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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4월 수상작

한문역사 2026. 4. 30. 18:20

중앙 시조 백일장 - 4월 수상작] 음표는 여권이 없다 外
중앙일보
입력 2026.04.29 00:02

장원
음표는 여권이 없다
이금옥

손끝에서 손끝으로 별빛이 흘러가면
모국어 한 음절은 번역되지 않아도
세계가 한 문장으로 읽히는 시간이다

우리는 언어 대신 리듬으로 인사하고
또 다른 도시의 하늘을 가로질러
새로운 지도를 그리듯 자유로운 바람이다

한강의 기적이 지구의 심장을 향해
오늘과 내일을 한 올 한 올 엮어 가면
음표는 여권도 없이 국경을 건너간다

◆이금옥


전북 장수 출생. 2019년 제주로 이주. 2025년 4월 중앙시조백일장 차상. 2025년 6월 청풍명월 전국시조백일장 차상. 2025년 10월 제주시조백일장 장원. 2025년 11월 가람시조백일장 차하.

차상
득량역
윤정욱

눈 감으면 몸을 푼다 철커덕 기침 소리
둥그런 통표폐색 낚아채던 비둘기호
늘어진 철로의 시간
녹슨 날이 빛난다



무거운 한숨만큼 한쪽으로 기운 의자
아버지, 불러보면 돌아보며 웃던 역사
저녁이 먼저 내려와
등 뒤에서 불을 켠다

만질 수 없는 이름 슬며시 들춰보면
객차까지 따라와 쥐여주던 도시락 속
찐 달걀, 손끝에 남은 온기
세월 갈수록 따뜻하다

차하
천원의 오픈런
이둘임

가장 먼저 달린다 바람이 어깨를 친다
짐승의 얼굴들 세렝게티 닮은 아침
무리가 모이기 전에 뒤를 보는 건 금지다

이빨도 풀잎도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천 원짜리 아침 앞에 허기를 삼키고
마지막 기회인 듯이 깊은숨을 고른다

하지만 도착보다 먼저 지친 발소리
아스팔트 초원 위에 구겨져 눕는다
생채기 들키지 않게 내 흔적을 숨긴다

이달의 심사평
고운 봄빛 아래 초록으로 건너가는 나뭇잎의 몸짓이 싱그럽다. 계절의 영향인지 응모작도 풍성하다. 다만 시조의 기본 운율에 충실하면서도 내면의 정서를 뭉클하게 전하는 작품을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장원으로 올린 이금옥의 ‘음표는 여권이 없다’는 “손끝”에서 “별”과 “세계”로 가 닿는 시점 이동이 다채롭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소통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도 엿보인다. 음표처럼 걸림 없이 국경을 넘나들고자 하는, 평화의 기원을 담아낸 점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차상 윤정욱의 ‘득량역’은 익숙한 언어들이 주는 식상함은 있으나, 가슴 따뜻한 기억 저편의 풍경들을 불러내는 힘이 있다. 시는 절제의 미학이라 하지 않는가. 셋째 수에 메시지가 다소 과하게 실리면서 전체적인 흐름이 늘어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깊은 고민을 권하고 싶다.

차하 이둘임의 ‘천원의 오픈런’은 시대를 관통하는 시선을 높이 샀다. 생명은 늘 허기를 지닌 존재다. 먹기 위해 다투며 승리와 패배가 반복되는 구조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그릇의 끼니를 위해 전력 질주하는 우리 모두의 삶에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심사위원 이송희·강정숙(대표집필)

초대시조
덜컹
강경화

새로 놓은 탁자가 덜컹덜컹 흔들린다
눈으로 더듬어도 만질 수 없던 깊이
종잇장 두툼하게 접어 기운 쪽을 괴어 본다

모로 누워도 편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바닥
탁자 위에 엎지른 물
낮은 쪽으로 흐른다

마음이 덜컥 꺼지면
이 깊이만큼 뭘 괴야할까

중앙 시조 백일장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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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꽃 만발하던 보랏빛 봄날일까
향기 없이 붉게 떠난 노을 같은 그대일까
기우뚱,
쉬 잡히지 않아
덜컹대는 소리 잦다

◆강경화


1968년 광주광역시 출생. 2002년 《시조시학》신인상으로 등단. 시조집 『사람이 사람을 견디게 한다』, 『메타세콰이어 길에서』, 『나무의 걸음』

수평이 맞지 않아 덜컹대는 탁자를 통해 겉으로는 평탄해 보이지만 실은 보이지 않게 기울어진 ‘삶의 바닥’을 시인 특유의 섬세한 눈으로 포착하여 한 편의 시를 빚었다.

“종잇장 두툼하게 접어 기운 쪽을 괴어”보는 행위는 현실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삶이란 결국 덜컹이는 탁자처럼 잠시 괴어보아도 시시때때로 흔들릴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시인은 고백한다. 하지만 임시방편으로 버티는 마음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탁자 위에 엎지른 물/낮은 쪽으로 흐른다”라는 대목에서 물은 사람의 감정을 닮아있다. 이어지는 물음은 시의 정서를 한층 더 깊은 층위로 밀어 넣는다. “첫 마음 덜컥 꺼지면/이 깊이는 뭘 괴야할까”

“라일락꽃 만발하던 보랏빛 봄날일까/향기 없이 붉게 떠난 노을 같은 그대일까/기우뚱,/쉬 잡히지 않아/덜컹대는 소리 잦다” 마지막 장에서 시인의 쓸쓸하고 공허한 마음이 손에 잡힐 듯 드러난다. 먼데서 닿은 꽃들의 착한 향기로 덜컹거리는 마음을 살며시 괴어 아물지 않는 상흔들을 견뎌보기로 한다.

시조시인 정혜숙

◆응모안내

매달 18일까지 중앙 시조 e메일(j.sijo@joongang.co.kr)으로 접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편(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48-6 중앙일보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으로도 받습니다. 등단하지 않은 분이어야 하며 3편 이상, 5편 이하로 응모할 수 있습니다. 02-751-5311.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4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