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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아무튼 주말) 신라 최대 사찰 황룡사 목탑지 출토 유리구슬

한문역사 2026. 6. 22. 15:05

'신라 최대 사찰' 위상에 걸맞은 규모와 다채로움

[아무튼, 주말]
[김혜원의 박물관 산책] (20) 황룡사 목탑지 출토 유리구슬

김혜원 국립대구박물관장
입력 2026.06.20. 00:30업데이트 2026.06.2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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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목탑지에서 출토된 유리구슬, 신라 645년쯤. /국립경주박물관

신라 무덤이나 사찰 유적 출토품은 질적으로뿐만 아니라 양적으로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금관이나 정교한 사리기에 눈이 휘둥그레지다가도, 넘칠 정도로 많은 양의 토기와 마구(馬具)

장식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수량을 보고 놀라는 유물로 유리구슬도 있다.

예전 우리나라 고대 유리를 주제로 한 전시를 준비할 때, 진열장 안에 놓으면 저절로

스펙터클이 연출되는 수백 개의 유리구슬을 보며 조상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다가도,

그 수량을 셀 때 중간에 헷갈려 여러 번 다시 세며 참으로 사람을 애먹이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3세기 몽골 침입으로 불타버린 황룡사 9층 목탑이 서 있던 자리에서는 사리기와 공양품이 발견되었다.

발굴 50주년을 맞아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이에 대한 최근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특별전을 개최 중이다.

사리기와 공양품은 신라 최대 규모 사찰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다채롭고 호화로운데, 유리구슬 역시

사찰의 남다른 스케일을 보여주듯 3000여 개에 이른다. 보통 ‘구슬’이라고 부르지만 공 모양이 아닌

두툼한 도넛 같은 형태이며, 가운데 난 구멍을 이용하여 엮을 수 있다. 색은 푸른색·노란색도 있지만,

초록색이 다수를 이룬다. 구슬 중에 흰색을 띠는 것도 있는데 원래 색이 아니라 풍화되어 나타난 색이다.

 

황룡사 목탑지에서 발견된 유물은 심초석(心礎石·중심기둥을 받치는 주춧돌) 가운데 마련한

사리공(舍利孔·사리를 안치하는 구멍)에서 나온 것과 심초석 아래에서 나온 것으로 나뉜다.

사리공에서 나온 유물은 645년 황룡사 목탑 창건 당시의 것과 이후 여러 차례 추가로 넣은 것이 섞여 있다면,

심초석 아래 유물은 창건 당시에 넣은 것으로 제작 연대 하한이 645년이다.

유리구슬은 심초석 아래에서 금속제 장신구와 그릇, 동경, 청동 방울, 무기 등

다양한 유물과 함께 발견되었다. 이들은 건축물 기단부를 만들 때 땅의 나쁜 기운을 진압하기 위해

진귀한 물건을 땅에 묻는 관습의 맥락에서, 또한 사리가 상징하는 부처에게 바친 공양품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심초석 아래에서 발견된 유물의 종류와 구성은 앞선 시기 신라 무덤 부장품과 유사한 점도 흥미롭다.

유리구슬은 신라 무덤에서는 다량 출토되는데, 가장 많은 황남대총의 경우 4만여 개에 이른다.

불교 맥락에서 유리는 칠보(七寶)의 하나로 중시되어 공양품과 장엄에 활용되었지만,

사찰에서 발견된 유리구슬로 가장 많은 수량을 보여주는 황룡사의 사례는

신라 장례 전통의 연속성을 생각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