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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老人, 배움터가 따로 없더라.

한문역사 2026. 4. 16. 18:04

김상태의 신노인 산책] 배움터가 따로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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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14 09:20

 

 

늙으면 대체로 외롭다. 소일거리 찾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좋은 취미라도 가진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취미가 곧 소일거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소일(消日)'이라는 말은

별로 유쾌한 표현은 아니다.

시간을 활용한다는 의미보다는 시간을 죽인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늙은 사람들이 시간을 죽이지 않고 사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그것이 배움이라고 생긱한다.

산다는 것은 배움의 연속이다. 어린 시절에는 걸음걸이를 배우고 숟가락질을 배운다.

읽기와 쓰기를 배운다. 그런데, 늙어서 배우기를 그만두려는 듯한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배우는 재미의 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구태여 서예를 배우고, 외국어를 배우고,

악기를 배우고, AI 활용법을 배우는 그런 공부만 배움이 아니다. 일상 속에도 배울 일이 널려 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배우다 보면 시간은 죽는 것이 아니라 살아난다. ​

그렇게 배우려는 자세로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은 나이 들수록 성장한다.

『나를 아는 지혜』라는 저서를 남긴 스페인의 사상가 그라시안은

“육체는 25세까지 자라지만, 정신은 언제까지나 성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생의 절정기가 되어서도 어떤 사람은 전혀 삶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라고 했다.

같은 사물을 보고도 어떤 이는 깨우침을 얻는데 반해, 어떤 사람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이유다.

오래 살면서 충분히 배웠는데, 뭘 더 배우느냐고 반문하는 늙은이들이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내 멋, 내 기분대로 살면 그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고정관념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아 변화를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

늙어서 더욱 완고해지는 부류다. 하지만 열린 마음으로 보면, 늙어서도 배워야 할 이유가 수두룩하다.

퇴물이 되어 세상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배워야 한다. 배울 기회도 많다.

눈이 나쁘다거나 읽기가 귀찮다면, 듣기만 해도 배울 수 있는 수단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한테서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다.

“사람 셋이 함께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이

『논어』에 나온다. 좋은 점은 본받고, 나쁜 점은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가르침에 따른다면, 경계해야 할 사람은 있을지언정 만남을 굳이 꺼려할 사람은 없다.

모두가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이 그래서 통용되는가 보다.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함부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살짝 웃어주는 이웃에게서 배운다.

장사를 하면서도 절대로 웃지 않는 동네가게 주인에게서도 배운다.

비난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배우고, 욕하는 말을 입에 담지 않는 친구에게서도 배운다.

이처럼 모든 만남에서 매일 배우고 깨우칠 수 있다면, 사람 만나는 재미가 한결 더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