아난 내 사랑의 풀숲에 맺히는 눈물 나를 속일 수 없는 한 다발의 정직한 꽃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처럼 간절한 빛깔로 기쁠 때 슬플 때 피네 사무치도록 아파 와도 유순히 녹아 내리는 흰 꽃의 향기 눈물은 그대로 기도가 되네 뼛속으로 흐르는 음악이 되네 20. 우산이 되어 우산도 받지 않은 쓸쓸한 사랑이 문 밖에 울고 있다 누구의 설움이 비 되어 오나 피해도 젖어오는 무수한 빗방울 땅 위에 떨어지는 구름의 선물로 죄를 씻고 싶은 비오는 날은 젖은 사랑 수많은 나의 너와 젖은 손 악수하며 이 세상 큰 거리를 한없이 쏘다니리 우산을 펴주고 싶어 누구에게나 우산이 되리 모두를 위해 21. 네에게 띄우는 글 사랑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진정한 친구이고 싶다. 다정한 친구이기 보다는 진실이고 싶다. 내가 너에게 아무런 의미를 줄 수 없다 하더라도 너는 나에게 만남의 의미를 전해 주었다. 순간의 지나가는 우연이기 보다는 영원한 친구로 남고 싶었다. 언젠가는 헤어져야할 너와 나이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친구이고 싶다. 모든 만남이 그러하듯 너와 나의 만남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진실로 너를 만나고 싶다. 그래, 이제 더 나이기보다는 우리이고 싶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현실을 언제까지 변치 않는 마음으로 접어두자. 비는 싫지만 소나기는 좋고 인간은 싫지만 너만은 좋다. 내가 새라면 너에게 하늘을 주고 내가 꽃이라면 너에게 향기를 주겠지만 나는 인간이기에 너에게 사랑을 준다. 22. 사 랑 우정이라 하기에는 너무 오래고 사랑이라 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남이란 단어가 맴돌곤 합니다. 어처구니 없이 난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신을 좋아한다고는 하겠습니다. 외롭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 누구나 사랑할 때면 고독이 말없이 다가옵니다. 당신은 아십니까.. 사랑할수록 더욱 외로와진다는 것을. 23. 친구에게 부를때마다 내 가슴에서 별이 되는 이름 존재 자체로 내게 기쁨을 주는 친구야 오늘은 산숲의 아침 향기를 뿜어내며 뚜벅뚜벅 걸어와서 내 안에 한 그루 나무로 서는 그리운 친구야 때로는 저녁노을 안고 조용히 흘러가는 강으로 내 안에 들어와서 나의 메마름을 적셔 주는 친구야 어쩌다 가끔은 할말을 감추어 둔 한 줄기 바람이 되어 내 안에서 기침을 계속하는 보고 싶은 친구야 보고 싶다는 말 속에 들어 있는 그리움과 설레임 파도로 출렁이는 내 푸른 기도를 선물로 받아 주겠니? 늘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때 빙긋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주던 따뜻한 친구야 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모였다가 어느 날은 한 편의 시가 되고 노래가 되나 보다 때로는 하찮은 일로 너를 오해하는 나의 터무니없는 옹졸함을 나의 이기심과 허영심과 약점들을 비난보다는 이해의 눈길로 감싸 안는 친구야 하지만 꼭 필요할 땐 눈물나도록 아픈 충고를 아끼지 않는 진실한 친구야 내가 아플 때엔 제일 먼저 달려오고 슬픈 일이 있을 때엔 함께 울어 주며 기쁜 일이 있을 때엔 나보다 더 기뻐해 주는 고마운 친구야 고맙다는 말을 자주 표현 못했지만 세월이 갈수록 너는 또 하나의 나임을 알게 된다. 너를 통해 나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기뻐하는 법을 배운다. 참을성 많고 한결같은 우정을 통해 나는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본다. 늘 기도해 주는 너를 생각하면 나는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다. 나도 너에게 끝까지 성실한 벗이 되어야겠다고 새롭게 다짐해 본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 못해 힘든 때도 있었지만 화해와 용서를 거듭하며 오랜 세월 함께 견뎌 온 우리의 우정을 감사하고 자축하며 오늘은 한 잔의 차를 나누자 우리를 벗이라 불러 주신 주님께 정답게 손잡고 함께 갈 때까지 우리의 우정을 더 소중하게 가꾸어 가자. 