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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11월호) 예종의 아들 齊安大君:내가 왕이 되었어야 했어:

한문역사 2026. 3. 27. 17:30

[화제] 〈폭군의 셰프〉 ‘제산대군’의 모델 제안대군의 삶은…

극중 “내가 왕이 되었어야 했어”… 野史에선 “날마다 풍류”

글 : 김연광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 예종의 유일한 후사인 제안대군은 정말 ‘왕의 때’를 기다렸을까?
⊙ 드라마가 비운의 제안대군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제안대군의 진짜 얼굴은?
⊙ 정실부인 김씨와 이혼, 은밀한 만남, 재결합… 3년간 조정에서 논쟁
⊙ 폐위, 폭정, 탄압 난무한 무오사화(1498년)·중종반정(1506년) 겪고 60세에 사망… 卒記엔 “음식 대접을 일과로”
⊙ 야사 “남녀 교접 몰랐다” vs 풍설 “거짓 어리석은 체한다”

金演光
1962년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同 대학원 정치학 석사 / 《조선일보》 기자, 《월간조선》 편집장, 특임장관실 특임실장, 청와대 정무비서관, 국회의장 비서실장 역임
 
박국재 원작의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 나오는 제산대군(최귀화 분). 역사 속 인물인 제안대군을 모델로 삼았다.
12부로 만들어진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를 보았다. 여주인공 임윤아가 가수 출신 배우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도무지 몰입이 되지 않는 멜로드라마를 한 편도 빠뜨리지 않고 시청한 이유는 하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제산대군’의 모델로 알려진 실존 인물 ‘제안대군’이 어떻게 그려지는지가 궁금해서였다. 제안대군(齊安大君·1466~1526년)은 우리 집안의 사위다.
 
 
  예종의 유일 후사이자 왕위 계승 서열 1위
 
  제안대군은 조선 제8대 왕 예종(睿宗·재위 1468~1470년)의 유일한 후사(後嗣)였다.
 
  예종이 즉위 1년여 만인 1470년 갑자기 승하했을 때 원자(元子) 제안대군은 4살이었다. 조선은 종법(宗法) 체제를 구현한 왕조였다. 원자가 가문과 왕위를 잇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왕위 계승 서열 1위 제안대군이 제껴지고, 사촌이며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월산대군(月山大君·1454~1488년)까지 왕좌에 오르지 못했다. 월산대군의 동생으로 왕위 계승 서열 3위였던 자을산군(者乙山君·1457~1494년)이 13세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성종(成宗)이다. 성종의 장인이 한명회(韓明澮·1415~1487년)다.
 
  할아버지 세조(世祖)의 권신(權臣)들이 아직 드글대던 당시 조정에서 한명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자을산군의 후계 지명을 이끌어 낸 영의정 홍윤성(洪允成·1425~1475년)은 계유정난(癸酉靖難·1453년)때 김종서(金宗瑞·1382~1453년)를 철퇴로 때려 죽인 역사(力士)다. 그 홍윤성을 수하(手下)로 부린 사람이 한명회다.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 한씨(韓氏·1437~1504년)는 수양대군(세조)을 왕위에 올린 계유정난의 1등 공신 한확(韓確·1403~1456년)의 딸이다. 한확의 넷째 누이가 명나라 영락제(永樂帝·재위 1402~1424년)의 후궁, 다섯째 누이가 선덕제(宣德帝·재위 1425~1435년)의 후궁이다.
 
  영락제는 북경에 자금성을 지어 남경에서 천도했다. 나는 김종필 국무총리, 강창희 국회의장을 모시고 자금성을 공식 방문한 적이 있다. 개인 여행을 포함 10번 이상 자금성을 돌아봤다. 그때마다 자금성에서 음울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느꼈다.
 
  “이렇게 웅장하고 화려한 궁궐에서 나는 음울한 분위기를 느낀다. 그 이유가 뭔가?”
 
 

 중국 외교부의 가이드에게 살짝 물어봤다. 그는 “자금성에 올 때마다 나도 섬뜩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 자금성의 비극을 이렇게 들려줬다.
 
  자금성 낙성식을 며칠 앞두고 궁 안에서 환관과 궁녀가 성관계를 하다가 발각이 됐다(거세가 제대로 되지 않은 환관들이 종종 있는 모양이다. 노애처럼). 화가 치민 영락제가 환관과 궁녀 2000명을 비단 끈으로 목 졸라 죽였다. 산더미 같은 시신을 밤새 치우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낙성식은 진행됐다. 자금성 낙성식에는 전 세계에서 축하 사절단이 참석했다.
 
