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소리는 배경 음악이 돼주고… 노을빛은 바다 위에 마법 같은 그림을 그렸다
[아무튼, 주말]
몸도 마음도 즐거운
발리 짐바란·사얀 여행

드라마와 영화를 자주 본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덕분에 내가 아주 어렸을 적 혹은 태어나기 전에 나온 것들도 꽤 많이 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드라마를 한 편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발리에서 생긴 일’을 고르겠다. 발리에서 만난 주인공들이 발리에서 맞이한 파국적인 결말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배우 하지원이 연기한 주인공 이수정은 발리를 “지상 최후의 파라다이스”라고 소개한다. ‘얼마나 좋길래 땅 위의 천국, 낙원이라 말할까?’ 드라마를 보는 내내 궁금했다. 그런 발리를 지난달 다녀왔다. 인천국제공항에서 7시간 걸려 도착한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심장이 ‘콩콩콩콩콩’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발리에서 생길 일을 기대하는 두근거림이었다. 배경은 같은 발리이지만, 드라마 속 비극이 아니라 나만의 멋진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설렘이랄까.
◇붉은 저녁 하늘과 바다를 품은 짐바란
인도네시아는 1만7000개의 섬으로 구성된 군도 국가다. 이 섬들 가운데 한국인에게 여러모로 가장 친숙한 곳은 아마도 발리일 것이다. 발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인 제주도의 약 3배 크기다. 시차는 1시간. 한국보다 느리다. 발리는 한국인에게 여러 이유로 인기 있지만, 현지에서나 귀국 후나 시차 적응으로 크게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점은 휴양지로서의 매력을 한층 높여준다.
발리의 남쪽에 위치한 마을 짐바란은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다. 공항과 가깝다 보니 도착 첫날 또는 마지막 날 짐바란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는 여행객이 많다. 짐바란은 저녁이 되면 붉게 물드는 하늘과 바다로도 유명하다. 그림 그리기에 영 소질이 없는 나도, 이 모습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마구 생길 정도로 아름다웠다.

낭만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짐바란 해안가엔 저마다의 멋을 뽐내는 리조트들이 들어서 있다. 이중 ‘포시즌스 발리 앳 짐바란 베이’(포시즌스 짐바란 베이)에 짐을 풀었다. 포시즌스 짐바란 베이에는 147개 프라이빗 빌라가 있는데, 모든 빌라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 객실 내 야외 수영장(플런지 풀)은 석양을 감상하기 최적의 장소다. 오후 늦게 물에 들어가 놀다 보면, 노을빛 가득한 해변이 눈앞에 펼쳐지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바다보다 나무와 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이곳은 훌륭한 선택지다. 리조트 전체가 열대 정원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 초록·갈색의 나무들, 분홍·보라·흰색의 꽃들 덕에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눈이 심심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이 아름다운 조용하고 한적한 휴양지로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몸을 조금 바삐 움직이면 새로운 재미를 금방 느낄 수 있다. 살짝 가파른 비탈길에 지어져 있어 동네 뒷동산 오르듯 산책을 하거나 해변을 따라 달리기를 할 수 있다. 또 바다가 보이는 정자에선 각종 요가 수업도 이뤄진다. 휴식과 건강을 모두 챙기는, 이른바 웰니스 여행이 가능하다.

짐바란에서 맨 먼저 찾은 웰니스는 ‘달리기’였다. 발리는 4월부터 10월까지 비가 적게 내리고 습하지 않은 건기가 이어진다. 한낮 온도는 30도 초반까지 올라 덥긴 하지만, 아침과 저녁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다. 올해로 달리기 4년 차에 접어든 나는 6월 발리의 선선한 아침을 잠으로 흘려보낼 수 없었다.
발리 도착 첫날 숙소엔 자정이 다 돼서 도착했지만,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났다. 러닝화를 신고 숙소 밖을 나왔는데 어디를 달려야 하나 고민이 됐다. 직원에게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해안가를 따라 뛰면 좋다는 말과 함께 조깅 코스 안내 종이를 하나 건네줬다. 거기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리조트 내 ‘니르바나 샨티 요가 정자’에서 시작해 해안 산책로를 달리면 좋습니다. 니르바나 샨티 요가 정자에서 해변의 끝(공항)까지 왕복 8㎞.”
호기롭게 8㎞를 달려보려다 실패했다. 4.5㎞밖에 달리지 못했다. 해안가를 뛰는 동안 러닝화가 파도에 젖어버리고 모래가 들어가 발이 무거워진 탓이다. 목표한 거리는 채우지 못했지만, 파란 바다를 보는 재미와 파도 소리를 듣는 즐거움에 그 어느 때보다 신나게 달렸다.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 아침잠을 자는 강아지들까지 여유로운 모습이 예뻐, 달리다가 멈춰 서서 구경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기도 했다. 그때 귀에 들려오던 “촤르르” “철썩철썩” 파도 소리는 최고의 배경음악(BGM)이 돼 주었다. 이렇게 여유로운 짐바란의 해안가는 저녁이 되면 해산물 음식점들을 찾는 여행객들로 붐빈다. 두 얼굴의 반전 매력을 가진 짐바란이다.

