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하나하나 그린 200m 대작… 축구가 예술이 됐다
[올라! 월드컵] 벽화와 축구의 나라 멕시코

8일(현지 시각) 멕시코시티 북부 외곽의 구스타보 A. 마데로 지역에 들어서자 한눈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벽화가 시선을 압도했다.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호나우지뉴(브라질)가 어깨동무를 한 뒷모습부터 2026 북중미 월드컵에 참가하는 48국 국기와 아즈테카 스타디움 등 멕시코를 상징하는 건축물까지 다양한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 벽화는 1986년 이후 40년 만에 멕시코에서 열리는 월드컵 개막을 기념해 제작됐다. 전통적인 방식인 붓으로 직접 그린 벽화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로 인정받아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직접 벽화를 따라 걸어보니 200m가 훌쩍 넘는 길이로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벽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던 코스타리카인 더글라스 무리요는 “세계 최대 규모의 월드컵 벽화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찾아왔다”며 “2014년 브라질 대회부터 4회 연속 월드컵을 현장에서 관람했지만 이런 벽화는 처음 본다. 월드컵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고 말했다. 벽화를 한참 바라보던 지역 주민 크리스토페르 이차보는 “그림 내용이 워낙 다양해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며 “우리 동네에 이렇게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오는 건 처음 같다”고 했다. 과달루페 성당으로 유명한 이곳은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거대한 벽화 덕분에 ‘월드컵 성지’로 탈바꿈한 모습이었다.
축구는 벽화 문화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다. 세계 최대 규모의 축구 벽화로는 리오넬 메시의 고향인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 있는 작품이 꼽힌다. 아르헨티나 예술가 말렌 주리아가는 ‘다른 은하에서 온 듯한 우리 도시의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24층, 높이 70m 건물 외벽 전체에 메시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세상을 떠난 축구 스타를 기리는 벽화도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2020년 별세한 디에고 마라도나를 담은 작품만 1300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가운데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불릴 만큼 벽화 문화가 발달한 멕시코에서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 역사를 주제로 한 초대형 벽화가 탄생하며 새로운 명소가 만들어진 것이다.
멕시코 벽화 문화의 뿌리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포르피리오 디아스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혁명 정부는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벽화에 주목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벽화가 효과적인 매체로 여겨졌고, 이후 대대적인 벽화 운동이 전개됐다. 신정환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장은 “멕시코 벽화는 단순한 미술 작품이 아니라 역사와 정치적 의미가 녹아 있는 복합적인 예술”이라고 설명했다.

멕시코는 지금도 국가 차원에서 벽화 제작을 적극 장려한다.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동시에 관광 자원이나 범죄 예방 캠페인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멕시코시티는 최근까지 범죄율이 높았던 이스타팔라파 지역에서 벽화 1만1000점을 새로 그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동네 곳곳이 화려한 그림과 폭력 근절 메시지로 채워지면서 주민들의 불안감이 줄었고 실제 범죄 감소 효과도 나타났다고 한다.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유명 벽화도 적지 않다. 멕시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국립 궁전에는 프리다 칼로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거장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대형 벽화가 2층 높이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고대 아즈텍 문명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멕시코 역사의 대서사를 한 폭의 그림에 담아낸 작품이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는 외벽 전체가 모자이크 벽화로 덮인 중앙도서관을 비롯해 다수의 벽화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캠퍼스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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