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비운의 마라토너 손기정 자취 추적.
英雄의 넋은 왜 대여금고에서 잠자고 있나
금메달, 1994년 이후 공개 안 돼
월계관은 국회 헌정기념관 지하에
"日에선 영화 찍자는 손기정… 우린 왜 무관심하죠?"
'독일에 기념공원' 계획도 비용 마련 못해 백지화
동상은 먼지 뽀얀 채 창고에

■피안(彼岸)에서
대륙횡단열차의 바퀴가 2주 만에 멈췄다. 긴 여정(旅程)이었다. 동경~현해탄~경성~만주~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베를린에 도착했다. 1936년 8월 9일 오후 3시 올림픽 스타디움의 출발선에 나는 섰다. 북해(北海)에서 휘몰아친 열기가 가득했다.
운명의 시각이 파도처럼 내 다리를 휘감았다. 10만 관중 속에서 조선인을 응원한 이는 김용식(金容植) 선배와 장이진(張利鎭)군뿐이었다. 56명 건각(健脚)이 이룬 숲은 두려웠다. 나는 단거리 경주라도 하듯 질주하기 시작했다.
30㎞부터 앞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인적 뜸한 길 양편의 나무 숲은 검었다. 아스팔트는 끝도 없을 듯 가물거렸다. 그 옆으로 하벨 강의 물결이 은빛으로 빛났다. 문득 내 고향 신의주 옆 압록강의 자갈길이 생각났다.
나는 달리지 않으면 못 배기는 아들이었다. 그 고집을 꺾지 못한 어머니는 주머니를 털어 산 '다비'를 내 짐 꾸러미에 넣어주셨다. 머리를 흔들어 기억을 떨쳤다. 그때 비스마르크 언덕이 나타났다. 성난 공룡의 목줄기 같았다.
금메달이 목에 걸렸다. 월계관이 머리에 씌워졌다. 그 순간 나는 가슴으로 울었다. 왜 나의 우승에 일장기(日章旗)가 오르고 '기미가요'가 울려 퍼져야만 하는가! 나는 단 한 번도 일본을 위해 뛰어본 적이 없었다.
내 나라 조선을 위해 뛰었을 뿐이다. 나는 맹세했다. '일장기의 멍에가 사라지지 않는 한 손기정의 마라톤은 다시 없으리라.' 목구멍으로 삼킨 눈물이 폭포처럼 가슴 속에 떨어졌다. 그때 민족은 암울했다. 내 청춘은 검었다.
2002년 11월 15일 나는 육신(肉身)의 멍에를 벗었다. 이승을 떠난 지 7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나의 흔적은 그리도 사랑했던 조국에서 흩어져 방랑하고 있다. 업보(業報)인가, 운명인가. 누가 저승의 나를 편히 쉬게 해줄 것인가.

■여의도의 한 은행
김성태(金聖泰·53) 손기정 기념재단이사장이 비밀번호를 눌렀다. 지문(指紋)인식 절차를 마치자 대여금고의 문이 열렸다. 1040호다. 길이 50㎝, 폭 15㎝가량의 철제 서랍이 나왔다. 그 안에 낡은 메달 3개가 빛나고 있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과 기념메달 2종 등 모두 3종이다. 금메달은 손기정의 삶만큼이나 운명이 기구했다. 1994년 이후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었다. 2005년에는 "분실됐다"는 오보(誤報)로 세상이 놀랐다.
당시 열흘 만에 나타난 금메달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 보관자가 독일에서 사온 광택제로 반짝반짝 윤을 내려다 칠이 벗겨졌다고도 했다. 부실하게 관리해 표면에 흠집이 많이 생겼다는 말도 나왔다.
2005년 당시 사진과 대조해봤다.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은 많이 훼손돼 있었다. 가운데 일부에만 금빛이 남아있어 차마 금빛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 이 메달이 은행 대여금고에서 얼마를 더 지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국회 헌정기념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한강 쪽에 헌정기념관이 있다. 현재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곳곳에서 근로자들이 자재를 나르고 있었다. 그 지하 1층 수장고에 고 손기정이 받은 월계관과 우승 상장이 보관돼 있다.
월계관은 서울시 중구 만리동 옛 양정고 터에 아름드리나무로 자란 월계수의 어머니 격이다. 월계관은 짙은 밤색으로 변해있었다. 표면에 흠집이 많이 난 투명 플라스틱 박스 안에 든 월계관에는 습기를 제거하는 장치가 설치돼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손기정이 남긴 유품(遺品)은 공식적으로 1500여점, 최대 1만점이라는 말이 있으나 누구도 정확한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올림픽 금메달, 월계관, 우승 상장만이 비교적 안전하게 보관돼 있다.
