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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문화유산)이호우와 이영도 生家

한문역사 2026. 5. 14. 18:25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유산] 이호우와 이영도 생가

문정화 기자 님의 스토리
  23시간  
6분 읽음
현대 시조의 격을 한 차원 높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시조 시인인 이호우와 여동생인 이영도의 생가. 1910년경에 건축된 근대기 단층 한옥기와집이다. 안채와 사랑채는 ㄱ자형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은 안채 모습. 왼쪽부터 안방, 대청, 작은방,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진홍 기자 solmin@idaegu.com

이호우와 이영도 오누이 시인에게 그들의 생가와 고향 유호리는 무엇이고, 또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시편의 행간을 더듬어보면, 그곳은 나그네의 저무는 발길조차 서두를 필요가 없는, 마음 하나 바쁠 것 없는 ‘환대와 안식의 품’이었고, 감꽃을 줍던 아이가 빈 솥을 몰래 열어보며 어머니의 마른 눈물을 마주해야 했던 ‘배고픈 삶의 고단한 현장’이었다.

이렇듯 유호리는 단순히 유년의 파편화된 기억에 머물지 않고, 두 시인의 언어가 처음 발아하고 정서의 밑바탕이 길러진 시적 원형의 자장으로 기능한다. 나아가 그곳은 자연과 인간, 가난과 사랑, 그리고 상실과 그리움의 기억들이 한데 섞여 몸속 감각으로 아로새겨진, 그들의 전 생애를 지탱한 하나의 ‘정신사적 풍경’ 그 자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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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집을 들어서며는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마다 젊은 꿈도 익으려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이호우, 「살구꽃 핀 마을」 전문

사흘 안 끓여도/ 솥이 하마 녹슬었나// 보리 누름 철은/ 해도 어이 이리 긴고// 감꽃만/

줍던 아이가/ 몰래 솥을 열어보네

-이영도, 「보릿고개」 전문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사랑마루, 사랑방, 작은 사랑방, 고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진홍 기자

◆청도읍 유천길 46

청도군 청도읍 유천길 46, 오누이 시인의 생가가 있는 유호리는 이제 더 이상 옛날의 시골 마을이 아니었다. 강산이 다섯 번도 더 바뀌었다는 말을 실감케 하듯, 마을은 세월의 풍화 위에 새로운 기억의 층위를 덧입고 있었다. 반세기 전의 유호리가 살구꽃 피고 달무리가 지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마을이었다면, 지금의 유호리는 과거의 시간을 현재 속에 재현하려는 행정의 의지가 더해진 문화마을이 되어있었다. 늙은 악사가 아코디언을 켜고, 교복 입은 학생들이 「별아 내 가슴에」, 「진짜 진짜 잊지마」를 동시 상영하던 유천극장 앞을 서성이는 풍경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한 시대의 정서를 복원하려는 집단의식의 연출처럼 보였다. 그곳에는 과거와 현재, 자연과 문명, 두 겹의 층위가 공존하고 있었다. 오누이의 생가는 철 따라 바뀌는 자연의 무심한 시간과 그것을 보존하려는 인간의 의도가 깃든 시간,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교차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호우와 여동생인 이영도의 생가가 있는 청도 유천문화마을 전경. 김진홍 기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집은 1910년경에 지어진 근대 한옥으로, 오누이 시조 시인으로 유명한 이호우(李鎬雨, 1912~1970)와 이영도(李永道, 1916~1976)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오빠인 이호우는 1940년 문예지 《문장》에 「달밤」이 추천되면서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했으며, 대표작으로 「개화」, 「살구꽃 피는 마을」, 「휴화산」, 「삼불야」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은 고전적 시조를 현대의 감각과 정서로 전환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동생인 이영도는 1946년 대구의 문예지 《죽순》에 「제야」를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보릿고개」, 「달무리」 등 민족 고유의 정한을 섬세하고 단아한 가락에 담아냈다. 이 집은 사랑채와 안채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서로 직교하는 ㄱ자형으로 되어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사랑마루, 사랑방, 작은 사랑방, 고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으로 왼쪽부터 안방, 대청, 작은방,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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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중요한 것은 박제된 건축 양식이 아니라 생가 곳곳에 스며있는 오누이의 숨결일 것이다. 나무 기둥과 기와지붕이 이 집의 외형을 이룬다면, 어린 남매가 툇마루 끝에 나란히 걸터앉아 무심히 들었을 유호천의 쉼 없는 물소리, 떨어진 감꽃 향기와 밥 짓는 부엌의 매큼한 연기, 배고픈 여름날의 오후 등이 이 집의 진짜 골격일 것이다. 폭설이 내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잦아든 겨울밤, 호롱불 아래에서 책장을 넘기며 서로의 정갈한 기척을 느끼던 그 내밀한 시간들이야말로 이 근대 한옥을 지탱해온 보이지 않는 주춧돌이 아니었을까. “시만큼 아름다웠다”고 벽화 속에서 환히 웃으며 이영도가 자랑하고 있는 마을, 골목길에 새겨놓은 “유천어화(楡川漁火)”가 가리키듯 밤이면 횃불을 켜고 은어를 잡던 유호천의 맑은 물이 한눈에 들어왔을 생가 마당은, 이제 물길은 멀어지고 고가도로가 풍경을 가로지르고 있음에도 오누이 시인의 문학적 호흡만은 여전히 고적하게 머물러 있었다. 마을 담벼락 곳곳에서 정갈한 글씨로 적힌 시들이 방문객을 환대하듯 말을 걸어왔다. 「개화」와 「달무리」는 유호리의 흙과 바람, 그리고 밤하늘의 체취를 가장 짙게 간직한 채, 고향의 정서가 어떻게 보편적인 생명의 이미지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청도 유천문화마을에 그려진 이호우 대표작 ‘살구꽃 핀 마을’