아름답고 튼튼한 사랑의 다리를 놓아 많은 사람들이 춤추며 지나가게 하자. 누구에게나 다가가서 좋은 벗이 되셨던 주님처럼 우리도 모든 이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행복한 이웃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벗이 되자. 이름을 부르면 어느새 내 안에서 푸른 가을 하늘로 열리는 그리운 친구야... 24. 행복에게 어디엘 가면 그대를 만날까요 누구를 만나면 그대를 보여줄까요 내내 궁리하다 제가 찾기로 했습니다 하루하루 살면서 부딪치는 모든 일 저무는 시간 속에 마음을 고요히 하고 갯벌에 숨어 있는 조개를 찾듯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대를 찾기로 했습니다 내가 발견해야만 빛나는 옷 차려입고 사뿐 날아올 나의 그대 내가 길들여야만 낯설지 않은 보석이 될 나의 그대를 25. 희망에게 하얀 눈을 천상의 시(詩)처럼 이고 섰는 겨울나무 속에서 빛나는 당신 1월의 찬물로 세수를 하고 새벽마다 당신을 맞습니다 답답하고 목마를 때 깍아먹는 한 조각 무우맛 같은 신선함 당신은 내게 잃었던 꿈을 찾아 줍니다 다정한 눈길을 주지 못한 나의 일상(日常)에 새 옷을 입혀 줍니다 남이 내게 준 고통과 근심 내가 만든 한숨과 눈물 속에도 당신은 조용한 노래로 숨어 있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우리의 인사말 속에서도 당신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음으로 또다시 당신을 맞는 기쁨 종종 나의 불신과 고집으로 당신에게 충실치 못했음을 용서하세요 새해엔 더욱 청청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26. 상사화 아직 한 번도 당신을 직접 뵙진 못했군요 기다림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를 기다려보지 못한 이들은 잘 모릅니다 좋아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서로 어긋나는 안타까움을 어긋나보지 않은 이들은 잘 모릅니다 날마다 그리움으로 길어진 꽃술 내 분홍빛 애틋한 사랑은 언제까지 홀로여야 할까요? 오랜 세월 침묵 속에서 나는 당신께 말하는 법을 배웠고 어둠 속에서 위로 없이도 신뢰하는 법을 익혀왔습니다 죽어서라도 꼭 당신을 만나야지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함을 오늘은 어제보다 더욱 믿으니까요 27. 비 내리는 날 잊혀진 언어들이 웃으며 살아오네 사색의 못가에도 노래처럼 비 내리네 해맑은 가슴으로 창을 열면 무심히 흘려버린 일상의 얘기들이 저만치 내버렸던 이웃의 음성들이 문득 정다웁게 빗속으로 젖어오네 잊혀진 기억들이 살아서 걸어오네 젖은 나무와 함께 고개 숙이면 내겐 처음으로 바다가 열리네 28. 부끄러운 고백 부끄럽지만 나는 아직 안구 기증 장기 기증을 못 했어요 죽으면 아무 느낌도 없어 상관이 없을 텐데 누군가 칼을 들어 나의 눈알을 빼고 장기를 도려내는 일이 미리부터 슬프고 끔찍하게 생각되거든요 죽어서라도 많은 이의 목숨을 구하는 좋은 기회를 놓쳐선 안 되겠지만 선뜻 나서지를 못하겠어요 '나는 살고 싶다' 고 어느 날 도마 위에서 나를 올려다보던 생선 한 마리의 그 측은한 눈빛이 잊으려 해도 자꾸 나를 따라다니는 요즘이에요 29. 물망초 오직 나를 위해서만 살아달라고 나를 잊어선 안 된다고 차마 소리내어 부탁하질 못하겠어요 죽는 날까지 당신을 잊지 않겠다고 내가 먼저 약속하는 일이 더 행복해요 당신을 기억하는 생의 모든 순간이 모두가 다 꽃으로 필 거예요 물이 되어 흐를 거예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30. 눈 물 새로 돋아난 내 사랑의 풀숲에 맺히는 눈물 나를 속일 수 없는 한 다발의 정직한 꽃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처럼 간절한 빛깔로 기쁠 때 슬플 때 피네 사무치도록 아파 와도 유순히 녹아 내리는 흰 꽃의 향기 눈물은 그대로 기도가 되네 뼛속으로 흐르는 음악이 되네 31. 