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유머란 무엇인가] 원래 여름은 웃음이 많은 계절이었다
[6] 유머와 기후위기
평상에서 모기장 치고 잔 세대, 고모와 삼촌은 얼마나 웃겼던가
에어컨에 밖은 더 뜨거워지는 불평등… 공통의 감각도 사라진다

지난주, 워크숍 일정으로 열흘 넘게 독일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세 군데 대학을 돌아다니며 학생들과 만나 토론했는데, 인상적인 점 하나. 날이 무척 무더웠지만 세 대학 강의실 모두 에어컨이 없었다. 그래도 선풍기라도 한 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없었다. “작가님, 많이 더우시죠?” 담당 교수는 그렇게 묻고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하지만 그마저도 밖에서 공사한다고 10분 후 모두 닫아버렸다). 나는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생수를 두 병 가까이 마시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지만, 땀만 더 흐르는 것 같았다. 원래 나는 학생들과 웃으면서 한국 문학에 대해 좀 길게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유머도, 농담도 나누면서 그렇게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한국 문학의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만 것이다. 반대로 독일 학생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람이 우선 살고 봐야지. 그러면서 그 순간 깨달은 거 하나. 기후위기가 심해지면 유머는 점점 더 사라지겠구나.
더 큰 문제는 호텔이었다. 호텔에도 에어컨이 없었다(유럽 여행 가시는 분들, 예약 사이트에서 에어컨 유무 꼭 확인하세요). 그나마 선풍기는 한 대 놔줬는데, 일정 내내 그걸 껴안고 지냈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독일은 원래 이렇게까지 덥진 않았다고 한다(날씨 요정답게 내가 도착하기 일주일 전부터 40도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습도도 높지 않아 그늘에 들어가면 선선했고, 밤에는 아무 문제없었다는 것이다. 아니, 그러면 이제라도 에어컨을 설치하면 되잖아요? 독일이 가난한 나라도 아니고.... 거기에는 또 다른 윤리적인 문제가 스며들어 있었다. 말하자면 타자와 후대를 생각하는 마음들. 에어컨을 설치하려면 건물 구조를 바꿔야 하고(내가 강의한 독일의 대학 건물 가운데 한 곳은 1700년대에 지어진 곳이었다), 그에 따른 엄격한 규제도 규제이거니와(그 때문에 설치비가 4000만원 이상 든다고 들었다),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 하나 시원하자고 다른 사람에게 더 큰 무더위를 겪게 하는 것이 온당한 일이냐, 하는 질문들.

각설하고, 한국은 이제 너무도 시원한 국가가 되었다. 지하철을 타도, 버스를 타도, 시원한 에어컨이 돌아간다. 학교 교실도, 고시원도, 군 내무반도, 삼복더위 내내 쾌적한 온도와 산뜻한 습도가 유지된다. 예전엔 더위를 피하려고 은행에 간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것도 다 옛말이 되어버렸다. 모두가 시원해지면 좋겠지만, 다른 모든 일처럼 이 또한 명암은 존재한다. 밖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더위를, 밖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모두 떠안고 있다는 것. 이런 기후(온도)의 불평등은 그에 따른 유머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어떤 사람에겐 웃음이, 다른 사람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를 들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밖은 너무 춥다. 도대체 지구온난화는 어디로 갔나?’라고 반복해서 농담했지만, 이에 대한 그레타 툰베리의 대답은 ‘우리 집은 불타고 있다’라는 분노의 외침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도무지 유머가 숨을 쉬기 어렵다. 진정한 유머란 필연적으로 공통의 상처, 공통의 감각 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그렇다(‘내 더위 사가라’라는 말이 그 한 예이다). 한데, 기후위기는 분명 공통의 문제가 아니던가? 그 공통을 공통으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무감각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위기일지도 모른다. 에어컨 때문인지 몰라도 이제 한국은 죄다 창문을 닫고 산다. 한 집에서도 각자의 방에 각자의 에어컨을 달고 지낸다. 여름이지만 방문을 꼭꼭 닫고 잠이 드는 풍경들. 이 물리적인 주거 환경의 변화는 타자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점점 타자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있다. 나는 아마도 여름날 평상에서 모기장을 치고 잠든 마지막 세대일 거 같은데, 그때도 여름밤은 지금처럼 무더웠다. 하지만 그때는 모두가 함께 무더운 밤을 보냈다. 그 무더운 밤에 나의 고모와 삼촌들은 또 얼마나 웃겼던가!
독일 호텔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자주 산책을 나갔다. 거기 시민들은 밤에도 노천카페나 잔디밭에 나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간간이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 나는 또 정정할 수밖에 없을 거 같다. 기후위기로 인해 유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후위기를 어떻게 대응하느냐, 그 모습에 따라 유머의 행방도 달라질 것이다. 더 단단해질 것이냐, 아니면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는 유머가 될 것이냐. 어쩐지 우리는 자꾸 후자 쪽으로 더 기울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래저래 여름은 유머에게도 힘든 계절이 되어가고 있다. 원래 여름은 웃음이 많은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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