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나 맛있었는지…. 가끔씩 총소리가 났어요. 그때마다 사람들은 "또 누가 (지붕에서) 떨어졌나보다"고 수군댔어요.
▲김은숙씨.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2박3일 걸려대전역에 도착했습니다. 군인들이 "남자들을 더 태워야 하니까 여자들은 다 내리라"고 했어요. 무서워서 대들지도 못했습니다. 남편과 떨어져 아기 둘 데리고 무작정 사람들 따라 걸었습니다. 빈집 하나가 있었어요. 쌀통에 먹다 남은 쌀이 있기에 어머니가 밥을 지어 먹었더니 잠이 쏟아졌어요. 그동안 한번도 울지 않던 아이가 피란 떠난 지 나흘 만에 울었습니다. 며칠 후 집주인이 돌아왔어요. 어디로 가야 하나….
대전역에 가보니 기차가 서 있었습니다. 무작정 타려는데 안내원이 "안된다"고 막아요. 쭈뼛거리고 있으니까 어떤 남자분이 그냥 타라고 손짓해요. 용기 내어 올라탔어요. 후….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얼마 안 가 또 "다 내리라"는 거예요. 모두들 우왕좌왕하는데 열차가 또 왔어요. 줄을 서서 타려니까 이번엔 증명서를 보여달래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앞의 아주머니가 "5명 표가 있는데 나 혼자니까 이걸로 타세요" 하는 거예요. 얼마나 고마운 분인지! 하늘이 저를 불쌍히 보았을까요. 죄를 많이 짓고 살았는데 이렇게 운이 좋으니 말입니다.
젖이 안 나와 아기가 계속 울어댔어요. 불쌍한 것. 세상에 나온 지 고작 일주일인데…. 객실을 돌아다니면서 젖 동냥을 했습니다. "젖 먹이는 분 있으면 조금만 먹여주세요. 우리 아기가 울어요." 여기저기서 젊은 여자들이 젖을 물려줬습니다.
드디어부산. 열차는 초량이라는 곳에 멈춰 섰습니다. 어디로 가야 남편을 만나나. 퍼뜩 생각이 떠올랐어요. 남편이 공무원이니 경남도청에 가면 뭔가 알 수 있을 거야. 묻고 물어서 도청에 도착했습니다. 아니, 그런데 문 앞에 고향 분이 앉아 있는 거예요. 그분이 지프차를 내줘서 그걸 타고 연락소에 가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제 행운은 거기까지였나 봅니다. 1·4후퇴 때 낳은 그 귀한 아들은 백일을 못 넘기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급성 폐렴이었지요. 주사 값이 너무 비싸 싼 걸 맞혔더니…. 어미 될 자격도 없는 몸이지요. 차가운 아기 시신을 포대기에 싸서 부산 어느 산에다 묻었습니다.
벌써 새벽 2시네요. 가슴 속 응어리를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가볍습니다. 영감도 재작년에 세상 떠나고, 저도 이제 갈 일만 남았습니다. 한 짐 덜고 가볍게 가겠습니다.(조선일보 '나와 6.25'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