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시 / 유대식
- 기자명 송태섭 기자
- 입력 2026.04.29 04:50

산허리 저 구름도 시(詩)요// 새소리 솔향도 시네// 깊고 깊은 산골 시냇가에// 늙은이 물소리 좋아 시를 읊네// 상상력의 붓을 들고// 없는 재주로 첫 행을 쓰네// 여든에 시작(詩作)을 시작(始作)하니// 세상은 노욕이라 비웃을지라도// 이리 한 줄 저리 한 줄// 내 하고픔을 어찌 막으리오// 저 들녘에 핀 제비꽃아// 봄 아지랑이 창문 열고 나를 반겨주게나
『미생물이 뾰로퉁 삐지네』(2025, 그루)
어릴 때 유대식(1942~, 대구 출생)은 문학 소년이었다. 그때는 시의 시간과 공간이 이렇게도 무궁무진한지 몰랐다고 한다. 시는 꽃나무가 되었다가, 구름이 되었다가, 남자가 되었다가, 여자가 되었다가, 끝내 온갖 은유로 변신하는 귀재(鬼才)이다. 수많은 ‘의인화’와 ’객관적 상관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현대에 와서 의인화는 사전적 혹은 문학적 의미에서 벗어나, 현상이나 특성에 인격을 부여하는 아주 중요한 시법이다. 객관적 상관물은 20세기 초 영국의 문예 비평가이자 시인인 T. S. 엘리어트가 사용했던 말이다. 그것은 화자의 감정이나 생각을 주관적으로 바로 드러내지 않고 다른 대상이나 정황에 빗대어 표현할 때, 그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미생물을 연구한 과학자이다. 세계를 직설적으로 쓰지 않고, 각종 다양한 사물로 감정이입하여 들려주고 있다. 옛 시인의 시문 속에는 유독 거문고와 가야금, 춤과 술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풍류는 멋진 삶의 한 놀이 문화이다. 최치원은 ‘현묘지도’(玄妙至道)라 하여, 유불선(儒佛仙)의 최고의 경지로 생각하였다. 더불어 즐기는 이런 풍류의 노래는 『자하동』(紫霞洞, 채홍철)이란 고려 가사에서 잘 드러난다. “인생에는 술 항아리 앞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인생 백 년을 보내는 데 술만한 것이 없고/ 술잔이 돌아가거든 남기지 마시라” 그렇다. 「시」도 술도 취해야 맛이니, 인생만사 술잔이 돌아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법이다. 세상은 ”여든에 시작(詩作)을 시작(始作)”한 그를, “노욕이라 비웃을지라도”, 그의 시는 ”봄 아지랑이”처럼 하늘하늘하다. 시인에게 “새소리”도 ”솔향”도 모두 시이다. 선비는 예부터 관수(觀水), 혹은 세심(洗心)이라 하여, 물을 사색의 벗으로 여겼다. 아무려면 어떤가. 노구(老軀)에 “상상의 붓을 들고” 천하를 그린들, 무슨 흉이 될 것인가. 노을도 저물 때 곱듯이, 시도 “노욕”을 다 내려논 여든쯤에야 붉게 물드는 법이다. 꿈과 현실, 이승과 저승을 잇는 시상(詩想)은, 행간과 연 사이에 ”한 줄”로 압축된다. 긴 시는 젊은이의 짝이요, 짧은 시는 노인의 놀이다. 늙으면 세계를 치열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그저 비울 일이요, 내려놓고 먼 산을 지긋이 볼 일이다. 유대식의 「시」는, 천천히 걸어가는 시의 음보(音步)가 졸박하다. 촘촘하지 않고 헐렁한 자신만의 사색은, 그저 숲속을 흔드는 바람처럼 자연스럽다.
김동원(시인·평론가)
저작권자 © 대구일보'새 카테고리2'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중앙 시조 백일장, 4월 수상작 (0) | 2026.04.30 |
|---|---|
|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유산)경주 흥덕왕릉 (0) | 2026.04.30 |
| 2026 상반기 달구벌체력왕 선발 체력측정 실시 (0) | 2026.04.30 |
| 조선시대, 가난에 몸을 판 사람들의 기록 :自賣文記: (0) | 2026.04.30 |
| 장원급제 박세당이 지은 백헌 이경석 神道碑文 (0) | 2026.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