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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에게 泰山이라는 산은?

한문역사 2026. 3. 19. 05:07

중국인에게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 하나를 말하라고 하면 바로 태산이다.

태산처럼 만고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란다.

‘登泰山而小天下(등태산이소천하)’는 그 유명한 공자의 시다.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구나’라는 말이다. 군자가 봉우리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대범함 그리고 큰 포부와 호연지기를 가져야 한다는 뜻 일게다. 맹자의 말씀에,

공자가 동산에 올라와 보니 노 나라가 작고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다고 하셨다 한다.

(登東山而小魯 登泰山 而小天下-등동산 이소로 등태산 이소천하)

필자는 인천에서 뱃길로 17시간여 칭타오(청도)로, 그리고 육로로 여섯 시간 만에 태산입구 대묘에 이르렀다.

이곳이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양사언 시조 속의 그 태산이다. 산의 높이는 1,545m. 우리나라 오대산 높이만한 산인데 왜 중국인들은 태산이란 말만 들어도 흥분하는가. 필자가 이 산에 오르는 날만 해도 태산은 인산인해다. 중국인들은 태산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복을 받는다는 속설을 믿는 것 같다.

필자는 케이블카를 타고 남천문까지 올라갔지만, 등산길은 입구인 천계(天界)라는 문에서 남천문까지 걸어서 7시간이나 걸리는 7,736개의 돌계단길이다. 등산길이 아니라 반 죽음길이다. 정상주변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돌계단으로 이루어졌으니 중국이 석조공화국이란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남천문 위에 자리 잡은 600m의 길이의 천가(天街-Heavenly Street), 이 ‘하늘 길’은 운무 위에 떠올려져 있어 마치 천상의 세계에 온 것 같다. 천국의 경계선이라고 하는 승선방(昇仙坊)에서 정상까지는 직선거리로 70여m. 죽자사자 간신히 정상인 옥황정(玉皇頂)에 이르러 마침내 중국의 제왕들이 하늘에 봉선의식을 행했다는 그 자리에 섰다.

봉선의식(封禪儀式)이란 중국왕조의 국가적 행사 가운데 가장 장엄한 의식으로 황제가 즉위하고 난 후 나라를 태평성대로 만들겠다고 하늘에 올리는 신고식이다. 이것이 역대 제왕이 열광적으로 추구했던 봉선(封禪)이다. 후덕한 황제에게만 허락되었다는데 후덕치 아니한 황제들도 이곳에서 봉선의식을 올리고 민심을 수습했다고 한다. 고대의 제왕 72인이 이곳에서 자신의 공적을 하늘에 아뢰는 봉선을 행하였으나 춘추전국시대 600여 년 동안에는 봉선을 한 제왕이 없었고 황제로서는 최초로 진시황이 이곳에서 봉선의식을 행했다고 전한다. 요순시대의 요 왕과

진시황 등 72명의 황제들이 이곳에 올라와 봉선의식을 치렀고 진시황은 태산에서 제국의 통일을 선포하였다.

사기(史記)의 기록에 의하면 사기의 저자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司馬淡)은 사관으로서 지방에 있었던 관계로 이 봉선의식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이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분사하였다고 한다. 한고조 유방의 다음 황제가 한무제(漢武帝)다. 그는 건국 이래 숙적이던 남만과 북적을 정벌하여 사해를 평정한 뒤 BC 110년에 이곳에서 봉선의식을 올렸다. 정상 바로 밑에 무자비(無字碑)라는 한무제의 거대한 비석이 있다. 이 비석엔 아무 글자가 없다. 그의 업적이 너무도 넓고 높아서 도저히 글로는 표현할 수 없다 하여 글자가 없는 비를 세워 놓고 갔다고 한다.

유학(儒家思想)은 이곳에서 생겨나서 전파된 것이다. 태산은 중화 문명 발전의 축소판이며 중화민족 정신의 상징으로 독특한 역사문화, 문화예술, 종교, 건축, 자연과학 및 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1987년 태산은 자연경관과 함께 세계 문화·자연 복합유산에 등록되었다.

제사를 지내는 곳은 그 꼭대기의 옥황정(玉皇頂)이다. 황제가 이곳에 거동할 때는 수만 명부터 20만 명에 이르는 군사들이 호위하여 동행하였고 황제를 가마에 태워 정상까지 올렸다는 것이다. 필자가 옥황정을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비림(碑林)이 눈앞에 펼쳐진다. 비림이란 비석 숲을 말한다. 태산의 바위란 바위에는 수많은 세월 동안 중국 역대의 제왕, 정치인, 시인, 영웅들이 남긴 글로 가득 차 있다. 현재 태산 일대에 새겨진 석각은 천 8백 여 곳이다. 그 가운데 비석이 8백여 개, 마애석각이 천여 개나 된다. 태산은 거대한 ‘마애석각박물관’인 셈이다. 태산 정상의 석각만 258곳이다. 태산의 칠부 능선엔 중국의 시선인 이태백이 시와 술에 취해 영원히 잠들었다는 바위가 있다.

역설적으로 보면 이만한 환경파괴도 없을 듯싶지만 이런 환경파괴는 오래되면 문화유산이 되는 모양이다. 당나라 시인 유우석은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유명해진다’고 했다. 태산은 있는 그대로 하나의 천연 역사물이며 예술 박물관이라 할 수도 있다. 암벽에는 여러 시대에 걸친 제자(題者), 경문, 시 구 등이 여러 서체로 새겨져 있다. 정상 바로 아래 커다란 절벽에 새겨진 특이한 비가 있다. 이 비에는 당 현종이 봉선한 옥첩내용의 글이 새겨져있다. 금박을 칠한 휘황찬란한 966자의 예서체이다. 이전까지 하늘에 고했던 옥첩은 모두 비밀에 부쳐졌지만 현종이 처음으로 공개했다는 것이다. 천하대관기태산명마애비 (天下大觀記泰山銘摩崖碑) ‘선인들의 비문이 태산의 위엄을 찬양하고 당시대의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구나’

남천문 부근 바위벽엔 ‘부앙무괴적(俯仰無愧적)이란 석각이 있다. 태산에 올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사람을 굽어 수치스러운 일이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뜻이다. 거대한 암반 석에 ‘과연(果然)’이란 두 글자만 커다랗게 새겨넣은 비도 있다. ‘과연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 하냐’ 라는 뜻이다. 중국 인민을 해방시킨 모택동의 시 한 구절이 쓰인 큰 비석도 있다. ‘영웅이라고 불린 인재는 다 갔고 이제 영웅이라고 할 만한 인물은 무산계급만 남았다.’ (수풍류인물환간금조(數風流人物還看今朝)-

공자의 후손들이 공자가 태산에 오른 것을 기념해서 새긴 공등암(孔登岩)도 있다.

주은래의 부인 등영초(鄧穎超)의 글도 있다.

‘登泰山看朝國山河支壯麗 등태산간조국산하지장려 - 태산에 올라 중국의 산하를 내려다보니 조국의 산야가 장엄 하구나.’

‘두보(杜甫 712-770)가 “태산을 바라보며(望嶽)” 라는 그의 시에서 “나도 언젠가 저 정상에 올라 뭇 산들이 얼마나 작은지 한번 굽어보리라會堂菱絶頂 一覽衆山小” 고 썼다. 한가지분명한 사실은 천하에 군림하던 그 어떤 자의 그림자도 이곳에서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오직 그들의 숨결만이 느껴졌다. 그들이 남긴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충정과 영웅호걸들의 호연지기(浩然之氣)만이 내 가슴을 적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