두 번째로 찾은 웰니스는 ‘요가’. 아침 달리기를 시작한 장소인 ‘니르바나 샨티 요가 정자’에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2~3개의 서로 다른 요가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그중 인도네시아 대나무(Bamboo) 스트레칭에 참여했다. 유연성을 높이고 자세를 개선해주는 이 스트레칭은 인도네시아 전통 무술인 ‘펜칵 실랏’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처음 정자에 도착했을 땐 그리 힘들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여행 온 이들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이니 난도가 높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것. 또 정자 앞에 펼쳐진 탁 트인 바다 풍경에 힘든 걸 느낄 새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나무를 잡고 몸의 균형을 잡아 나가는 동작이 하나씩 진행될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옆에서, 뒤에서 사람들이 대나무 막대기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해냈다. 역시 할 땐 힘들어도, 끝까지 하고 나면 뿌듯한 게 운동이다.
◇래프팅부터 해먹 낮잠까지 다채로운 사얀
수상 레포츠를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 발리는 인기가 많다. 고무보트를 타고 계곡의 급류를 헤쳐 나가는 래프팅 명소가 3곳이나 있다. 인도네시아 관광부에 따르면, 발리의 래프팅 명소는 아융강(Ayung River)과 텔라가와자강(Telaga Waja River), 멜랑잇강(Melangit River)이다.
아융강은 발리에서 가장 긴 강으로, 북쪽 산악지대에서부터 약 75㎞가량 이어진다. 국제 하천 난이도는 물살의 세기·바위 상태·낙차 등으로 정해지는데, 아융강은 건기에 2급과 3급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관광부는 이에 대해 “물살이 다소 거칠고, 바위와 작은 낙차는 있지만 상당한 위험은 없다는 의미”라며 “기본적인 노 젓기 능력과 약간의 래프팅 경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우기인 11월부터 3월까진 아융강 수위가 상승해 4급으로 분류된다고 하니 조심할 필요가 있겠다.

인도네시아 관광부는 아융강 래프팅을 더 잘 즐길 수 있는 꿀팁 한 가지를 소개한다. “강물을 따라 울창한 열대우림과 폭포, 논 등을 지나게 됩니다. 신들의 섬이라 불리는 발리에 자연이 어떻게 조화와 아름다움을 축복했는지 직접 느껴보세요. 출발 시각을 조정할 수 있다면, 더 좋은 빛을 받을 수 있는 오전 시간에 출발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발리에서 뵙겠습니다!”
두 번째로 짐을 풀었던 ‘포시즌스 발리 앳 사얀’(포시즌스 사얀)은 여행객들이 래프팅을 많이 하는 아융강 계곡과 맞닿아 있다. 사얀은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에서 북동쪽으로 약 35㎞ 떨어진 곳이다. 현대식 인도네시아 음식을 경험할 수 있는 ‘아융 테라스’, 가벼운 식사와 숙성 칵테일을 먹을 수 있는 ‘쟈티 바’, 헬스장, 프론트 데스크 등이 모두 다 있는 포시즌스 사얀의 중심 건물은 ‘라이스 보울’(Rice Bowl) 형태로 디자인이 독특하다. 이 건물 맨 윗층 루프톱은 연꽃 연못으로 조성해, 하늘에서 내려다봤을 때 주위 울창한 열대우림과 잘 어울린다.
여행객들은 보통 리조트 내에서 이동 수단인 ‘버기’를 타고 다닌다. 버기를 타고 세 번째 웰니스를 위해 ‘다르마 샨티 요가 정자’를 방문했다. 이곳은 아침에 차크라·안티그래비티 요가 프로그램이 열리고, 오후엔 ‘신성한 낮잠’(Sacred Nap) 프로그램과 하타·파워 요가 프로그램 등이 진행된다. 이 중 신성한 낮잠 시간에 맞춰 갔더니, 프로그램 진행자가 나를 해먹에 앉혔다. 그러곤 편하게 누우라는 것이 아닌가. 한 번도 해먹에서 잠을 자본 적 없던 터라 처음엔 해먹이 크게 흔들려 무서웠지만, 갈수록 해먹이 익숙해지면서 흔들림이 줄어들고 편안하게 낮잠에 빠져들었다. 낮잠을 잘 못 자는 사람도 기절한 듯 잘 수 있는 편안함이었다.

