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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부터 종이배를 접지 않았을까

한문역사 2026. 7. 20. 17:30

문화산책] 우리는 언제부터 종이배를 접지 않았을까

  • 박미정 대구문인협회 수필분과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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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7-19 17:29  |  수정 2026-07-20 09:38  |  발행일 2026-07-20
 

 

비가 오면 우리는 종이부터 찾았다. 공책 한 장을 조심스레 뜯어

몇 번 접으면 하얀 종이배 한 척이 태어났다. 골목길 물웅덩이는 강이 되고,

빗물이 모인 도랑은 바다가 되었다. 종이배를 살며시 띄우는 순간,

아이들의 마음도 함께 출발했다.


배는 곧장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돌멩이에 걸리기도 하고, 낙엽에 막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손으로 물길을 터 주었다.

작은 나뭇가지를 치우고 흙을 살짝 파내면 막혀 있던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조금만 길을 내어 주면 종이배는 다시 흘러갔다.

우리는 그 작은 배를 따라 웃으며 골목 끝까지 달려갔다.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달리고 함께 바라보는 시간이 더 즐거웠다.


비에 젖은 운동화도, 흙탕물이 튄 바지도 그날만큼은 꾸중보다 웃음이 먼저였다.

그때는 몰랐다. 종이배를 띄우던 시간이 기다림을 배우는 시간이었고,

길이 막히면 돌아가는 법을 익히는 시간이었으며,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음을.


비 오는 날은 불편한 날이 아니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폭포가 되었고,

골목은 강이 되었으며, 종이배 한 척은 먼바다를 향하는 배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상상하는 만큼 넓었다. 작은 골목 하나도 세계가 될 수 있었고,

빗물 한 줄기도 끝없는 여행길이 되었다.


요즘도 장마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골목에도 여전히 빗물이 고인다.

그러나 그 물길을 따라 종이배를 띄우는 아이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손에는 종이 대신 스마트폰이 들려 있고,

화면 속 세상은 가까워졌지만 골목의 바다는 조금씩 멀어졌다.


문화는 공연장이나 박물관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 오는 날 종이배를 띄우던 골목도 우리의 소중한 생활문화였다.

함께 웃고, 함께 기다리며, 함께 흘려보내던 시간은 어느 교과서에서도 배울 수 없는 삶의 수업이었다.

서로의 종이배를 응원하고,

먼저 도착한 아이가 뒤따라오는 친구를 기다려 주던 마음도 그 골목에서 자라났다.


어른이 된 뒤에도 삶은 종이배를 닮아 있었다. 뜻하지 않은 물길을 만나고,

거센 비를 견디며, 때로는 제자리에서 맴돌기도 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이 오늘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물길이었다.

빠른 길보다 굽은 길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깊은 풍경을 품게 되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빨리 가는 법만 익혔다. 먼저 도착하는 것을 성공이라 믿었고,

잠시 멈추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종이배는 서두르지 않았다.

물길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면서도 끝내 자신의 길을 잃지 않았다.

때로는 느리게 가는 것이 멀리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종이배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박미정 대구문인협회 수필분과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