꽃마음 별마음 오래오래 꽃을 바라보면 꽃마음이 됩니다 소리없이 피어나 먼데까지 향기를 날리는 한 송이의 꽃처럼 나도 만나는 이들에게 기쁨의 향기 전하는 꽃마음 고운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싶습니다 오래오래 별을 올려다보면 별마음이 됩니다 하늘 높이 떠서도 뽐내지 않고 소리없이 빛을 뿜어 내는 한 점 별처럼 나도 누구에게나 빛을 건네 주는 별마음 밝은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싶습니다 32. 길 위에서 오늘 하루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없어서는 아니 될 하나의 길이 된다 내게 잠시 환한 불 밝혀주는 사랑의 말들도 다른 이를 통해 내 안에 들어와 고드름으로 얼어붙는 슬픔도 일을 하다 겪게 되는 사소한 갈등과 고민 설명할 수 없는 오해도 살아갈수록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나 자신에 대해 무력함도 내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오늘도 몇 번이고 고개 끄덕이면서 빛을 그리워하는 나 어두울수록 눈물날수록 나는 더 걸음을 빨리 한다 33. 고독을 위한 의자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으므로. 여럿 속에 있을 땐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고독 속에 헤아려볼 수 있으므로 내가 해야 할 일 안 해야 할 일 분별하며 내밀한 양심의 소리에 더 깊이 귀기울일 수 있으므로. 그래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여럿 속의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 고독 속에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다. 34. 이제는 봄이구나 강에서는 조용히 얼음이 풀리고 나무는 조금씩 새순을 틔우고 새들은 밝은 웃음으로 나를 불러내고 이제는 봄이구나 친구야 바람이 정답게 꽃이름을 부르듯이 해마다 봄이면 제일 먼저 불러보는 너의 고운 이름 너를 만날 연둣빛 들판을 꿈꾸며 햇살 한 줌 떠서 그리움, 설레임, 기다림...... 향기로운 기쁨의 말을 적는데 꽃샘바람 달려와서 네게 부칠 편지를 먼저 읽고 가는구나, 친구야 35. 꽃샘바람 속으론 나를 좋아하면서도 만나면 짐짓 모른체하던 어느 옛친구를 닮았네 꽃을 피우기 위해선 쌀쌀함 냉랭함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얄밉도록 오래 부는 눈매 고운 꽃샘바람 나는 갑자기 아프고 싶다 36. 누군가 내 안에서 누군가 내 안에서 기침을 하고 있다 겨울나무처럼 쓸쓸하고 정직한 한 사람이 서 있다 그는 목 쉰 채로 나를 부르지만 나는 선뜻 대답을 못해 하늘만 보는 막막함이여 내가 그를 외롭게 한 것일까 그가 나를 아프게 한 것일까 겸허한 그 사람은 내 안에서 기침을 계속하고 나는 더욱 할 말이 없어지는 막막함이여 37. 너와 나는 돌아도 끝없는 둥근 세상 너와 나는 밤낮을 같이하는 두 개의 시계바늘 네가 길면 나는 짧고 네가 짧으면 나는 길고 사랑으로 못박히면 돌이킬 수 없네 서로를 받쳐 주는 원 안에 빛을 향해 눈뜨는 숙명의 반려 한순간도 쉴 틈이 없는 너와 나는 영원을 똑딱이는 두 개의 시계바늘 38. 기쁨 찾는 기쁨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생활 안에서 권태나 우울에 빠져들다가도 재빨리 기쁜 쪽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슬기를 구하고 싶다 매일 보물찾기라고 하듯이 '기뻐할거리'를 찾는다면 불평의 습성도 차츰 달아나고 말테지 기쁨을 찾는 기쁨만으로도 나의 삶은 더욱 풍요로울 것이다 안에서 만드는 기쁨은 늘 힘이 있다 39. 마음 꿈길로 가만히 가면 무엇이나 다 볼 수 있고 어디든지 다 갈 수 있는 내 마음 화가 나고 울고 싶다가도 금방 깔깔 웃기도 좋기도 한 내 마음 꼭 하나인 것 같으면서도 날마다 때마다 다른 빛깔 되는 마음 사진으로 찍어 낼 수만 있다면 어떤 모양이 될까? 정말 궁금한 내 마음 40. 나를 위로하는 날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
[출처] 이해인 수녀님 시(詩) 모음 40選|작성자 kim seong 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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