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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부르는 어느 학도병의 편지,

한문역사 2026. 6. 9. 18:02

어머니를 부르는 학도병의 편지, 눈물만 주르륵 흘렀다

허명화2026. 6. 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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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호국문화의길을 걷다

[허명화 기자]

철길 숲으로 산책을 나선다. 계절은 어느새 알록달록 장미와 무성한 녹음을 산책길에 뿌려 놓았다. 길에는 바쁜 아침을 지나온 사람들의 여유가 스민다. 짙어가는 초록 사이를 걸으며 6월을 생각한다. 여기 산책길, 호국 문화의 길 끝자락에는 학도의용군 전적비가 있다. 학생들이 나라를 위해 적과 싸웠던 그날의 이야기를, 또 그들의 흔적을 잊지 않기 위해 세운 비다. 6월 호국의 달이 되니 더 자주 생각이 나고 찾게 된다.
 
▲ 학도의용군 호국문화의 길 안내표지판 학도의용군 전적비 앞에 호국문화의 길 안내표지판이 있다.
ⓒ 허명화
학도의용군 전적비는 포항여자고등학교 정문 앞 작은 정원처럼 자리하고 있다. 학도의용군 전적비에는 6.25 전쟁 당시 이곳 포항여자고등학교(당시 포항여중이었다) 앞 학도의용군이 치른 혈전의 내용이 간략히 적혀 있다. 돌로 새겨진 전적비 옆에는 포항여중전투 학도의용군명비가 있다. 바로 옆에는 총을 든 학생의 동상이 높이 든 손에 비둘기와 하늘을 쳐다보며 우뚝 서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돌에 전사자와 생환한 학생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이름을 하나하나 훑어본다. 이름 옆에는 지역과 출신학교도 적어 놓았다. 여러 지역에서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어린 마음들이 뭉쳐 이곳 포항까지 왔다. 학교에서 책과 펜을 들어야 할 학생들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총을 들고 전쟁터에서 산화했다. 교복을 입은 어린 그들의 용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와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순간 산책로에 퍼진 햇살을 느끼며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생각한다.

그날의 이야기는 이랬다. 1950년 8월 11일 새벽 탱크로 중무장한 북한군 제12사단, 5사단, 유격 766부대가 남하하고 있었다. 전쟁 당시 동해안 지구 방어를 담당하고 있던 건 국군 제3사단이었다. 하지만 8월 10일에 이미 동남진한 북한군 제12사단에 의해 포항 북쪽 흥해 지역이 점령 당했다. 이 때문에 국군 제3사단의 퇴로가 차단되어 포항이 함락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 학도의용군 전적비 모습 포항여고 앞 작은 정원처럼 학도의용군 전적비가 놓여있다.
ⓒ 허명화
당시 포항 시내에는 해군과 공군과 함께 제3사단 후방지휘소가 위치한 포항여자중학교에 학도의용군 71명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아 조직적인 임무를 수행할 처지가 아니었다. 국군 제3사단 후방지휘소는 포항 시내로 진입한 북한군을 막기 위해 이들을 외곽에 배치했다. 학도병들은 스스로 2개 소대를 편성하여 8월 11일 새벽 3시 반부터 11시간 반 동안 북한군의 침공을 저지하였다.

학도병들이 사투를 벌이는 동안 국군 제3사단은 무사히 철수를 완료했고 무방비 상태였던 20여만의 피난민을 무사히 피난하게 했다. 이로써 남하하던 북한군은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학도병 48명이 전사했다. 이들의 꽃다운 나이와 못다 이룬 꿈을 생각하며 다시 전사자 이름을 눈으로 읽는다. 학도병은 포항 지역이 가장 많은 가장 많은 수였다고 한다. 우리가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후세에 전해야 하는 이유다.

학도병 이우근의 편지를 읽다
 
▲ 학도병 이우근의 편지 학도병 이우근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가 비석에 적혀 있다.
ⓒ 허명화
학도의용군전적비 왼쪽에는 학도병 이우근의 편지를 새긴 비도 있다. 금색의 비에는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글이 적혀 있다. 이우근은 경기 동성중학교 3학년으로 학도의용군에 지원했다. 편지는 포항여중에서 혈전을 치르던 중 잠시 포탄이 멈춘 사이에 적었다. 유품 속에서 발견된 피 묻은 편지였다. 편지글을 읽어보니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저 먹먹 하니 눈물만 주르륵 흐른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언제 다시 덤벼들지도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저는 꼭 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어머니 곁에서 상추쌈을 먹겠다던 이우근 학도병은 끝내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그의 목소리는 이 곳 어딘가에 바람이 되어 떠돌고 있는 듯하다. 어린 나이에 겪은 전쟁의 두려움과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편지에 담았다. 자식의 죽음과 피 묻은 편지를 마주한 어머니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편지 앞에서 발길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어머니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마음껏 쓰다듬는다.
돌아 나오며 학도의용군 전적비를 바라본다. 76년 전 그날 교복을 입고 총을 들고 싸운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 생각한다. 나라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을 품는 이 순간 내 심장도 뜨겁게 요동친다.
 
▲ 포항여중전투 학도의용군명비 학도의용군 전적비 옆에 포항여중 학도의용군명비가 동상과 함께 적혀 있다.
ⓒ 허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