개화(開花)/ 이호우

꽃이 피네, 한 잎 두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달무리/ 이영도

우러르면 내 어머님

눈물 고이신 눈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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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묻고

아, 우주이던 가슴

그 자락

학같이 여시고, 이 밤

너울너울 아지랑이

존재의 열림을 극적으로 형상화한 「개화」에서 시인은, 꽃 한 잎이 벌어지는 찰나의 순간을 한 '하늘'이 열리는 우주적 사건으로 인식, 확장한다. 꽃잎이 마지막 고비를 넘기며 떨고 있을 때 자연의 모든 숨결이 멈춘 듯한 긴장감은, 자연과 자아의 경계가 지워진 태초의 신비한 생명의 리듬 속에 하나로 녹아드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이다. 이는 시인의 유년기에 깃든 고향의 고요함이 그의 내면에 얼마나 깊은 관찰력과 시적 상상력의 토대를 형성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주로 확장된 모성을 노래한 「달무리」는 이영도 시인에게 고향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가장 아름답게 증명한다. 밤하늘 달무리를 보며 어머니의 서늘한 눈매와 광활한 가슴을 떠올리는 시선은 고향의 포근함을 생명의 근원적인 이미지로 승화시킨다. 이렇듯 갈무리된 정서는 학의 깃처럼 너울거리는 아지랑이가 되어 상실의 슬픔조차 숭고한 그리움으로 보듬어 안으며, 시인이 평생 간직해온 시적 감수성의 자장이 유호리의 부드러운 흙과 바람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같은 공간 공유, 다른 방식 세계 해석

현대 시조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두 시인은 같은 원체험의 공간을 공유했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했다. 이호우에게 자연이 질서와 각성의 공간이었다면, 이영도에게 자연은 기억과 감정이 스며드는 서정의 공간이었다. 문학사는 이호우를 현실 인식과 절제된 언어미학의 시인으로, 이영도를 한과 연민의 미학을 지닌 서정시인으로 기억한다.

청도 유천문화마을에 그려진 이호우 벽화.

되돌아보니 그들의 시와 삶은 조금도 엇지지 않은 동궤의 것이었다. 현실에 맞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호우는 여러 차례 필화를 겪는다. 자유당 정권과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글로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는 언론인이자 시인으로서의 양심을 버리지 않았다. “벗아 너마자 미치고 외로 선 바람벌에/ 미칠 것 같은 세상에 더불어 미쳐보지 못함이 내 도리어 설구나...” 「바람벌」의 절창은 시대의 광기 속에서도 끝내 자기 정신을 지키려 했던 한 시인의 고독한 자의식처럼 읽힌다.

반면 이영도는 사랑의 상처와 기다림을 시로 생을 갈무리한 시인이었다. 청마 유치환과 20여 년간 주고받은 연서는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애틋한 정신적 사랑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청마의 고백과,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부는 대로/ 젖으며 흔들리며/ 꽃은 피는데…” 이영도의 응답은 단순한 연애의 문장을 넘어, 존재가 서로를 갈망하는 실존의 문법으로 읽힌다. 필화와 연서, 저항과 사랑이라는 서로 다른 삶의 자세 또한 결국은 인간을 향한 깊은 감수성과 자기 삶을 스스로 살아내려는 내면의 의지의 발현이었을 것이다.

청도 유천문화마을에 그려진 이영도 벽화.

불의와 맞섰던 필화는 필화대로, 시심(詩心)을 불태웠을 연서는 연서대로, 자신으로부터 스스로 솟구치는 주체적 삶을 산 것으로 족할 뿐 선악이 따로 있고 우열이 달리 있겠는가? 유호천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를 달리며 이 생각 저 생각을 뒤적거렸다. 고향이 그들에게 영원한 문학의 산실이었다면, 반대로 유호리에게 두 시인은 어떤 의미, 어떤 존재일까. 정지용의 옥천이 서정적 '향수'의 대명사가 되고, 윤동주의 용정이 꺾이지 않는 '청년의 양심'을 상징하는 성소가 되었듯, 유호리 역시 단순한 지리적 공간을 넘어 문학사적 의미를 간직한 인문적 장소로 거듭나게 되었다. 오누이 시인이 평생 갈고 닦은 정갈한 언어들, 생가 곳곳에 여전히 서려있는 고귀한 정신의 씨앗이 고향의 산과 들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 소중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청도 유호리가 더 이상 평범한 농촌 마을이 아니라, 오누이의 시정신이 머무는 거대한 서재처럼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겠다.

강현국〡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