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플러팅' 시대의 사랑
사랑은 시대를 비춘다.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은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의 속도와 닮아 있다. 요즘 사랑은 빠르다. 좋아요 하나, 하트 이모티콘 하나, “뭐해?”라는 가벼운 메시지 하나로 시작한다. 가볍고 빠르고, 부담이 없다. 마음을 던지되 깊이 던지지는 않는다.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다가가고, 언제든 물러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한다. 우리는 그것을 ‘플러팅(flirting)’이라 부른다.
플러팅은 상대방에게 호감을 표현하거나 친밀감을 형성하려는 언어나 행동을 총칭한다. 어원은 ‘빨리 움직이다’라는 뜻의 고대 영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프랑스어 ‘fleureter’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fleureter’는 매력적인 상대에게 꽃을 흔드는 것처럼 사랑의 신호를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부담 없고, 책임 없고, 언제든 빠져나올 수 있는 관계의 신호. 설레지만 깊지 않고, 진지하지 않기에 다치지 않는 사랑의 형태다.
황순원의 ‘소나기’ 속 사랑은 고백조차 완성되지 않는다. 소년과 소녀는 끝내 사랑을 말하지 못한다. 손을 잡는 일도, 사랑을 확인하는 일도 없다. 그럼에도 그 감정은 우리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전부이자 비를 함께 맞았다는 기억 하나로 서로를 그리워한 수수한 사랑이다.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가 보여준 사랑은 또 다르다. 기억이 하루마다 사라지는 상황 속에서도, 매일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다시 사랑을 이어간다. 기억이 사라지고 사랑은 축적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매일 다시 사랑을 선택한다. 상처를 알면서도 오직 그 사람을 위해 마음을 거는 순수한 사랑이다.
플러팅은 가능성을 소비한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능력, 설렘을 나누는 감각은 인간적인 매력일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선택지’라는 것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출구를 열어놓고 확신을 미루고, 감정의 깊이를 미룬다.
영화 속 사랑이나, ‘소나기’ 속 사랑은 지금의 사랑보다 훨씬 느리고, 훨씬 서툴고, 훨씬 진지하다. 왜 우리는 현실에서는 가볍게 사랑하면서, 마음 한편에서는 깊은 사랑을 갈망할까. 우리 안에는 여전히 ‘온전히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는 것이다! 조건 없이 선택받고 싶고, 비교되지 않고 싶고, 대체될 수 없는 존재.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숭고한 감정이다.
가벼운 시대에 깊은 사랑을 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선택일지 모른다. 그러나 가볍게 스치는 수많은 신호 속에서,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머무는 사랑, 그런 사랑은 우리의 가슴을 가끔 미소 짓게 한다.
안병익 ‘식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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