일부는 옛 양정고 터 손기정 기념재단에 전시되고 있다. 공간(약 50평)이 협소해 다수는 수장고에 포개져 있다. 일부는 그의 손자인 이준승(李埈承) 재단 사무총장 집, 일부는 김성태 의원이 사무실에 보관하고 있다.

■경기도 안성의 한 창고
2006년은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 70주년을 맞는 해였다. 당시 재단은 1억원을 들여 동상(銅像) 두 점을 제작했다. 한개는 현재 서울 송파구 잠실 스타디움 근처 올림픽 스타 로드에 전시돼 있다.
또 한 점은 독일 베를린 스타디움 옆 손기정 기념공원에 설치될 예정이었다. 현재 그곳에는 손기정의 국적이 '재팬(Japan)'으로 새겨져 있다. 1971년 박영록(朴永祿) 의원이 몰래 재팬이란 글을 지우고 '코리아'라고 새겼다.
독일은 나중에 그걸 다시 파내고 일본으로 되돌렸다. 독일은 기념공원을 만들자는 요구에 30억원을 요구했다. 재단은 비용을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공원 설립 계획이 백지화됐다. 손기정 동상의 팔자(八字)도 그때 바뀌었다.
취재가 시작되면서 신갈에 있다던 이 동상의 소재는 안성에 있는 동상 제작사의 한 창고에 있음이 확인됐다. 동상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었다. 옆에는 냉장고와 다른 조각품 더미가 놓여 있다.
■사우디의 추억
1980년대 김성태는 한양건설 직원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국·사우디 축구경기가 사우디 승리로 끝난 어느 날이었다. 근로자들 사이에서 스포츠 이야기가 나왔다. 화제는 마침내 손기정 이야기로 옮아갔다.
사우디 근로자들은 "손기정은 일본인"이라고 했다. 김성태가 항변했다. 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15년 세월이 흘러 한국노총 사무총장과 부위원장을 지내던 그는 옛 사우디에서의 아픈 추억이 기억났다.
―2006년 한국노총 창립 50주년 기념 마라톤 대회를 주최할 때 '손기정 올림픽 제패 70주년 기념'이란 타이틀을 붙였습니다.
"당시 노동운동이 국민들로부터 지탄받고 있었습니다. 노사 평화랄까, 그런 식으로 방향을 전환하려 구상하고 있었는데 예전에 사우디에서 '노가다'로 일하며 겪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중동 근무를 마친 뒤 돌아오는 길에 베를린 스타디움을 볼 기회도 있었습니다. '재팬 손'이라고 새겨진 글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 손기정 선생에게서 '평화'의 메시지를 느꼈습니다."
―손기정의 유품이 국가에 헌납된 게 1979년이지요.
"그해가 국제연합(UN)이 정한 세계 아동(兒童)의 해였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무슨 계기가 없을까 생각하다 손기정 선생이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께 금메달을 비롯한 자료 일체를 기증하기로 한 거지요."
―왜 국민들은 그걸 볼 수 없었습니까.
"서울 광진구 능동에 어린이 대공원이 있습니다. 그곳 육영재단 건물에 '손기정 기념 전시실'이라는 게 마련됐습니다. 그런데 육영재단이 1994년 예식장 사업을 하면서 공간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자료관은 마련됐는데 셔터가 내려져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없었고 금메달과 월계관은 또 별도 관리된 겁니다."
―별도 관리라니요.
"(이하는 손기정의 외손자인 이준승 재단 사무총장의 증언 등을 합친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은 당시 재단 고위 관계자의 개인 캐비넷에, 월계관은 그의 사무실에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유족측에서 정상적인 전시를 요구하진 않았나요.
"손기정 선생이 생존해있을 때만 해도 2~3차례에 걸쳐 전시관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지켜지지 않았지만요."
―작년 11월 12일, 유품이 손기정 재단에 반납됐지요.
"기념우표를 제외한 250여점을 돌려받았습니다만, 사연이 있습니다."
―무슨 사연인가요.
"손기정 선생이 국가에 자료를 헌납한 것은 좋은 뜻이었습니다. 고 박 대통령도 '보물(寶物)로 관리하겠다'고 약속을 했고요. 그런데 전시가 제대로 되지 않아 육영재단과 유족 측 감정이 서서히 틀어질 즈음 손기정 옹이 타계하신 겁니다. 유족 측은 금메달과 우승 상장을 선생의 영전(靈前)에 잠시라도 전시하고 싶어했어요. 육영재단에서는 거부했습니다."
―왜 거부했을까요.
