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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의 名木을 찾아서(39) 달성 하빈 六臣祠 三可軒 탱자나무

한문역사 2026. 5. 8. 05:54

대구경북의 명목을 찾아서](39)삼가헌 박성수 선생과 파회 마을 탱자나무

  • 기자명 최미화 기자 
  •  입력 2026.05.04 07:36
 
삼가헌이 심은 탱자나무

국가 민속 문화유산인 삼가헌은 육신사가 있는 묘골과 낮은 산을 경계로 하고 있다.

이 고택은 사육신의 한 분인 충정공 박팽년(朴彭年, 1417~1456) 선생의 11대손으로

첨지 중추부사 겸 오위장(五衛將)을 지낸 박성수(朴聖洙, 1735~1810)가

1769년(영조 45) 초가로 짓고 정원수로 매화, 탱자나무, 굴참나무를 심고

자기의 호를 따서 삼가헌(三可軒)이라 이름 한 곳이다.

매화는 사군자의 하나이기에 선비가 집을 지으면 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탱자나무와 굴참나무는 의외이다. 전자는 약용으로 후자는 기근으로

식량이 모자랄 때를 대비해서 심은 것 같다. 그 후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참의,

안변(安邊) 부사 등을 역임한 아들 노포(老圃) 박광석(朴光錫, 1764~1845)이

1783년(정조 7) 묘골에서 이곳으로 분가하여 1826년(순조 20)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증축하여 완성했다.

왼쪽에 삼가헌 사랑채가 보인다.

조선 후기 영남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담아 만든 주택이다.

당호 삼가(三可)는 “천하와 국가를 다스릴 수 있고, 관직과 녹봉도 사양할 수 있으며,

날카로운 칼날 위를 밟을 수도 있지만 중용은 지키기는 어렵다.”

(天下國家可均也 천하국가가균야, 爵祿可辭也 작록가사야, 白刃可蹈也 백인가답야,

中庸不可能也 중용불가능야)”는 뜻이다.

삼가헌 현판은 호남의 명필 이삼만이 썼다.

사랑채의 현판 삼가헌(三可軒)은 호남의 명필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1847)이,

예의염치효제충신(禮義廉恥孝悌忠信)은 기호남인(畿湖南人)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이

쓴 글이다. 현재 후손 박도덕 씨가 은퇴 후 이 집을 지키며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삼가헌(사랑채) 대청에서 바라본 하엽정 입구 협문. 출처 국가유산포털

특히 별당 하엽정(荷葉亭)이 볼만하다. 안채와 사랑채를 짓기 위해 흙을 파낸 자리에

노포의 손자 박규현이 1874년(고종 11)에 연못으로 꾸미고 파산서당을 옮겨 조성했다.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외나무다리로 이어 놓은 천원지방형의 대구 유일(?)의 전통 정원이다.

연꽃이 만발하는 7월 하순과 8월은 많은 사람이 찾는다.

박경리의 소설을 원제(原題)로 한 대하드라마 「토지」를 촬영했다.

드라마 「토지」의 촬영지 하엽정은 삼가헌의 별당이다.
사랑채인 삼가헌에서 하엽정으로 통하는 협문이 있다.

연못 가에 정자를 지으면 대게의 경우 군자정(君子亭) 또는 연정(蓮亭)이라고 하는데

이곳의 주인은 연잎을 강조해 눈길을 끈다. 깊은 밤 연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일어나

연못가를 서성이는 음유(吟遊)를 즐기려고 쓴 제명(題名)한 것 같다.

하엽정 원경. 출처 국가유산포털.

이곳을 둘러보고 마을 뒤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낙빈서원에 닿는다.

전신은 하빈사(河濱祠)로 1674년(현종 15)에 건립되어 충정공 박팽년 선생의 위패만 모시고

제사를 지내오다가 현손 박계창(朴繼昌)이 어느 기일(忌日) 사당 밖에서 사육신 여섯 분이

서성거리는 꿈을 꾸고 깜짝 놀라 다섯 분의 위패를 더 모셨다고 한다.
그 후 사가(私家)에서 여섯 분을 함께 제향(祭享)하는 것은 법도로서 옳지 않다는 지적이 있자

1691년(숙종 17) 별묘(別廟)를 지으면서 낙빈서원으로 승격되고 1694년(숙종 20) 사액 되었다.

충효위인유적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묘골에 들어선 육신사.

그러나 1974년 박정희 정부의 “충효위인유적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묘골에 육신사를 지으면서

사호(祠號)를 숭정사(崇正祠)라 하고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 사육신과

충정공의 아버지 박중림(朴仲林, ?~1456)의 위패도 함께 모시게 되면서

300여 년 이어온 낙빈서원은 그 역할이 끝났다.
터를 잡은 지 어언 250여 년 굴참나무는 아직 건재하고

탱자나무는 일부 줄기가 썩어 방부처리를 하였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늙은 매화는 현재 고택을 지키고 있는 집 주인 박도덕 후손이

밑둥치에서 돋아난 싹을 채취해 접을 붙여 명맥을 잇는 노력으로 되살렸다.

후손 박도덕 씨가 살려낸 매화는 분홍색에 겹꽃인 점이 특이하다. 마치 산청에 있는 원정매랑 닮았다.

이 시도는 단순히 고매(古梅) 한그루를 살려내 보존한 차원을 넘어 먼 조상의 유훈을 살려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업을 도운 매화 전문가 정옥임 여사에 의하면 흔하지 않은 분홍색 겹꽃으로

산청의 여말(麗末) 문신 하즙(河湒, ?~?)이 심은 일명 원정매(元正梅)와 유사하며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에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매화는 산청에서 이곳 하빈을 거쳐

화원 본리로 전파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혼맥이든 인맥이든 어떤 식으로 세 가문이 교류가 있었을 것이며

그들이 매화를 玩賞할 만한 명문가라는 점도 비슷하다.
굴참나무와 탱자나무는 달성군이 보호수로 지정해 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크고 오래된 나무는 그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가뭄과 홍수, 폭풍 등 온갖 재해와 여러 종류의 병이나 해충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유전자로서의 가치도 중요한, 생명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이정웅 사)대구생명의숲 이사장, 전 대구시 녹지과장

탱자나무에 얽힌 고사로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말이 있다.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귤을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실제 귤이 탱자가 될 수 없다.

다만 추위로 귤나무의 줄기는 죽고 대목(臺木)으로 쓴 탱자나무가 자랐을 뿐이다.

나무를 심고 연못을 만드는 등 자연을 사랑하고 충절을 지키며 살아온 충정공(忠正公)

후손들은 그 선의를 다하려는 듯 충신, 학자, 예술가, 정치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이정웅 사)대구생명의숲 이사장, 전 대구시 녹지과장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