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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 영웅전)才士 정도전,그의 삶과 죽음

한문역사 2026. 6. 12. 14:37

신복룡의 신 영웅전
재사 정도전, 그의 삶과 죽음
중앙일보
입력 2026.06.11 00:04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우리 역사학에서 門中이라고 하는 불퇴전의 장벽으로 말미암아 어느 인물의 명예와 허물을 다루기가 아주 조심스러운데, 정도전(鄭道傳·1342~1398·사진)의 경우가 그렇다. 종친모해죄라는 희한한 죄목으로 처형되고 신원(伸冤)을 하는 데 500년이 걸린 상황이 그의 과오를 발명하기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정도전은 고려말 봉화(奉化)의 호족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사찰 노비의 손자였다는 굴레가 따라다녔다. 그 아버지가 형부시랑을 지냈는데도 허물이 그 자식 대까지 이어졌다. 또 正史가 아닌 이긍익(李肯翊)의 기록에만 정몽주(鄭夢周)가 서얼인 그를 멸시하고 하대했다는 기록이 보이는 것도 좀 특이하다.


정도전이 목은(牧隱) 이색(李穡) 문하에서 정몽주와 함께 사직을 이어갈 양정(兩鄭)이라는 중망을 받은 것이라든가, 그가 쓴 『조선경국전』의 충실함으로 볼 때 치국의 재능을 타고난 것이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졸기(卒記·태조실록 7년 8월 26일)’에 담긴 험담에는 미심한 부분이 적지 않다.


정도전의 생애에서 가장 논점이 되고 있는 불교 박해도 믿기 어렵다. 그는 불교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봉원사(奉元寺)의 현판을 쓸 정도로 불가에 애정도 있었다. 문제는 ‘불씨잡변(佛氏雜辨)’이다. 그가 진실로 불교를 배척할 뜻이 있었다면 세도가 드높던 시기에는 아무 말도 없다가 세상 떠나던 해에 뒤늦게 왜 그런 책을 썼을까?

대부분의 재사가 그렇듯이 정도전은 입이 무거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술자리에서 “한 고조 유방(劉邦)이 장량(張良)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유방을 선택한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이성계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태조를 선택했다”는 은유가 되어 이방원의 노여움을 샀고 끝내 그것이 빌미가 되어 죽음을 맞았으니, 그가 좀 더 진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나 지금이나 술이 죄였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35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