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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恩寺 터 東西三層石塔 사리기

한문역사 2026. 5. 18. 20:40

최고의 솜씨와 재료 동원해 권위와 격식 차려

김혜원 국립대구박물관장2026. 5. 1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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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혜원의 박물관 산책] (18)
감은사 터 동서 삼층석탑 사리기
감은사 터 동삼층석탑 사리기, 682년, 내함(왼쪽) 높이 20.3㎝, 외함(오른쪽) 높이 31㎝.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금속공예실에 전시돼 있다. /e뮤지엄

경주 시내를 벗어나 동해가 보이는 연대산 중턱에 위치한 감은사 터는 많은 이가 찾고 사랑하는 유적이다. 감은사는 682년,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을 위해 그 아들인 신문왕이 완성한 사찰이다.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됐다는 문무왕의 전설 같은 이야기와 아름다운 주변 풍광도 인상적이지만, 폐허가 된 절터에 여전히 장중한 모습으로 서 있는 감은사 동서 삼층석탑은 실로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감은사 동서 삼층석탑은 높이 13m로 신라 삼층석탑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해당 형식의 기원이 되는 건축물이다. 7세기 말~8세기 초 신라 사찰에서는 새로운 형식과 디자인이 넘쳐났다. 삼국 통일로 흡수한 여러 전통과 장인 집단, 당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얻은 국제적 시각, 새 시대를 연 기세와 자신감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감은사 동서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기 역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사리기는 석가모니와 그 제자의 유골인 ‘사리’를 담는 그릇이다. 사리를 보호하고 보존할 뿐만 아니라 사리의 가치와 위상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사리기는 여러 겹으로 만들며, 되도록 귀한 재료를 사용하고 호화로운 의장을 더한다. 왕실 발원의 감은사 사리기 제작에는 당대 최상의 재료와 기술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서탑과 동탑 사리기는 구성이 동일하다. 가장 안쪽에 두는 사리병은 수정으로 만들고, 이를 담는 내함(內函)과 외함(外函)을 금동으로 만들었다. 1959년 발견된 서탑 사리기는 국립경주박물관에, 1996년 발견된 동탑 사리기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삼중으로 구성된 감은사 사리기에서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내함이다. 이전의 용기 형태에서 벗어나 개방된 구조물 형태를 띤다. 이러한 형식을 ‘보장형(寶帳形)’이라 부른다. 보장은 평상에 기둥을 올리고 그 위에 장막을 친 구조물로, 권위를 상징하거나 격식을 차릴 때 사용되었다. 사진 왼쪽에 있는 동탑 사리기의 보장형 내함을 보면, 기단은 중간 부분이 들어간 수미좌(須彌座) 형식이며, 그 위에 난간을 두르고 네 모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기둥 위에 보개(寶蓋)를 올렸다. 보장 중심부에는 구슬과 연꽃 모양으로 장식한 구조물이 있는데, 여기에 사리병을 안치했다. 그 주위를 승려와 천왕이 둘러싸고 있다.

이처럼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보장형 사리기는 7세기 이래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사리 친견(親見) 의례, 공양회와 연관되었다고 본다. 사리를 담는 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사리를 가까이에서 접하고 숭배하는 종교적 열망이 투영된 새로운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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