"특수장치를 설치해서 파손될 위험이 있다는 핑계를 댔지만 나중에 보니 특수장치는 없었고요, 돌려받지 못할 것을 걱정했던 모양입니다. 지금도 육영재단 전임(前任) 집행부는 유품 반환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돌려줬나요.
"육영재단 집행부가 새로 바뀌면서 논의가 급진전됐습니다. 돌려받는 날 약간의 언쟁이 있긴 했어요. 전임 집행부에서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소송을 하겠다는 말도 들었고요."
―그분들은 왜 그리 반대할까요.
"저희는 그간 잘 보관해줘서 감사하다고 했지만 감정이 남다르겠지요."
―박근혜(朴槿惠) 의원은 이런 내용을 압니까.
"그분은 '잘됐다'고 했습니다."

■버림받은 영웅
손기정기념관 설립 논의는 손기정의 삶 만큼이나 기구했다. 1970년대부터 수십 차례 이야기가 나왔지만 단 한 번도 실천된 적이 없다. 손기정 스스로 기념관 마련에 나섰다가 부도를 맞아 큰 경제적 손실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2002년 그의 사후(死後)에도 이런저런 단체에서 기념관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유족들은 '잘 되겠지'하고 기다렸지만 모두 흐지부지됐다. 그 이면에는 손기정을 향한 당시 정권의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다.
―당시 정권의 '부정적인 시각'이라는 게 무슨 소립니까.
"좌파 세력들이 한때 손기정 선생을 친일파(親日派)처럼 몰려했지요. 일장기(日章旗)를 달고 올림픽에 참가했다, 일본으로부터 작위(爵位)를 받으려 했다는 등의 이야기인데 전부 틀린 말입니다."
―태극기를 달고 출전했어야 한다는 말이겠네요.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할 당시 손기정 선생은 이미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일본선수 2명, 조선선수는 1명만 출전시키려 했어요. 그래서 손기정 선생이 남승룡(南承龍·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동메달) 선생과 꾀를 내 선발전에서 나란히 1·2위를 한 겁니다. 일본이 어쩔 수 없이 대표선수로 4명을 선발한 겁니다. 그들은 독일에 가서도 흉계를 꾸몄습니다."
―무슨 흉계인가요.
"개막 며칠 전에 30㎞ 기록회를 열겠다고 했습니다. 한 번 달리면 몇 ㎏씩 체중이 감소하는 마라톤을 앞두고 기록회를 연다는 건 끝까지 조선선수들의 출전을 막으려던 겁니다. 리처드 만델의 저서 '나치올림픽'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손은 사실 한국인이었다. 그의 조국은 1910년에 일본에 합병당했으며 그가 국제적으로 이기는 방법이란 그 가슴에 증오의 상징인 일장기를 달고 뛰는 것이었다'는 부분입니다. 손 선생은 조선일보 김동진 동경지국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남형과 내가 이긴 것은 다행이오. 기쁘기도 기쁘나 실상은 웬일인지 가슴이 북받쳐 오르며 울음만이 나옵니다'라고요."
―손기정의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에도 여러 비화가 나옵니다만.
"손기정이 우승한 후 현지 일본대사관을 주축으로 성대한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선생이 잠적해 난리가 났었습니다. 선생은 당시 안봉근(安鳳根)씨의 집에 초대를 받아 당시 올림픽에 출전했던 조선선수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안봉근이 누군가요?
"안봉근은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사촌동생으로 베를린에 살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그 집에서 난생처음 태극기를 봤다고 합니다. 지금 제가 보관하고 있는 이 앨범(올림픽 메달리스트 친필 사인집)을 보세요. 한글로 '손긔졍'이라고 쓴 서명이 보이지요, 아마 친일파였다면 '기테이 손'이라고 쓰지 않았겠어요? 선생은 그 후에도 사비(私費)로 마라톤 꿈나무들을 육성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자기 집에서 가마솥에 흰 쌀밥을 지으며 키운 선수들이 바로 서윤복(보스턴마라톤 우승)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보스턴마라톤 1~3위)이지요."
―그런데도…, 그래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기념관을 설립해주겠다는 이야기가 쏙 들어간 거지요.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손기정재단을 만든 겁니다. 2005년 6월입니다."
―재단에 손기정의 후손은 있나요.
"선생은 1남1녀를 뒀습니다. 따님(손문영·孫文英·69)의 아들이 이준승 재단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고 아들(손정인·孫正寅·67)은 일본 요코하마에서 민단(民團) 간부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왜 일본에.
