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의 역사] 83. 영묘사 설화
- 기자명 강시일 기자
- 입력 2026.03.16 11:50
- 수정 2026.03.16 16:05
신라 칠처가람의 하나 영묘사, 선덕여왕을 사모한 지귀의 심화가 절을 태우고, 두두리가 하룻밤에 절을 지었다

신라시대 선덕여왕이 창건했다고 전하는 영묘사는 칠처가람에 속하면서 서민들에게도 문이 열려있었던 칠대가람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 삼국유사를 비롯한 고서에 영묘사와 관련한 지귀설화 등의 이야기가 전해내려오면서 영묘사의 존재를 입증하게 한다.
최근 흥륜사라는 절이 법등을 잇고 있는 터에 영묘사 명문의 기와가 발견되고, 보물로 지정된 얼굴무늬 수막새 ‘신라의 미소’를 비롯한 유물들이 출토되면서 영묘사의 흔적을 확인하고 있다.
선덕여왕과 지귀, 양지의 장육존상, 영묘사의 개구리, 두두리의 영묘사 건설과 같은 설화를 통해 영묘사의 흔적을 더듬어본다.

◆신화전설 1: 지귀의 심화
신라의 수도 서라벌 그 번화한 거리에 늘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사내 ‘지귀’가 있었다. 그는 신분도 미천하고 가진 것 하나 없는 사내였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감히 품어서는 안 될 거대한 불길이 자라고 있었다. 어느 봄날 화려한 장엄구 차림으로 거리를 지나던 선덕여왕의 행차를 우연히 목격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발 위로 살짝 드러난 여왕의 고결하고 자애로운 얼굴을 본 순간 지귀의 세상은 오직 여왕이라는 하나의 빛으로 가득 차버렸다.
그날 이후 지귀는 미쳐버리고 말았다. 밥 한 술 뜨지 못한 채 비쩍 말라가면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라벌 거리를 헤매며 여왕에 대한 짝사랑의 아픔을 달래고 있었다. 그의 슬프고도 지독한 상사병에 대한 소문은 결국 구중궁궐 깊은 곳 선덕여왕의 귀에까지 닿게 되었다. 백성을 사랑했던 여왕은 자신을 향한 한 사내의 맹목적인 마음에 연민을 느꼈다.
“내일 내 영묘사로 불공을 드리러 갈 터이니 그 사내에게 절에 와서 기다리라 일러라.” 여왕의 전갈을 받은 지귀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다. 벅찬 가슴을 안고 영묘사 탑 아래에 엎드려 여왕을 기다리던 그는 며칠 밤낮을 뜬눈으로 지새운 탓인지 그만 까무러치듯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윽고 영묘사에 당도해 불공을 마친 선덕여왕은 탑 아래 웅크리고 잠든 지귀를 발견했다. 여왕은 그의 초췌한 얼굴을 조용히 내려다보다가 자신의 손목에 있던 금팔찌를 빼어 지귀의 가슴 위에 가만히 올려놓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얼마 후 잠에서 깬 지귀는 자신의 가슴에 놓인 찬란한 금팔찌를 발견했다. 여왕이 다녀갔다는 사실, 그리고 끝내 그 고결한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는 뼈저린 회한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사랑과 환희, 절망과 자책이 뒤섞인 감정은 곧 참을 수 없는 뜨거운 열화로 변해 그의 심장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지귀의 몸에서 솟구친 불길은 삽시간에 그의 육신을 태우고, 영묘사의 탑과 전각마저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타올랐다.
육신을 잃고 한 줌의 재가 된 지귀는 결국 서라벌을 떠도는 불귀신이 되었다. 이후 선덕여왕은 지귀의 불길을 달래기 위해 주술이 담긴 글을 지어 백성들의 집 문 앞에 붙이게 하여 비로소 불귀신의 노여움은 잦아들었다.
이에 앞서 혜공스님이 새끼줄을 꼬아 영묘사에 들어가 금당과 좌우의 경루 그리고 남문의 회랑 둘레를 묶었다. 강사에게 이 새끼줄을 3일 뒤에 거두라고 일러두었다. 강사는 이상히 여기면서도 따라 했다. 드디어 3일이 지나 선덕여왕이 절을 다녀간 뒤 지귀가 불을 질러 그 탑을 태우는데 오직 새끼줄로 묶어둔 곳만은 화를 면하였다.

◆신화전설 2: 여왕의 지혜와 옥문지
살을 에는 듯한 찬 바람이 서라벌을 감싸던 깊은 겨울, 영묘사 앞뜰에 자리한 연못 옥문지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겨울잠을 자야 할 개구리 수만 마리가 연못으로 몰려들어 며칠 밤낮을 시끄럽게 울어대는 것이다. 핏발이 선 듯 붉은 눈을 번뜩이며 흉흉한 소리로 울어대는 개구리 떼를 보며 백성들은 불길한 징조라며 불안해 했다. 신하들은 황급히 선덕여왕에게 이 기현상을 보고했다.
조정을 가득 메운 신하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웅성거릴 때 선덕여왕의 얼굴은 호수처럼 고요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던 여왕은 이내 매서운 눈빛으로 무장 알천과 필탄을 불렀다. “지금 당장 정예 기병 이천 명을 이끌고 서라벌 서쪽 외곽의 여근곡으로 달려가라. 그곳에 적병이 숨어 있을 것이니, 기습하여 단 한 명도 살려두지 마라!”
너무도 뜬금없는 하명에 알천과 필탄은 어리둥절했지만 여왕의 단호한 기세에 눌려 즉시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향했다. 여근곡은 산세가 마치 여인의 음부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험한 계곡이다. 반신반의하며 계곡 깊숙이 진입한 신라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왕의 말대로 그곳에는 신라의 심장부를 치기 위해 은밀히 잠입한 백제군 오백 명이 매복해 있었던 것이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있던 백제군은 신라군의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장수 우소를 비롯한 적병 전원이 그 자리에서 몰살당했다.
승전보를 울리며 돌아온 장수들과 신하들은 경외감에 찬 목소리로 여왕에게 물었다. “폐하, 어찌하여 서쪽 여근곡에 적이 숨어 있는 줄 아셨사옵니까?”
선덕여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개구리가 성내어 우는 것은 곧 무기를 든 병사의 형상이다. 또한 옥문(玉門)이란 여인의 음부를 뜻하고, 여인은 곧 음이며, 음은 흰색이고, 흰색은 서쪽을 가리킨다. 그러니 적이 서쪽 여근곡에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남성의 상징이 여인의 음부 속으로 들어가면 죽어버리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니, 적병이 그곳에 숨어 있다면 우리 군사가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신하들은 여왕의 신기루 같은 지혜와 예지력에 감탄하며 땅에 엎드려 인사하며 만세를 불렀다.