◇비밀을 지켜주세요
마지막 웰니스로, 발리 현지 마을 둘러보는 투어에 참여했다. 이 투어의 이름은 ‘캔 유 킵 어 시크릿?’(Can You Keep a Secret?)이다. 말 그대로 발리의 어느 마을, 어떤 사원에 가는지 비밀이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방문 지역을 절대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가이드는 당부한다. 해당 마을과 사원이 관광지로 유명해지면, 현지 사람들의 일상이 불편해질 뿐만 아니라 고유한 지역 전통문화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우려한 것일 테다.
빨간색 빈티지 폴크스바겐 오픈카를 타고 리조트 밖을 달렸다. 정말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동하던 1시간가량이 크게 답답하지 않았다. 서울과 달리 높은 건물 하나 없이 양쪽으로 탁 트인 시야가 주는 개방감과 해방감 덕분. 그렇게 관광지가 아닌 진짜 발리인들이 사는 마을에 도착했다. 30명이 넘는 가족이 함께 산다는 한 가정집을 방문했다. 가족과 친척들로 북적거리는 풍경은 한국에선 명절 때도 보기 힘들어졌는데, 이곳엔 매일 저녁이 가족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겠다는 생각에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가정집에서 발리 전통 공물인 ‘차낭 사리’ 만드는 법을 배우고, 짧은 기도를 했다. 투어 이름처럼 내 기도도 비밀이다. 발리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차낭 사리를 만들고 기도할 내용 하나쯤은 미리 고민해 보고 가면 좋겠다. ‘지상 최후의 파라다이스’, 땅 위의 천국인 발리에서 신들이 기도를 들어줄 거란 설렘을 안고서.
[독립전쟁 영웅 담은 국제공항, 곳곳에 있는 차낭 사리]
알고 가자, 발리
“청첩장도 안 주고 결혼했어?” “신혼여행을 발리로 간 거야?”
발리에서 지낸 4박 6일간 연락이 온 이들에게 “발리에 있다”고 말하면,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였다. 정말 놀라서 물어본 이들도 있고, 아닌 걸 알면서도 장난을 친 경우도 있다. 요즘 발리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러닝과 헬스를 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지로 인기라지만,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발리는 ‘신혼여행지의 대명사’로 통한다는 걸 실감했다. 신혼여행을 위해서든, 운동을 위해서든 발리로 떠날 때 알고 가면 더 재밌는 사실 두 가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발리를 찾는 여행객이라면 한 번쯤은 지나야 하는 곳, 바로 ‘덴파사르 국제공항’이다. 하지만 이 국제공항의 진짜 이름은 따로 있다. 바로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이다.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의 영웅 I Gusti Ngurah Rai(이 구스티 응우라 라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917년 발리에서 태어난 응우라라이는 발리에서 네덜란드 식민 지배에 적극 저항했으며,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싸우러 나간 전투에서 1946년 전사했다.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덴파사르’가 아니라 ‘응우라라이’라는 이름이 보인다고 해서 당황할 필요 없다.

다음으로는 발리를 걸을 때 길을 잘 보면 손바닥 크기 정도 되는 꽃바구니가 곳곳에서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발리의 전통 공물인 ‘차낭 사리’다. 이 꽃바구니에는 하얀색·빨강색·주황색·보라색 등 알록달록한 꽃들이 담긴다. 담배나 먹을 걸 같이 넣기도 한다고. 차낭 사리가 뭔지 모르고 가면 발리 길거리는 왜 이렇게 지저분할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밟거나 치워 버리면 안 된다. 인도네시아 관광부는 여행객들에게 차낭 사리를 훼손하지 말라고 안내한다. 발리 사람들에게 차낭 사리는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면서, 우주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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