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통합의 상징 "혼이라도 조국 광복 지켜보리라"
중앙선데이
입력 2025.08.30 00:08
업데이트 2025.09.01 13:09
김석동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인물 탐구 〈21〉 일송 김동삼
김동삼 선생은 민족운동에 나선 30년 동안 만주 독립운동 통합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사진은 선생의 초상화. 1988년 옥문성 작가가 그렸다. [사진 독립기념관]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라.”
일송(一松) 김동삼 선생의 유언이다. 선생은 1878년 경북 안동 천전리에서 명문가 유학자 김계락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본명은 긍식(肯植)이며 후일 만주 망명 후 김동삼이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 천전리는 의성 김씨 학봉 김성일 집안이 정착한 유서 깊은 마을로 낙동강 지류에 면해 있으며 한 마을에서 20명 이상의 독립유공자가 배출되었고 경술국치 후 만주 망명자만도 150명이 넘는다.
1907년 김동삼 선생과 협동학교 교직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 맨 뒷줄 왼쪽이 김동삼 선생이다. [사진 국가보훈부]
선생은 퇴계 학맥의 적통을 이은 의병 지도자 김흥락 문하에서 사사하면서 민족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20대 중반 서울로 오가면서 신채호 등과 교유하며 신교육에 눈 뜨고 안동에서 이상룡·류인식에 이어 혁신유림의 길을 걷게 된다. 을사늑약을 계기로 구국계몽운동에 나서 1907년 의병장이었던 류인식 등과 함께 고향에 3년제 중등학교인 ‘협동학교’를 세우고 교사와 교감을 이어 맡는 등 교육사업에 앞장섰다. 협동학교는 보수 유림들의 거친 압력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신민회의 지원을 받아 젊은 지식인을 육성했고 안동지역 구국계몽운동의 진원지가 되었다. 선생은 1909년 이상룡·류인식과 함께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설립해 계몽활동에 나섰고 안희제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 ‘대동청년단’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들어서게 된다.
대한독립선언서 39인 민족대표 서명도
경술국치를 전후해 이상설·이동녕 등은 국외 무관학교 설립을 추진했고 이어 신민회가 독립전쟁을 최고전략으로 채택하고 국외 망명과 무관학교설립을 결정했다. 이즈음 선생과 김대락 등 안동의 혁신유림들도 만주 망명과 독립군기지 건설에 뜻을 모으고 있다가 신민회 소식을 듣고 1910년 한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 망명을 결행했다. 선생의 의성 김씨 문중과 이상룡의 고성 이씨 문중 각 150여 명이 합세해 재산을 정리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해 추풍령·신의주를 거쳐 길림성 유하현 삼원보에 도착했다. 선생은 이곳에서 이회영 6형제와 이동녕·김대락·이상룡 등과 함께 독립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추위·기근·풍토병·마적약탈 등 엄혹한 상황에서도 선생은 1911년 이회영·이상룡을 도와 동포이주와 정착을 지원하는 경학사를 설립해 조직과 선전을 맡았고 이어 군사학교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 경학사 해체 후에는 부민단 조직에 참여해 의사부장을 맡았다. 1913년 선생은 길림성·봉천성·흑룡강성 등 중국 동삼성(東三省)을 뜻하는 동삼(東三)으로 개명하고 이듬해 신흥강습소 졸업생들을 모아 통화현 백두산 서쪽 산속에서 ‘백서농장’을 건립하고 장주를 맡아 독립군 비밀 병영을 운영하게 된다.
3·1운동 직전 1919년 2월 길림에서 국외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했는데 선생은 김규식·이상룡·이승만·신채호 등과 함께 39인의 민족대표로 서명하였다. 39인 중 광복을 맞이한 인사는 불과 11인이었다 한다. 이어 선생은 상해에서 독립운동대표자 29인 중 1인으로 임정 수립에 참여한 후 만주로 돌아와 부민단을 확대 개편해 ‘한족회’를 출범시킨다. 백서농장 군영은 한족회의 군사기관인 ‘서로군정서’로 개편됐다. 선생은 한족회 서무사장을 맡았고 이어 서로군정서 참모장으로서 독립군 조직을 책임지게 되었다. 서로군정서는 임정의 군사기관으로 소속된다. 서로군정서는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협력하며 활동한다. 1920년 일제는 2만여 명의 군대를 간도로 파병해 독립군을 공격했고 김좌진·홍범도 장군은 청산리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그러나 일제의 보복으로 한인사회가 초토화 되는 경신참변이 일어난다. 서로군정서·북로군정서 등은 북상하여 밀산에 집결한 후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고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했으나 공산세력 간 권력다툼으로 독립군 수백 명이 희생당하는 자유시 참변이 일어난다. 선생은 서간도 독립운동전선을 재정비하기 위해 자유시로 이동하기 전 돌아와 참변을 면했다.