  궁궐 깊숙한 곳에서 내밀하게 벌어진 일을 외부 세계에 알린 것은 낙성식에 참석했던 조선의 사절단 중 한 사람이었다.
원(元)나라 황실에 공녀(貢女)로 끌려왔던 고려 여인들이 아직 명 황실에 있었고,
고향 조선의 사절단에게 그 끔찍한 궁중 학살을 귀띔해 주었다. 자금성은 무고한 이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드라마에선 제산대군·강목주 내연관계
 
 
12부작 역사 드라마 〈폭군의 셰프〉는 올해 방영된 미니시리즈 중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최고치인 12회차 시청률이 수도권 17.4%, 전국 평균 17.1%였다.
  무지막지한 폭군 명나라 황제들의 후궁들을 고모로 둔 소혜황후 한씨는 우리에게 ‘인수대비(仁粹大妃)’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조선 500년 역사에서 가장 힘센 여인이었다. 폭군 연산군(燕山君·재위 1494~1506년)이 병석에 누운 할머니 인수대비의 가슴을 밀치고 폭언해서 죽였다는 기록,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드라마 속 ‘제산대군’이라는 이름이 제안대군과 월산대군에서 한 자씩 합쳐서 만든 것이 아닐까 짐작했다. 이 드라마는 웹소설 《연산군의 셰프로 살아남기》(박국재 작)를 각색한 것이다. 소설에는 ‘제안대군’이라는 이름 그대로 등장하는데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선 ‘제산대군’으로 나온다. 드라마를 만들며 이름을 약간 비튼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에선 ‘제산대군’과 ‘강목주’(역사 속 장녹수)가 내연관계인 것으로 묘사된다. 제산대군은 조카뻘인 국왕 ‘연희군’(연산군)의 후궁(직첩은 종3품 숙용) 강목주에게 “이 일[반정(反正)]이 성사되면 내 너를 정실부인으로 삼겠다”고 얘기한다. 강목주는 “대군께서 저를 사람답게 살게 해주셨지요”라면서 연산군 제거작업을 돕는다. 이 역시 원작인 《연산군의 셰프로 살아남기》에 없는 드라마 고유의 설정이다.
 
  폭군 연산군을 어린아이처럼 주물렀다는 역사 속 장녹수는 제안대군 집안의 노비였다. 드라마 〈폭군의 셰프〉는 제산대군을,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조희를 조(趙)나라에 망명 중이던 진시황의 아버지에게 바친 여불위(呂不韋) 같은 인물로 설정했다.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는 장녹수를 이렇게 전한다. 《연산군일기》는 제10대 임금 연산군 당시의 정치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중 한 편이다.
 
  〈장녹수는 제안대군의 가비(家婢)였다. 성품이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맞추었다. 처음에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서 생활을 했으므로 시집을 여러 번 갔다. 그러다가 대군(大君)의 가노(家奴)의 아내가 되어서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娼妓)가 되었다.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 나이는 30여 세였는데 얼굴은 16세의 아이와 같았다.
 
  왕이 듣고 기뻐하여 드디어 궁중으로 맞아들였는데, 이로부터 총애(寵愛)함이 날로 융성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좇았고, 숙원(淑媛·종4품)으로 봉했다. 얼굴은 중인(中人) 정도를 넘지 못했으나, 남모르는 교사(巧詐)와 요사스러운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으므로, 왕이 혹하여 상사(賞賜)가 거만(鉅萬)이었다. 부고(府庫)의 재물을 기울여 모두 그 집으로 보내었고, 금은 주옥(金銀珠玉)을 다 주어 그 마음을 기쁘게 해서, 노비·전답·가옥도 또한 이루 다 셀 수가 없었다.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같이 하였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 왕이 비록 몹시 노했더라도 녹수만 보면 반드시 기뻐하여 웃었으므로, 상주고 벌주는 일이 모두 그의 입에 달렸다.〉
 
 
  정실부인 김씨와 이혼, 그리고 재결합… 진실은?
 
 
드라마 〈폭군의 셰프〉 속 연희군(왼쪽)과 제산대군. 역사 속 연산군과 제안대군을 모티프로 재창조한 인물들이다.
  제안대군과 나를 이어 주는 사람은 ‘문의공’ 할아버지다. 함자는 수(守)자 억(億)자다.
 
  경북 상주군 낙동면 내곡리의 우리 시골집은 문의공 할아버지의 생가(生家) 터에 자리잡고 있다. 족보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세종 시대인 1433년에 나셨고, 연산군 시대인 1497년에 돌아가셨다. 향년 64세. 무과에 급제해서 벼슬살이를 했다.
 
