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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고사리와 도라지의 退場

한문역사 2026. 7. 10. 17:29

만물상] 고사리와 도라지의 '퇴장'

입력 2026.07.0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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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2년 차였던 1947년, 조선은행(한국은행 전신)이 서울에서 처음으로 물가를 조사했다. 수십 품목을 들여다보던 조사원들은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체 가계 지출의 절반가량을 세 품목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쌀·장작·고춧가루가 46.3%였다. 당장 한 끼를 먹고 추위를 피하는 것이 삶의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전국 단위의 소비자물가지수 출범은 1965년. 직접 가정을 방문해 쌀 한 바가지, 석유 한 통, 목욕탕 입장료 등 111개 품목의 가격을 손글씨로 장부에 적었다.

▶지금은 455개를 온라인 등으로 조사한다. 국가데이터처가 5년마다 들어오고 빠질 품목을 정한다. 이번 개편에선 챗GPT와 쿠팡 구독료 등 10개 품목이 새로 들어갔다. 인공지능 시대라 그러려니 하면서도, 빠진 품목에서 눈이 멈췄다. 반세기 동안 자리를 지킨 고사리와 도라지가 제외됐다. 나물 직접 사서 다듬고 무쳐 먹는 가정은 요즘 손에 꼽힌다. 차례상과 제삿상의 대명사였던 고사리와 도라지라지만, 요즘은 성균관까지 나물 3종 고집할 필요 없다고 권고하는 세상 아닌가. 여전히 제사 차리는 집 찾기도 쉽지 않다.

 

▶들고 나는 품목을 보면 세태가 보인다. 5년 전에는 넥타이가 빠졌다. 자율 복장제 확대와 노타이 문화 속에 넥타이 공장들은 문을 닫았다. 같은 해 프린터와 사진기도 제외됐다. 디지털 문서가 확대됐고, 사람들은 이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30년 넘게 자리를 지키던 종이 사전은 2011년 개편 때 빠졌다. 전자 사전 등장 이후 책상을 지키던 국어·영어 사전의 시대도 끝이 났다.

▶올해 새로 들어간 음식 품목에는 마라탕과 밀키트가 있다. 가구당 월평균 지출액 대략 300원 이상이 포함 기준이다. 2005년에 피자와 치킨이 들어가며 패스트푸드 시대를, 2010년엔 원두커피가 입성하며 카페 문화의 본격 개막을 선언했다. 10년 전에는 초밥, 5년 전에는 쌀국수가 포함됐다. 이들만 봐도 대한민국 식탁의 다채로운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원년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은 멤버가 있다. 쌀·쇠고기·돼지고기와 소금·간장·된장이다. 한국인의 삶을 지켜온 ‘영혼의 식재료’다. 도라지·고사리의 퇴장 역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일 것이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삐삐와 사진기가 스마트폰에 자리를 내주었듯, 매달 결제하는 AI 구독료 역시 언젠가 다른 신문물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물가지수는 우리가 통과 중인 시대를 담아내는 정직한 거울인 셈이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