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의 ‘필향만리’
饒人不是癡漢, 癡漢不會饒人(요인불시치한 치한불회요인)
중앙일보
업데이트 2026.05.21 10:10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넉넉할 요’라고 훈독하는 한자 ‘饒’는 ‘食(밥 식)+堯(요임금 요, 높을 요)’로 구성돼 있다. 堯의 윗부분은 ‘흙 토(土)’ 세 개가 겹친 모양으로서 ‘높다’는 뜻이고, 아랫부분 ‘兀(우뚝할 올)’ 또한 ‘높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대로 여겨온 요순(堯舜)시대의 요(堯)임금은 덕을 많이 쌓은 ‘높은 임금’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높이 쌓임을 뜻하는 堯와 食이 결합한 饒는 덕의 풍요와 밥의 풍요가 다 담긴 글자다. 즉 인격과 물질 양 방면에서 남을 넉넉하게 품어준다는 뜻을 가진 글자인 것이다. 나중에 뜻이 더욱 확장돼 ‘용서하다’라는 의미도 갖게 됐다. 그러므로 요인(饒人)은 다른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주고 용서해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요인을 더러 바보로 여기는 못된 인간들이 있다. 요인을 ‘호구(虎口)’ 즉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으로 여겨 바보취급 하는 몰염치한 인간들이 있는 것이다.
饒:넉넉할 요, 癡:어리석을 치, 漢:남자(사내·놈) 한, 會=可(할 수 있다). 너그러운 사람은 바보가 아니고, 바보는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없다. 30x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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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은 흔히 ‘한나라 한’이라고 훈독해 나라 이름으로 주로 사용하는 글자이지만 ‘사내·놈’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전문적(專門的)인 범위에 들어오지 못하고 ‘문밖(門外)에 있는 놈’이라는 뜻의 문외한(門外漢)이 대표적 용례다. 치한(癡漢)의 한(漢)도 그런 뜻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주로 여성을 희롱하는 놈을 일러 치한이라고 하지만, ‘어리석을 치(癡)’와 ‘사내놈 한(漢)’을 쓰는 치한은 본래 어리석은 놈에 대한 범칭이다.
너그러움을 베푸는 요인(饒人)을 치한으로 여기는 세상은 막된 세상이다. 최소한의 양심이나 예의도 없이 너그러운 사람을 오히려 등쳐먹으려 드는 세상이기에 삶이 막장으로 치닫는 것이다. 치한이 요인 행세를 하는 것은 더욱 꼴불견이다. 김장하 선생을 요인으로 존경하는 우리 사회가 참 자랑스럽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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