"한국에서 대학(중앙대)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온 후 공부하러 떠났는데 사연이 있습니다. 1970년대 초 손 선생이 기념관 설립을 추진하다 부도를 맞은 후 학비를 못 보내줬는데 그만 일본에서 받은 장학금의 일부가 조총련 돈이었다는 게 드러나 정보기관에 붙들려가 고초를 겪었습니다. 나중에 오해로 밝혀졌지만요. 지금은 자주 한국에 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결국 영웅이 잊힌 거군요.
"참 이상한 게, 외국에서는 관심이 많아요. 할리우드에서 초상권을 사용해도 되겠느냐는 연락이 오기도 하고. 2006년에 일리노이대에서 손기정 선수를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이 나왔는데 그게 현지인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일본에서도 '손기정 선수 관련 영화를 만드는 데 협조해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일본에서?
"작년 5~6월쯤에 국내 대리인을 내세워 요청이 왔습니다. 히로시마화성(化成)을 비롯한 4개 기업이 주축이 된 컨소시엄이었습니다. 히로시마화성은 아식스 운동화의 고무 밑창을 공급하는 회사라고 합니다. 물론 거절했지요."
■안식(安息)을 향하여
손기정의 유품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절차를 거쳐 손기정의 품으로 돌아온 게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다. 이 투구는 독일 고고학자가 1875년 그리스 제우스 신전에서 발굴했다. 조사결과 기원전 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손기정 투구는 그리스 브라드니 신문사가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기증한 것이었다. 그런데 투구는 50년간 베를린 샤르텐부르크 박물관에 소장됐다.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돌아온 것은 1986년이다. 현재 보물 904호다.
―우리 국민은 왜 무슨 일이 있으면 벌떼처럼 일어나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까맣게 잊는 성격을 지녔을까요.
"허허."
―육영재단에서 손기정 유품을 돌려받았으면 한곳에 전시해야지 왜 이산(離散)가족 같은 신세로 놔두는 겁니까.
"손기정기념관 설립은 1970년대부터 수십번 이야기가 나왔지만 단 한 번도 실천된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국회에서 10억원의 예산을 책정합니다. 내년에 부지를 마련하고 설계를 한 뒤 2011년 중반쯤에 기념관이 완공되면 일괄적으로 전시할 겁니다."
―그러다 도둑이라도 맞으면 어떻게….
"참 그게 문젭니다. 그러니 절대 장소를 밝히지 말아주세요."
―국회가 참 일을 빨리도 합니다.
"(인터뷰 당일 국회는 노동법 개정안 때문에 엉망진창인 상황이었다.) 저도 국회의원이지만 국회에만 오면 다 엉망이 되잖아요. 그나마 올해 10억원의 예산이라도 마련한 게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지요."
―또 무슨 계획이 있습니까.
"일본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를 '자랑스러운 일본인이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몇년 전에 교과서 등재를 추진했어요. 모 출판사에서요."
―내용에 좌파적 성향이 많다는 논란을 빚은 출판사네요?
"무슨 이유인지 아직도 교과서에는 실리지 않고 있습니다."
―손기정 유품도 유품이지만 먼지 뒤집어쓴 동상도 충격적입니다.
"그렇지요. 2006년에 동상이 제작될 때만 해도 서울광장에서 전시됐고 부산의 한 택배(宅配)회사가 선박 편으로 무료로 베를린까지 운송해주겠다고 제의까지 해왔거든요."
―그런데 왜 그 꼴이 됐나요.
"손기정재단에서는 베를린 스타디움에 새겨진 '재팬'이라는 단어를 지우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복잡합니다. 당시 대한민국이라는 국체(國體)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국제법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상 수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 대안으로 추진했던 게 스타디움 한구석에 작은 공원을 만들고 동상을 세우려 했던 건데 돈 때문에 무산됐지요."
―지난해 11월 15일 미국 뉴욕타임스에서 피겨 스케이터 김연아를 '손기정만큼이나 위대한 스포츠 선수'라고 칭찬한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희는 손기정 유품을 국민들이 언제나 볼 수 있게 하고 교과서에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술해 자라나는 학생들이 알 수 있게 할 겁니다. 마라톤 중흥도 해야지요."
―어떻게요?
"이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긴데, 얼마 전 은퇴한 이봉주 선수를 손기정의 공식 후계자로 재단에서 의결할 계획입니다. 손기정 이후 국민적 영웅인 그도 곡절을 겪었잖아요."
―무슨 곡절입니까.
"체육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게 체육훈장 청룡장인데 이상하게 이봉주만 받지 못했어요. 제가 국회에서 의원 100인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얼마 전 청룡장이 수여됐지요. 앞으로 이봉주 선수는 위기에 놓인 한국 마라톤 중흥을 위해 돌아가신 손기정 선생과 함께 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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