1922년 선생은 남만주지역 독립군 조직과 한인사회 통합을 위해 본격 나서게 된다. 남만주 각지를 순회한 후 남만통일회의를 개최해 ‘대한통군부’를 발족시켜 교육부장을 맡았다. 이어 대한통군부가 ‘대한통의부’로 확대 개편되면서 총장으로 추대되었다. 통의부 산하에 무장투쟁부대로 의용군을 두었는데 주력이 신흥강습소를 이은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었다. 경신참변과 자유시 사건으로 붕괴된 만주지역 군사세력을 재건하기 위한 선생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1923년 초 내부적 갈등을 겪던 임정의 쇄신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었다. 국내외에서 400여 명의 대표가 모인 이 회의는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큰 규모로 개최됐고 서로군정서와 남만주 대표로 참석한 선생이 의장으로, 안창호와 윤해가 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동 회의에서 임정의 법통을 유지하면서 개혁하자는 개조파와 임정을 해체하고 신정부를 수립하자는 창조파로 나누어졌고, 개조파 입장에 있던 선생은 양측의 주장을 조정하기 위해 진력했으나 회의는 끝내 결렬된다. 선생은 서간도로 돌아왔다.
선생은 만주지역 독립운동계 통합 노력을 계속해 이상룡·양기탁 등과 함께 전만통일주비회를 구성하고 통의부 대표로 참여해 의장직을 맡고 ‘정의부’가 탄생되도록 했다. 참의부·신민부와 함께 민정과 군정조직을 갖춘 만주지역 3대 조직의 하나인 정의부는 삼원보에 본부를 두었고 선생은 중앙행정위원과 외무위원장을 역임했다. 1925년 임정 국무령에 선임된 이상룡은 선생을 국무위원으로 임명했으나 만주에서의 항일무장투쟁을 위해 부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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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부 출범 후에도 독립운동단체 대통합을 위해 선생은 다시 유일당 운동에 나서게 된다. 1926년 이래 북경에서 안창호 등이 발의하여 확산되고 있던 민족유일당 운동은 독립군단체 위에 하나의 지도 정당을 만들고 정부도 정당 중심으로 운영하자는 것으로 이념으로 갈라진 좌우세력을 통합하는 방안도 되었다. 만주지역에서는 3부 통합을 위해 1928년 정의부 등 18개 단체가 참여하는 통합회의가 열렸고 선생은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전민족유일당 조직을 추진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독립운동계 통합과 통일을 계속 외쳐 온 선생은 유일당 조직이 무산된 후 참의부·정의부·신민부 등 3부 중심의 통합을 추진하기 위해 정의부에서 탈퇴하고 지청천·김좌진 등과 함께 ‘혁신의회’를 조직해 회장을 맡는 등 통합 노력을 계속했으나 1930년 김좌진 피살 후 결실을 맺지 못하고 만다. 그러나 선생은 통합 노력을 계속했고 한국독립당이 결성되자 고문을 맡았다.
만해 한용운이 시신 수습해 장례 치러
김동삼 선생이 신의주형무소에 수감된 뒤 안동 본가에 보낸 우편봉함엽서. [사진 독립기념관]
1931년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 침략을 단행했고 선생은 항일공작을 위해 하얼빈에 잠입했다가 일경에 체포됐다. 하얼빈 주재 일본 영사관경찰에게 모진 고문을 받던 선생은 국내로 압송되어 평양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가 서울 경성형무소로 이감된 후 1937년 4월 13일 59세를 일기로 옥중에서 순국했다. 일제의 감시 속에서 만해 한용운이 시신을 수습해 자신의 거처인 성북동 심우장에 모신다. 한용운은 “이 어른을 내 집에 모시는 것을 더없는 영광으로 알겠다”고 했다. 장례 후 선생의 유언에 따라 화장한 유해는 한강에 뿌려졌다.
선생은 고향에서 민족운동에 나선 이래 30년 동안 일관되게 독립투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만주 망명 후 경학사·백서농장·한족회·서로군정서 설립 등 독립운동에 매진했고 통군부·통의부·정의부 출범과 유일당운동 등 만주지역 독립운동계 통합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독립운동 진영은 대립과 갈등이 있을 때 마다 선생을 가장 먼저 찾았고 그는 사심 없이 궂은 일을 도맡아 독립운동계 통합의 상징인물이 되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대통령장을 추서했고 1993년 서울현충원에 그의 묘소가 조성되었다. 고향 천전리에는 생가가 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2007~2008년 재정경제부 제1차관을 거쳐, 2011~2013년 금융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현재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가 있으며, 오랜 경제전문가로서 직장인들의 팍팍한 주머니 사정을 감안해 가성비 좋은 서울의 노포 맛집을 소개한 『한 끼 식사의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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