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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만물상)陸士에 새겨진 韓美同盟 歷史

한문역사 2026. 7. 13. 12:28

만물상] 육사에 새겨진 한미동맹 역사

 

입력 2026.07.12. 22:27업데이트 2026.07.12.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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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가 발발하자 태릉에서 교육 중이던 육군사관학교 1, 2기 생도 539명도 전선에 투입됐다.

1기 262명은 임관을 보름 앞두고 있었고, 2기 277명은 입교 25일밖에 되지 않았다.

포천·태릉·수원 전선에 소총수로 투입된 이들 중 151명이 북한군 탱크에 맞서다 전사했다.

생존 생도 중 94명도 이후 다른 전장에서 전사했다. 6·25 기간 중 전사한 육사 1, 2기는

모두 245명으로 전체 생도의 45% 수준이다.

▶북한군은 육사 생도들뿐 아니라 서울 진입로인 태릉의 육사 교정을 유린하고 불태웠다.

1954년 6월 생도들이 태릉으로 돌아왔을 때 교정은 쑥대밭이었다. 교실도 숙소도 없었다.

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제대로 된 국가가 되려면 정예 장교를 양성해야 한다”

미국 웨스트포인트의 시스템을 육사에 이식했다.

그는 미국 본토와 주한 미군을 상대로 모금 운동을 했고 그 돈으로 도서관을 건립해 기증했다.

 

▶그는 1955년 육사 11기 졸업식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나는 육사의 최적지를 찾기 위해 전국 여러 곳을 찾아다녔고,

이곳이 모든 것을 갖췄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은 방어와 공격의 골든라인이다.

한국 청년들은 이곳을 조국 통일을 위한 ‘황금 같은 기회(Golden opportunity)’로 생각하길 바란다”

고 했다. 밴 플리트 장군의 외아들도 6·25 중 전사했다.

1960년 육사 교정에는 밴 플리트 장군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미국 웨스트포인트의 1945~1951년 졸업생 중 다수가 한국전에 투입됐다.

1945년 졸업자 25명, 1946년 14명, 1947년 12명, 1948년 17명, 1949년 30명, 1950년 41명,

1951년 11명 등 150명이 한국에서 전사했다.

소총수로 전장에 투입됐던 육사 1, 2기처럼 소위로 갓 임관했던 미 육사 졸업생들도

6·25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육사 교정에는 웨스트포인트 졸업생들의 추모비가 기수별로 세워졌다.

▶태릉 교정에는 피지도 못하고 산화했던 육사 1·2기 생도들의 영령과

이국 땅에서 목숨을 바친 웨스트포인트 생도들의 투혼과 밴 플리트 장군의 헌신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역대 주한 미군 사령관들이 육사를 방문해 밴 플리트 동상에 헌화하는 것은

이런 동맹의 역사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육사 校庭에 피로 새겨진 한미 동맹의 역사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육사 이전을 지금 같은 방식으로 추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