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50] 한 무덤에 묻힌 韓·中·日 유품
2009년 6월 24일,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최완규 소장과 이문형 책임연구원 등은 전북 고창 봉덕리에서 고분 발굴을 시작했다. 조사 대상인 1호분은 길이가 70m, 높이가 8m에 달하는 큰 무덤이었다. 1차 조사 때 석실 3기와 분구 둘레의 도랑을 확인했기에 추가 조사에 나선 것이다.
8월 말 석실 사이의 선후를 밝히려 조사 구역을 확장하던 중 몇 개의 돌이 삽날에 걸렸다. 주변 흙을 걷어내며 노출하자 크고 작은 돌들이 네모난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이 연구원은 일순간 제단일 가능성을 떠올렸지만 조사 결과 아니었다. 그 아래엔 무덤 덮개돌 2개가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교란 흔적이 없었기에 기대감은 커져 갔다.

도르래를 설치하고 조심스레 체인을 당기자 덮개돌이 조금 들리며 컴컴한 석실 내부가 속살을 드러냈다. 숨죽이며 지켜보던 최 소장은 반짝이는 유물 실루엣을 확인하곤 덮개돌을 원위치에 내려놓으라고 다급하게 지시했다. 오랜 세월 고분 발굴을 주도한 베테랑의 '감(感)'이었다. 그 감은 적중했다.
급격한 환경 변화로 유물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 전문가들과 함께 조사를 이어간 것은 9월 초의 일이다. 덮개돌을 제거하고 내려다보니 석실 안은 1500년 전 무덤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고 바닥 전면에 유물이 쫙 깔려 있었다.
유해에 착장하였던 장신구와 대도, 동제잔과 받침, 중국 남조에서 들여온 청자, 왜에서 만든 제의용 토기, 야장의 심벌 단야구(鍛冶具)가 포함되어 있었다. 압권은 주인공의 발에 신겼던 금동식리였다. 보존 상태가 완벽해 육안으로도 인면조, 봉황 등 화려한 무늬가 한눈에 들어왔다.
조사단은 이 석실이 5세기 후반에 축조되었으며 마한 전통을 계승한 백제 지방사회의 유력자가 묻힌 것으로 추정했다. 한·중·일 세 나라 유물이 한곳에서 발견된 점도 이채로울 뿐만 아니라 출토 맥락이나 보존 상태까지 완벽해 이 무덤은 동아시아 고고학 연구의 기준 자료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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