  《성종실록》에 임금이 문의공 할아버지를 친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문의공 할아버지는 57세. 상당히 늦은 나이에 문의현감을 제수받았다. 문의는 지금의 충북 청원군 인근의 고을이다. 대통령 여름 별장이었던 청남대가 위치한 곳이다. 상주에서 100리 정도 떨어져 있다. 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1490년(성종 21) 7월 30일의 일이다.
 
  〈문의현령 김수억(金守億) 등이 사조(辭朝)하니 임금(성종)이 인견(引見)하고 이르기를, “그대들의 출신이 무엇인가?” 하니 김수억 등이 아뢰기를 “무과 출신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들은 어떻게 고을을 다스리겠는가?” 하니 김수억이 말하기를,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위주로 하고 부역을 고르게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성종이 창덕궁의 왕좌에 앉아 신하인 김수억과 이런 문답을 하였지만, 사적인 자리였다면 우리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해야 했다. “사돈 어르신”이라고. 문의공 할아버지의 동생, 수(守)자 말(末)자 할아버지가 성종의 사촌 동생 제안대군의 장인이다. 딸이 제안대군과 결혼했다. 우리 집안이 왕실과 통혼(通婚)한 것이다.
 
  문의공 할아버지는 《조선왕조실록》에 딱 한 번 등장하지만 동생인 수말 할아버지는 실록에 모두 59차례 등장한다. 대부분 사간원·사헌부에서 올린 장계, 조정 신료들이 벌인 징계 논의들이다. 내용은 한결같다. “사특(邪慝)한 김수말을 엄히 처결하소서”이다. 성종 13년(1482) 5월 6일의 실록을 보자.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서규(徐赳)가 서계(書啓)하기를, “본부(本府)에서 제안대군이 버린 아내 김씨(金氏)와 몰래 통한다는 말을 듣고, 김수말의 여종을 불러 물으니, 대답하기를 ‘지난 정월(正月) 14일에 대군이 집에 이르러 바로 김씨의 침방(寢房)에 들어가서 유숙(留宿)하고, 다음 날 아침에 평원대군(平原大君)의 집 앞의 어떤 집으로 가서 사람을 보내어 김씨를 맞아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하였습니다. 김수말과 그 일에 관련된 사람들을 부(府)에서 장차 추국(推鞫)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대체(大體)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모름지기 종부시(宗簿寺)로 하여금 대군을 국문하게 하소서” 하니, 어서(御書)로 이르기를, “제안대군은 아직 국문하지 말고, 그 맞이해 데리고 온 근유(根由)를 그 집 종[奴]에게 물어서 아뢰라” 하였다.〉
 
  이 사헌부 장계는 “제안대군이 헤어진 전 부인의 집에 들락거렸고, 그 부인을 다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이런 사악한 일을 방조한 전 장인 김수말을 고문해서라도 진실을 파악하겠다. 임금의 사촌 동생인 제안대군도 국문하려고 하니 허락해 달라”는 요지다. 제안대군의 나이 17세 때의 일이다.
 
  제안대군과 정실부인 김씨와의 이혼, 은밀한 만남, 그리고 재결합은 엄청난 왕실 스캔들이었다. 한때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던 제안대군은 본부인과 합의 이혼하고, 박씨(朴氏)와 재혼했다가 사별했다. 왕실은 물론이고 조정 대신들까지 가세해서 논란이 가열됐다. 대군이 이혼한 전 부인과 재결합하는 일이 왕가의 일원이자 사대부로서 온당한 것인가? 조정을 들썩이게 한 논쟁은 3년여를 끈 끝에 성종 16년(1485) 7월에 재결합을 허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성종실록》의 기록이다.
 
  〈상(上·임금)께서 전교하기를, “왕대비(王大妃)께서 하교(下敎)하시기를, ‘제안대군이 어리석고 병이 있어, 비록 다시 장가들게 하려 하나 따르려 들지 않고 김씨와 다시 결합하려고 한다. 비록 강제로 다시 장가들게 한다 하더라도 만약 다시 버린다면 또한 화기(和氣)를 손상하는 일이다’ 하셨으니, 다시 결합하는 일의 가부(可否)를 모두들 논의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자, 심회·홍응·정성근·기찬·김수동이 의논하기를, “(제안대군이) 김씨와 이혼[離異]한 것은 다만 병이 있어서일 뿐이고, 그 밖의 버림을 받아야 할 의리(義理)는 없는 것입니다. 박씨(朴氏·제안대군이 이혼 후 맞은 새 부인)는 이미 죽었고 김씨의 병이 나았으니, 다시 결합하도록 허락하소서” 하니, 상이 그대로 따랐다.〉
 
 
  난삽한 실록과 野史 기록들
 
 
제안대군의 기록이 나오는 《연산군일기》(왼쪽)와 《중종실록》.
  제안대군은 왜 첫 부인과 헤어졌고, 왜 다시 그녀와 결합했을까? 실록을 보면 사헌부·사간원 등 사정기관들은 한결같이 김수말의 딸이 “다리를 절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여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성종도 똑같은 이유를 들어 제안대군에게 김씨와의 이혼을 종용했다.
 
