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태의 신노인 산책] 생명이 서산에 걸렸을 때의 위로
- 기자명 김상진 기자
- 입력 2026.06.09 18:28

‘Hodie mihi, cras tibi’라는 라틴어 묘비명은 많이 알려진 경구다.
나는 대구 천주교 성직자 묘원에서 이 글귀를 처음 보고 느꼈던 숙연했던 감정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뜻으로,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은 가끔씩이라도 사색할 때
삶의 허황된 망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벗어날 수 있게 한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죽음을 음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병고에 시달리던 사람의 죽는 과정과 심리상태를 그린 기록은 찾기가 쉽지 않다. 죽은 이는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톨스토이가 주인공의 죽는 과정과 심리 변화를 작가적 상상력으로 실감 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매우 독보적이다.
출세 가도를 달리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어느 날 옆구리를 부딪치는 사고를 당한다. 그런데 전혀 아무렇지도 않던 옆구리 통증이 차츰 심해지면서 자리에 눕게 되고, 지독한 통증에 시달린 끝에 마흔다섯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그는 죽기 전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가까운 사람들의 무심함에 극심한 외로움으로 몸부림쳤다.
그가 죽은 다음 날, 문상객 중 망자와 가장 가까이 지냈던 친구는 망자의 부인으로부터 따로 잠깐 의논할 게 있다는 부탁을 받는다. 부인이 남편의 친구에게 꺼낸 이야기는 남편의 사망 후에 받을 연금의 액수를 좀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는 것이었다. 이런 황당한 의논을 서들러 끝내고, 그 친구는 먼저 자리를 잡은 친구들의 카드 놀이장으로 달려간다. 부인과 친구의 마음에 이반 일리치는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반 일리치가 죽기 전 모진 고통에 시달릴 때도 부인은 간병 치다꺼리를 집사에게 맡기고, 남편이 누워있는 방에는 하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제 막 약혼한 딸도 약혼자와 데이트를 즐기면서 아버지의 병은 아버지의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듯했다. 잘나가던 시절의 친구와 가족은 그 모습이 온데간데 없고, 환자의 오물을 묵묵히 치워주는 집사만 곁에 남았다.
나는 이 장면에서 요양시설에 버려지다시피 한 수많은 환자의 딱한 모습을 떠올렸다. 외출 한 번 못하고, 종일 병상에 묶여 지내는 환자도 수없이 많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가족의 병문안을 다니면서 나는 매일 병상에서 울부짖는 환자를 본 적도 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요양병원을 볼 때마다 몸서리가 쳐진다.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도 처절했다. 소설에 나오는 몇 구절을 살펴보자.
“이반 일리치는 누구 하나, 그가 바라는 만큼 아파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
몹시도 괴로웠다.
”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지독한 외로움,
사람들의 냉혹함과 하나님의 무자비함,
그리고 하나님의 부재가 서러워서 울었다.”
죽음의 공포와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가족과 이웃이 해 줄 수 있는
최상의 위로는 무엇일까. 불교에서 말하는 ‘무외시(無畏施)’가 대답일 것 같다.
무외시는 불교의 세 가지 보시 중의 하나로,
한자의 뜻 그대로 두려움을 없게 해 주는 보시다.
생명의 불꽃이 서산에 걸린 사람에게 겉치레 위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의 말과 행동만이
떠나는 사람의 고된 목마름을 달래주는 甘露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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