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語西話] 사찰 옆 향교, 그 뒤에 이팝나무

7번 국도를 따라 포항 북구 흥해를 지나가는데, 읍내 중심지의 야트막한 산 언덕에 오래된 기와집 여러 채가 두 구역으로 나뉜 곳이 언뜻 보인다. 누렇게 마른 잎을 달고 있는 12월 나무들이 두 공간 사이에 일렬로 서서 담장 노릇을 하고 있다. 동쪽은 사찰이며 서쪽은 향교라고 동행인이 일러줬다. 불교와 유교가 동일 공간에 엇비슷한 규모로 수백 년간 공존하고 있는 희유(稀有)한 경우라 하겠다. ‘공동 성지’ 사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임허사(臨虛寺)와 흥해향교(興海鄕校) 표지판이 나란히 걸려 있는 좁다란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갔다.
시내를 내려다보는 눈맛이 일품이다. 둘러진 숲이 아름답고 또 접근성이 뛰어난지라 동네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을 위한 체육 공원이 함께 조성됐다. 특히 수십 그루의 노거수 이팝나무가 5월이면 하얗게 꽃을 피우는 장관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오는 꽃 축제의 명소이기도 하다. 2020년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이를 기념하고자 이듬해부터 사찰 역시 도심의 나무와 숲이 가진 공덕을 주변에 알리는 목신재(木神齋)를 매년 올리고 있다.
예로부터 풍부한 물과 넓은 벌판을 아우르는 까닭에 많은 인구가 살았다. 때로는 홍수로 들녘이 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한때는 ‘물벌’이라는 우리말로 불린 시절도 있었다. 흥해(興海)라는 지명에서 보듯 바닷물과 인연도 적지 않았다. 해산물은 밥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해일 피해와 함께 왜구의 등살까지 견뎌야만 했다. 안팎의 재난을 미리 막고자 하는 염원이 모여 자연스럽게 사찰이 만들어졌다. 법당은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허공(虛空)의 경계까지 볼 수 있는 위치에 임(臨)했다. 천년고찰 임허사 창건설화에는 이러한 줄거리들이 자연스럽게 포함됐다.
조선 왕조의 등장으로 유교 인재 양성의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향교를 건립하고자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보는 안목은 모두가 비슷하기 마련이다. 이미 좋은 터라고 알려진 사찰 옆에 향교가 세워졌다. 본래 임허산이었다. 산 이름도 자연스럽게 향교산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농민들은 논 가운데 소가 누워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와우산(臥牛山)이라고 불렀다. 지역민들은 우리 터전 흥해를 일으킬(發) 산이라는 기대감으로 흥발산(興發山)이란 명칭도 버리지 않았다. 절집은 언덕 한편에 임허대(臨虛臺)란 이름을 끝까지 고수하며 원래 산 주인(主人)으로 자존감도 지키면서 공존을 향한 길에 함께했다.
임허대에서 까치발을 하고서 동쪽을 바라본다. 당(唐)나라 때 바다와 파도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씩씩한 기개를 유감없이 발휘한 보봉신당(寶峰神黨·경덕전등록 권17) 선사에 대한 기억을 다시금 들췄다.
“허공가철선(虛空駕鐵船)하니 악정낭도천(嶽頂浪滔天)이로다(허공에 쇠로 만든 배를 띄우니 산꼭대기에 치던 파도가 하늘까지 넘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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