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도끼만행 50주기, '감사의 정원'서 추모하자
미군 희생에 한국도 분노
北 무릎 꿇리고 함께 울어
반세기 전 빛난 혈맹 우정
광화문광장서 되살렸으면

1976년 11월 11일 미국 뉴욕주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한 회의실에 미군 장교들과 젊은 여성이 모였다. 그녀에게 두툼한 편지 뭉치를 건네며 리처드 스틸웰 주한 유엔사령관이 말했다.
“한국인들이 쓴 이 편지들에는 진심 어린 슬픔과 분노, 깊은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남편의 숭고한 희생을 그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 여성은 석 달 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아서 보니파스 대위의 아내 마샤였다.
유엔사 경비중대장이던 아서는 8월 18일 초소 경비 시야 확보를 위해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중 난입한 북한군의 도끼와 곡괭이에 목숨을 잃었다.
세 아이의 아버지였던 그는 일주일 뒤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예정이었다.
함께 있던 부하 마크 배럿 중위도 희생됐다.
이 사건 직후 6·25 정전 이후 처음으로 데프콘3(준전시)를 발령한 사령관이 스틸웰이다.
아서는 모교 웨스트포인트 묘지에 안장됐고,
비무장지대(DMZ) 미군 기지는 그의 이름을 따 ‘캠프 보니파스’가 됐다.
편지가 전달된 회의실은 아서가 임관 선서를 한 곳이었다.
한편 플로리다대를 졸업하고 입대한 배럿은 첫 해외 근무지가 생애 마지막 근무지가 됐다.
한 달 뒤면 판문점 도끼만행 50주기다. 전쟁 재발 직전까지 갔던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다.
동맹의 가치를 일깨웠다는 점에서 그렇다. 당시 제럴드 포드 미 대통령은 응징 조치로 미루나무 벌목을 결정했다.
북미 민간 설화 속 거인 나무꾼을 따 ‘폴 버니언 작전(Operation Paul Bunyan)’으로 명명됐다.
도끼만행 사흘 뒤 한미 지상 병력 140명이 투입돼 벌목 작업을 경비하는 동안
F-111·B-52 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을 선회하거나 출격 대기했다.
동해상엔 전투기 65대를 실은 미드웨이 항공모함이 출동했다.
‘폴 버니언 작전’ 이 40여 분 만에 마무리된 뒤
북한은 미국에 비공개로 김일성의 사과 메시지를 전달했다. 동맹의 단결 앞에 굴복한 것이다.

지금 현실은 우리가 동맹의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리며 국익을 훼손하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한다. K방산이 캐나다 잠수함 사업을 비롯해 주요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신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기술력으로 대체할 수 없는 신뢰 부족’이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기각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 10주년을 맞아 미국 주도로 14국이 낸 공동 성명에 6·25 참전국(의료 지원 포함) 여덟 나라가 이름을 올렸지만 한국은 없었다. 정부가 연명 요청을 거절했거나 현 정부 성향을 고려해 연명 요청 자체가 없었다면 심각한 문제다.
한국이 북한·중국·러시아·이란 등 권위주의 정권에 온정적일수록 자유진영 내 ‘보이지 않는 벽’은 더 견고해질 수 있다. 도끼만행 50주기를 그런 우려를 잠재울 기회로 삼아야 한다. 유엔사는 해마다 사건 현장에서 부대원을 중심으로 추모 행사를 진행해 왔다. 올해는 서울 광화문광장 ‘감사의 정원’에서도 많은 시민과 함께 추모하면 어떨까. 감사의 정원은 외교부 청사와 미국 대사관 사이에 자리 잡아 의미가 깊고, 광화문광장이 세계적인 도심 관광지라는 점에서도 상징성이 크다.
8월 18일 밤, ‘감사의 정원’에서 아서 보니파스 대위와 마크 배럿 중위의 희생을 기리는 불빛이 하늘을 밝힐 때, 50년 전 그 손편지에 담긴 진심 어린 마음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 불빛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우리가 지켜야 할 한미동맹의 신뢰와 안보에 대한 굳은 결의를 상징한다. 반세기 전 희생이 옛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우리와 미래 세대의 길을 밝히는 등불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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