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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11월 수상작

한문역사 2025. 11. 25. 15:38

중앙 시조 백일장 - 11월 수상작] 단풍잎, 가을 액자…깊은 서정의 울림
중앙일보
입력 2025.11.24 00:40

장원
하모니카
백옥희

한 움큼 생쌀 씹듯 하모니카 입에 문다
단풍잎 벌레에게 젖 물리다 조는 오후
찬비가 속눈썹 사이 마스카라 때리는데


뭉개진 저녁나절 머리 푸는 억새밭에
허기가 그러안던 옆구리가 감겨있다
그날은 바구니 가득 바다 것이 꼬물댔지


삼 교대 숨이 가쁜 이 빠진 두 줄 자크
작업복에 소금 꽃이 그림 같던 휴일 당직
배경은 바람이 좋겠어 가을 액자 여백으로

◆백옥희


경북 영덕 출생. 열린시학·시에그린·안양문인협회 회원. 현 경기대 한류문화대학원 시조창작 석사과정. 열린시학 신인상(2018). 제14회 열린시학상(2022). 시집 『싸리비 무늬』(2023).

차상
부지깽이
이상마

문맹한 아궁이 속
불질하듯 붓질하듯
잎도 꽃도 버린 생애
난필로 적어간

내간체
만 고비 넘어
먹도 말라 재만 남긴

차하
시룻번
배경숙

천수답 물에 불려 곱게 빻은 쌀가루
손금 닳은 손으로 편편하게 시루에 편다
지나온 슬픔 쓰담 듯 손놀림이 무겁다

솥전과 시루 머리 밀반죽을 붙이고
열불에 달구어져 갈라지며 떨어진다
누구나 있기 마련인 삶의 부침 보는 듯

어머니 기도의 낱말 입술로 떼어 붙이며
헛김이 샐라치면 다시 때워 바른다
어쩌면 거덜 난 세간 사채 빌려 메꾸듯

이달의 심사평
갑자기 추워지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한 해 동안 중앙시조백일장에 열과 성을 다해준 관계자분들과 심사위원, 그리고 작품을 보내주신 귀한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11월 장원으로는 백옥희의 ‘하모니카’를 뽑아들었다. “단풍잎 벌레에게 젖 물리다 조는 오후”라든지 “배경은 바람이 좋겠어 가을 액자 여백으로” 란 시어들이 깊은 서정의 울림으로 다가왔다. 보내온 세 편 모두 잘 직조된 시조의 정법을 보여주어 시조시인으로서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시상의 전개가 하모니카, 단풍, 찬비, 가난, 바다로 확장되다가 바람이 부는 “가을 액자의 여백으로” 집중되는 구조적 전개도 높이 샀다. 정진하기를 바란다.

차상은 이상마의 ‘부지깽이’다. “불질하듯 붓질하듯” “잎도 꽃도 버린 생애”라는 메타포의 활용, 종장에 “내간체”란 시어를 차용하여 작품의 깊이를 한층 끌어올린 점을 높이 샀다. 부엌에서 일생을 보내야 했던 옛 여인들의 애증이 담긴 ‘부지깽이’를 ‘내간체’라는 함축적인 시어로 표현한 작가의 역량이 돋보였다. 적절한 비유나 적합한 시어 하나가 작품의 질을 높인다는 점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차하로 배경숙의 ‘시룻번’을 선했다. 보내온 세 작품 모두 고른 수준을 보여주었다. 어머니가 뒤란 장독대에 촛불을 켜고 비손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작품이다. 시룻번을 정성으로 이어 붙이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림 그리듯 보여주었으나 활달한 시상전개가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

백인우, 배은미 두 분의 작품을 오래 숙고하였음을 밝힌다.

심사위원 손영희(대표집필)·이태순

초대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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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숙

말씀도 적으시고 친구도 별반 없이
한걸음 나앉은 채로 외롭던 울 아버지
여기서 무슨 소원을 오래도록 빌었을까


열흘 붉은 꽃 없어도 백날 피는 마음 있어
다 타도 불씨는 남아 당신 그늘 뜨거운데
접질린 무릎 세우던 근육들이 꿈틀댄다

◆배인숙


경북 대구 출생. 2005년 『월간문학』 시조 등단. 시집 『별이 뜨는 방』(2008). 2010년 『시조시학』 젊은시인상 수상.

겨울 초입, 명옥헌 뜨락의 배롱나무 숲을 거닐었다. 바람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늙은 나무들은 백날을 피고 졌던 꽃 시절을 보내고 울퉁불퉁하지만 매끈한 근육으로 지난날을 증언하고 있었다. “말씀도 적으시고 친구도 별반 없이 한걸음 나앉은 채로 외롭던 울 아버지” 다정과는 거리가 멀어서 스스로 울 안에 갇혀 사셨던 내 아버지, 마음은 더없이 여리셨으나 자식들과는 소통 부재여서 늘 외로우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콱 막힌 듯 답답해진다. 있는 힘을 다해 석 달 열흘 붉은 꽃을 피워냈던 목백일홍처럼 혼신을 다해 지난한 세월을 살아내시고 이젠 서산의 노을처럼 아버지는 사위어가신다. 시인은 그런 아버지를 “다 타도 불씨는 남아 당신 그늘 뜨거운데”라고 꽃 보낸 나무에게 아버지를 대입했다. 화려했던 시절을 모두 보내고 차가운 북풍을 묵묵히 견디는 나무의 수피를 가만히 어루만져본다.

시조시인 정혜숙 [출처: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