  절름발이에다 정신이 혼미한 여자가 왕가의 며느리를 고르는 간택 절차를 어떻게 통과할 수 있었을까? 인수대비가 일부러 멍청한 여인을 골라서 조카 제안대군의 배필로 붙여 준 것인가? 그렇다면 왜 제안대군은 이혼한 그 여인을 잊지 못해서 다시 찾아가고, 사촌 형 성종의 재가를 얻어서까지 그 여인과 합법적인 부부의 지위를 회복한 것일까? 장녹수는 물론이고 이 여자 저 여자 마음대로 골라 데리고 살 수 있었던 대군이 왜?
 
  납득할 만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제안대군과 관련된 실록이나 야사(野史)의 기록들은 난삽하기 이를 데 없다. 그게 내가 제안대군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긴 하지만.
 
  야사에 등장하는 제안대군은 바보 멍청이다.
 
  〈제안대군이 일찍이 문턱에 걸터앉아 있다가 거지를 보게 되었는데 자신의 종을 보며 “쌀이 없으면 꿀떡을 먹으면 되지”라고 하였다. (중략) 제안대군에게 후사가 없음을 딱하게 여긴 성종이 궁녀들에게 “제안대군에게 남녀관계를 알게 해주는 자에게 상을 주겠다”고 하였다. 이에 한 궁녀가 자원하여 밤에 그 집에 가서 제안대군이 잠든 사이에 그의 아랫도리를 더듬어 보았더니 일어서고 빳빳해서 곧 서로 맞추었다. 잠에서 깬 제안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면서 물을 가져오라고 하여 “더럽다, 더럽다” 하며 자신의 아랫도리를 씻었다.〉(명종 조, 어숙권의 《패관잡기》 중에서)
 
  제안대군은 성종 치세 24년, 연산군 재위 11년을 살아 냈다.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쫓겨날 때 그의 나이 39세였다. 큰일을 도모할 만한 왕실의 어른이었다. 그리고 그는 중종(中宗·재위 1406~1544년) 치하 19년을 또 살아 냈다.
 
 

  《중종실록》은 60세에 죽은 제안대군의 졸기(卒記)를 남겼다. 중종 20년(1525) 12월 14일, 양력으로는 1526년의 기록이다.
 
  〈제안대군 이현(李琄)이 졸(卒)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이현은 예종(睿宗)의 아들로 성격이 어리석어서 남녀관계의 일을 몰랐고, 날마다 풍류 잡히며 음식 대접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그러나 더러는 행사가 예(禮)에 맞는 것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거짓 어리석은 체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당시로서는 꽤나 장수한 왕실 남자의 졸기가 무척이나 소략(疏略)하다. 그는 아무 일도 한 게 없이, 기억될 만한 일 하나 없이 살다가 죽었다. 자손을 남기지 않았다.
 
  《중종실록》은 제안대군이 “남녀 교접을 몰랐다”는 야사를 그대로 인용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제안대군이 거짓으로 어리석은 체한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드라마가 제안대군에게 ‘역사의 숨결’ 불어넣어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서 ‘제산대군’은 연희군을 제거하는 반정의 주역이다. 거짓으로 어리석은 체하지만, 욕됨을 견디고 때를 기다린다. 인욕(忍辱) 도광양회(韜光養晦)하는 야심가다. 무오사화(戊午史禍·1498년) 때 억울하게 목숨을 잃거나 피해를 입은 사대부 집안을 규합한다. 연희군을 죽이기 위해 암살 독살을 집요하게 시도한다.
 
  결정적인 시기가 되자 궁궐의 담을 뛰어넘는다. 제산대군은 칼을 빼들고 연희군을 죽이려다가 오히려 자신이 연희군의 칼에 찔려 죽임을 당한다. 제산대군은 “내가 왕이 되었어야 했어”라는 울부짖음을 남긴다.
 
  제안대군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켜, 흥선대원군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소설이나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폭군의 셰프〉가 처음으로 ‘제산대군’이라는 이름으로 제안대군에게 역사의 숨결을 불어넣고, 역사의 현장에 주인공으로 불러냈다. 작가의 상상력에 놀랄 따름이다.
 
  제안대군은 정말 왕이 되고 싶은 진심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면서 살았던 것일까, 아니면 남녀 사이의 속깊은 일도 모르는 진짜 바보였을까? 제안대군의 진짜 얼굴은 어느 쪽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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