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마지막 불천위 지정, 안동 보백당 김계행 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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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백당 김계행 종가는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1리에 있다. 보백당 김계행은 고령현감 이후 삼사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청렴과 충간의 공직생활을 한 인물로, 1909년 대한제국 궁내부에서 不祧之典의 勅命을 받았다. 보백당 김계행 종가에서는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종택의 별채인 ‘보백당’에서 매년 음력 12월 17일 오후 8시경에 김계행 불천위제사를 지낸다. 제기는 유기그릇을 사용한다.


청백리의 삶
김계행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취사(取斯)이며 호는 보백당(寶白堂)이다. 보백당은 김계행이 쓴 시에서
“우리집에는 보물이 하나니, 있다면 오직 청백뿐이다(吾家無寶物 寶物堆淸白).”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김계행은 1431년(세종 13) 안동부 풍산현 불정촌에서 비안현감을 지낸 김삼근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삭령감무를 지낸 김전(金腆)의 딸이다. 김계행은 고령현감과 부수찬 등을 역임했으며 이후 홍문관․사헌부․사간원 등 삼사의 요직을 두루 지내며 청렴과 충간으로 공직생활을 일관하였다. 김계행은 연산군 생모 윤비의 폐비 사건 이후로 정국이 불안정해지자 63세 때 모든 관직을 사직하고 낙향하여 풍산과 묵계를 오가며 유유자적하였다.
1498년(연산군 4) 68세 때 풍산 사제(豊山笥堤)의 언덕에 작은 정자를 짓고 ‘보백당’이라 편액하고 학문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1501년 71세 때 거주지를 묵계로 옮기고 송암폭포 위에 ‘만휴정’을 지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는 분명히 국가대계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10년이나 섬겼던 신하로서 어찌 슬프지 않겠느냐.”라고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1517년 81세로 생애를 마감하였다. 1858년(철종 9) 가선대부 이조참판에 증직되었으며, 그 이듬해 다시 자헌대부 이조판서로 가증(加增)되었다. 시호는 ‘정헌(定獻)’이다.


묵계마을과 보백당 종택
김계행은 풍산과 묵계를 오가며 살다가 무오사화의 풍상을 겪고 난 71세 때 만휴정을 짓고 완전히 묵계에 정착한다. 김계행은 안동김씨 묵계파의 입향조가 된다. 묵계는 ‘서낭댕이, 구마이’라고도 한다. 서낭댕이는 선황당이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마이’는 옛날에 어떤 도사가 이 마을에 9가구만 살면 모두 잘 산다고 해서 ‘구만(九滿)’이라 불렀다고 한다. 보백당 종택은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1리에 위치한다. 안동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24㎞ 정도 하행하면 길안면 소재지인 천지리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6㎞ 정도 내려가면 묵계리가 나온다. 마을 입구에 ‘묵계1리’라고 쓴 표지석이 있다. 보백당 종택은 묵계서원에서 머지않은 마을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보백당 종택은 대문간인 행랑채와 본채, 그리고 별채인 보백당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랑채는 중앙에 솟을대문이 있고 좌우 측면에 방을 둔 정면 5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이다. 솟을대문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본채가 동향하여 위치하고, 좌측에 별채인 보백당이 남향하여 자리하고 있다. 본채는 보존 상태가 좋은 편으로, 앞쪽에 사랑채와 뒤쪽에 안채가 정면 6칸, 측면 6칸으로 ‘ㅁ’자형으로 연결되어 있다. 보백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마루 전면에는 한말 서예가인 도농 김가진이 쓴 ‘보백당’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보백당 김계행 종가의 제례
보백당 종가의 제사는 보백당 김계행의 불천위제사를 비롯하여 기제사, 설날과 추석 명절 차례, 음력 10월 묘소에서 지내는 묘제가 있다. 김계행은 사후 392년이 되는 1909년(융희 3) 대한제국 궁내부에서 부조지전의 칙명을 받았다. 조선조에서 마지막으로 내린 국불천위인 셈이다. 설날과 추석차례는 묵계 종택의 사당에서 모시고, 김계행의 불천위제사는 제청에서 지낸다. 종가에서는 ‘대청(大廳)’이라고 한다. 4대 조상의 기제사는 종손이 거주하는 대구에서 모시고, 묘제는 음력 10월에 19대조 이하 모든 조상을 대상으로 묘소에서 지낸다.
보백당 김계행 종가에서는 매년 음력 12월 17일 김계행 불천위제사를 지낸다. 원래 기일 첫 새벽에 지냈으나 먼 곳에서 참석하는 제관들의 편의를 위해 파제일 저녁 8시경으로 변경하여 모시고 있다. 보백당 김계행 종가의 불천위 제사음식은 다음과 같다. 제주, 메, 갱, 침채, 편, 편청, 간장, 식혜밥, 포, 삼탕, 대육, 문어, 도적, 대어, 자반, 김치물, 면, 삼채, 대추, 밤, 땅콩, 호두, 약과, 유과, 수박, 사과, 토마토, 밀감, 배, 곶감, 감이다. 그러나 제사음식이 정해진 것이 아니므로 재료나 품목에서 따라 약간씩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제사에 사용하는 그릇은 주로 유기로 만든 것으로 18대 종부가 사용하던 것을 19대 종부가 그대로 물려받아 쓴다. 유기그릇은 부엌 옆에 딸린 작은 방의 그릇함 속에 보관한다. 제사음식을 담을 때, 유기그릇이 부족할 때는 사기그릇을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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