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가짜 대학생
▶비극적인 사건도 있었다. 1980년대 대학 캠퍼스에는 이른바 ‘경찰 프락치’가 활동했다.
학생으로 위장해 시위 동향을 수집하던 경찰 요원들이었다. 때로는 ‘가짜 대학생’들이
엉뚱하게 경찰 프락치로 몰렸다. 일부 운동권 학생들이 서울대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재수생을
프락치로 몰아 감금·고문한 사건이 벌어졌다. 한양대·전남대 등에서는 학생들이 외부인을
프락치로 몰아 폭행해 숨지게 한 참사까지 있었다. 학생 운동에 대한 지지가 급격히 식은 계기가 됐다.
그만큼 가짜 대학생이 많기도 했다.
▶2007년 대한민국은 ‘학위 검증’이라는 열병을 앓았다.
예일대 박사를 사칭한 미술관 큐레이터가 대학 교수와 비엔날레 감독까지 지낸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이후 스타 강사, 배우, 감독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줄줄이 소환됐다.
“사실은 정식 대학생이 아니라 도강·청강생이었다”는 고백 릴레이가 이어졌다.
실력보다 간판과 학위를 먼저 보던 시절이 낳은 단면이었다.
▶최근 서울대 축제를 앞두고 대학생 커뮤니티와 중고 시장에 ‘서울대 학생증 구함’이라는 글이
100여 건 올라왔다고 본지가 보도했다. 인기 아이돌 공연을 가까이서 보려는 외부 팬들이 몰린 탓이다.
학생증 하루 빌리는 대가로 5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까지 등장했다.
‘하루 가짜 서울대생’ 비용이 50만원이다. 유명 아이돌·밴드가 출연하는 대부분의 대학 축제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축제 주최 측은 모바일 학생증과 신분증을 일일이 대조하며
공항 수준의 ‘검문검색’을 벌인다고 한다. ‘가짜 대학생’도 크게 달라졌다.
▶‘리플리 증후군’은 현실의 초라한 나를 버리고 가공의 나를 진실이라 믿는 정신의 병이다.
과거 가짜 대학생들 중엔 리플리 증후군을 의심해야 할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적발된 뒤에도 자신이 가짜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절이 그랬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뉴스는 거의 사라지고 축제용 ‘하루 서울대생’이 화제가 된다.
학벌이 예전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바뀐 세태가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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