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의 이제는 국가유산] [55] 화마가 비껴간 안동 만휴정의 초여름

명승 ‘안동 만휴정(晩休亭) 원림’을 찾았다. 산 아래 입구에서는 그간의 사연을 담은 글이 맞아주었다. “지난해 봄, 화마가 덮치던 그날. 사람의 손이 먼저 달려와 정자를 감쌌습니다. 불은 비껴갔고 돌과 나무와 물소리는 여전히 여기 남아 있습니다.”
오솔길을 따라가 보니 산불 직후 찾았던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불이 지나간 흔적이 얼룩덜룩하게 남았지만, 푸릇해진 나무와 초여름 꽃들이 생채기를 다독이며 피어 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알려진 곳답게 대사마저도 풍경의 일부가 되어 오솔길의 포토존이 되었다. “합시다. 러브, 나랑 같이.” 드라마 주인공이 사랑을 고백한 장면은 긴 여운을 남기며 많은 이들을 찾게 했다. 그 감동에 이끌려 왔다가,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고졸한 멋에 반하는 명승이다.

만휴정은 조선 시대 문신 김계행(1431~1517)이 만년에 즐겨 찾아 쉬었다고 하여 유래되었다. 세상 풍파 뒤로하고 늦게나마 마음을 돌본 이곳은 선비들의 시구 속 풍류를 담고 등장한다. 수려한 계곡을 따라 층층이 떨어지는 폭포와 깊은 물웅덩이, 옥빛 물과 너럭바위는 지금도 한결같다.
청백리로 칭송받던 김계행의 성품이 깃들었듯 인공적인 요소가 절제된 원림이다. 주변 자연 요소를 그대로 한 채 소박한 정자,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담장 안팎에 적게 심은 수목이 전부다. 산불이 났을 때 진화에 힘쓴 손길도, 불길을 틀어준 바람도 이제는 모두의 기억이 되었다.
불탄 흔적 그대로 담장에 기대고 있는 배롱나무는 곧 꽃을 피우겠지. 돌아 나오는 길에 마음을 잡은 대사가 그곳에 남은 정자와 지금 우리의 시간도 함께 품으며 다독여 준다. “내 걱정은 잠시 잊고, 늘 그랬듯 어여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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