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전 스님의 마음 읽기
현충
중앙일보
입력 2026.06.10 00:10
각전 스님 범어사 교육국장
내가 출가할 때인 30년 전엔 절 마당이 추석날 가장 썰렁했다. 지금은 이날 공양간 앞에 밥줄이 길게 늘어선다. 절에 모신 조상 위패에 참배한 재가자들의 밥줄이다. 제사 장소가 가정에서 절로 옮겨갔지만 조상에 대한 추모는 여전하다. 나도 스님이 된 뒤로 경사에는 가지 않고 조사에만 간다. 무료봉사로 금강경 독송을 하고 온다.
유엔군 4만명 희생한 한국전쟁
나의 사랑, 나의 애정에서 벗어나
보편적 사랑으로 평화 이뤄야
김지윤 기자
국가를 위해 희생한 영령들에 대한 추모는 국가행사이다. 그날이 현충일이다. 한국전쟁 희생자들을 위해 1956년 지정되었다. 한국전쟁은 대규모 동족 간 상잔이었다. 우리 민족은 본디 정이 많다. 그 사랑과 애정이 나의 것에 국한되자 좌우 이데올로기 분할의 시작점에 맞물려 남의 사랑과 충돌한 것이다. 끝내 하지 않아야 할 전쟁을 치르고야 말았다. 총희생은 군·민 합쳐 사망 51만여 명, 부상 68만여 명, 포로·납치·실종 42만여 명이다.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
동시에 대규모 국제전이었다. 유엔군 22개국 195만 명이 참전하였다. 인류역사상 최대의 세계평화군이며, 유엔 역사상 최초·최후의 참전이다. 희생자는 전사 17개국 4만800여 명, 부상 10만4000여 명, 포로·실종 9900여 명이다. 그중 미군이 178만여 명이 참전, 전사 3만6000여 명이다. 미국 장성들의 아들들도 142명이 참전, 그중 35명이 전사·실종되었다.
부산 용당에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가 관리하는 유엔 묘지가 있다. 11개국 2300명의 전몰용사가 잠들어 있다. 현충일이 있는 6월이 다가오자 들렀다. 이들은 왜 자신과 상관없는 이역 땅에서 피 흘리며 죽어갔을까? 누군가 나더러 러·우 전쟁이나 미·이란 전쟁에 참전하라면 갈 생각을 할까?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가치와 의미이다. 세계평화의 가치와 소중함의 인식이 2차 대전의 폐허 위에 신선하고 때 묻지 않은 새싹과도 같이 피어올랐다. 바로 그때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그 강렬한 열망은 22개국의 젊은이들을 머나먼 동쪽 나라의 전쟁에 오게 하였고, 노병들마저 더 높은 열의를 가지고 참전하게 하였다.
불교는 불살생을 첫째 계율로 삼는다. 그럼에도 우리 역사는 임진왜란을 맞아 스님들이 전쟁에 나가 목숨을 바쳤다. 스님들이 살계를 어기고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힌 것이다. 계율로 보면 살생의 과보는 자신이 받는다. 스님들은 과보를 감수하고 전장에 나갔다.
그 힘으로 조선 불교는 유교의 가혹한 탄압에도 존속했다. 1737년(영조13년) 9월 11일 이목(李穆)의 보고서에 스님들 숫자가 20여만 명으로 추산된다. 대단한 숫자다. 지금도 산중 전통사찰에는 절마다 약 300명분의 밥을 담던 구시(돌이나 나무 재질의 대형 그릇)가 있다. 절마다 수백 명의 스님이 먹으려면 큰 구시가 필수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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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을 위해 죽어간 영령들에게 어떤 마음을 지녀야 할까? 첫째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목숨을 구해준 은혜는 결코 저버려서는 안 된다. 임진왜란 때 남명 조식(1501~1572)의 제자들이 의병장이 되었던 것도 ‘의(義)’ 정신 때문이었다. 유생들도 잊지 않는 의리를 하물며 불자임에랴.
부처님께서는 “나무 아래에서 하룻밤 묵었다면 그 가지를 꺾지 말라” 하셨다. 본생담에 보면, 한 원숭이가 절벽에서 떨어져 열흘을 굶은 사람을 구해주었는데, 그 구함을 받은 자는 자신을 구하느라 피곤해서 잠시 잠든 원숭이를 돌로 때려죽여 자신의 여행길에 양식을 삼으려 하였다. 그 원숭이는 머리에 돌을 맞고 피투성이가 된 채 이 사람을 마을로 가는 큰길까지 안내하고 숲속으로 사라진다. 그 사람은 살아났지만 그 후 피가 뜨거워져 문둥병에 걸린 채 가는 마을마다 사람들이 던지는 돌멩이를 맞으며 세상을 떠돌다가 땅이 갈라져 지옥에 떨어진다.
둘째 정신을 수양하여 나의 사랑, 나의 애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체 현상계가 아지랑이인 줄 알고 나를 벗어나 연꽃처럼 물들지 않는 보편적 사랑으로 승화하여야 한다. 수십만 명이 죽음을 당한 채 나라 잃은 티베트 불자들도 오체투지를 하며 세계평화를 기원한다. 우리도 3·1 독립운동을 평화적으로 펼친 위대한 유산을 갖고 있다. 세계평화의 상징인 달라이 라마 존자가 평화와 자유를 위해 산화한 영령들이 잠든 이 땅에 왕림하시기를 기대한다.
각전 스님·범어사 교육국장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35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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