◆신화전설 3: 영묘사의 장육존상
영묘사가 그 웅장한 골격을 갖춰갈 무렵 선덕여왕은 신라 최고의 장인이자 신통력을 지닌 승려 양지에게 절에 모실 거대한 불상, 장육존상의 조성을 명했다. 양지 스님은 흙을 빚어 불상을 만들고, 기와를 구워 탑을 쌓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적인 예술가였다. 사람들은 그가 지팡이 끝에 포대를 매달아 두면 지팡이가 저절로 날아가 시주를 받아온다고 믿을 만큼 그를 신인처럼 여기며 존경하고 따랐다.
장육존상은 그 이름처럼 무려 1장6척(약 4.8m)에 달하는 거대한 불상이었다. 불상의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진흙이 필요했다. 양지 스님이 영묘사 뜰에 거대한 작업장을 차리자 서라벌의 백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몰려들었다. 늙은 노인부터 어린아이, 앳된 처녀와 건장한 청년까지, 이들은 부처님을 모시는 공덕을 쌓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마와 온 몸에 땀을 흘려가며 무거운 흙을 이고 져 날랐다.

햇볕은 따갑고, 어깨를 짓누르는 흙의 무게는 고단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탈을 오르내리던 백성들 사이에서 누군가 나지막이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이내 두 명, 세 명의 입을 거쳐 수백 명의 합창으로 변해 영묘사 마당에 울려 퍼졌다.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서럽더라/ 서럽도다 이 몸이여/ 공덕 닦으러 오다”
이 노래 향가는 노동의 고단함과 삶의 애환을 담은 슬픈 탄식이자 동시에 부처님을 위해 땀 흘리는 기쁨을 노래한 장엄한 찬가였다. 이 노래가 바로 바람처럼 퍼져나간 신라의 향가 ‘풍요(風謠)’로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양지 스님은 백성들의 노랫소리에 맞춰 불상에 진흙을 바르고, 그들의 땀방울이 밴 흙으로 부처의 온화한 미소를 빚어냈다. 완성된 장육존상의 얼굴에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서라벌 백성들의 맑은 얼굴이 고스란히 겹쳐 보였다. 백성들의 땀과 양지의 예술혼, 그리고 여왕의 염원이 하나로 뭉쳐진 그 불상은 훗날 영묘사를 가장 빛내는 성보가 되었다.

◆신화전설 4: 두두리 영묘사 세우다
선덕여왕이 칠처가람의 성지 중 하나로 영묘사 터를 정했을 때, 그곳은 건물을 올리기에는 너무도 열악한 환경이었다. 사찰을 세우려 한 자리에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늪과 연못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천 명의 인부를 동원해 돌과 흙을 쏟아부었지만 늪은 마치 거대한 괴물처럼 모든 것을 삼켜버릴 뿐 메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공사는 하염없이 지연되었고 백성들의 탄식은 깊어만 갔다.
달빛조차 구름에 가려 칠흑같이 어두웠던 어느 날 밤이었다. 인부들이 모두 잠든 자정 무렵 늪지 주변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쿵! 쾅! 영차! 으랏차차!” 수만 명의 군사가 한꺼번에 발을 구르는 듯한 진동과 함께 거대한 바위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산더미 같은 흙더미가 허공에서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사람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신라 사람들이 예로부터 두려워하면서도 숭배했던 도깨비, 혹은 신령스러운 귀신 무리인 두두리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인부들은 천막 틈새로 숨죽여 밖을 내다보았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검고 거대한 그림자들이 미친 듯이 연못으로 흙과 돌을 나르고 있었다. 그들은 지치지도 않는 듯 기괴한 웃음소리와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부르며 엄청난 괴력을 발휘했다. 사람이라면 몇 달이 걸려도 하지 못할 엄청난 양의 토목 공사가 도깨비들의 손에 의해 단 몇 시간 만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태양이 떠오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도깨비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조심스레 천막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수백 수천 수레의 흙을 부어도 꿈쩍 않던 그 넓고 깊은 늪이 하룻밤 사이에 단단하고 평평한 대지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사찰의 기초가 될 주춧돌마저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이 기적을 선덕여왕의 깊은 불심이 천지신명과 도깨비들마저 감동하게 한 것이라 여겼다. 이 기적의 대지 위에 세워진 영묘사는 신라에서 가장 신비롭고 영험한 사찰로 칭송받으면서 백성들이 찾는 도량이 되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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