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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의 文章家와 名文章(1)

한문역사 2026. 1. 6. 07:21

조선왕조의 문장가와 명문장 (1)

김삼웅 님의 스토리
  16시간  
4분 읽음

조선왕조는 문치시대였다.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는 무인 출신이지만 문인을 통해 나라를 다스리는 전통을 세웠다. 이성계에게 국가경륜을 가르친 무학대사는 '역취순수(逆取順守)'를 일렀다. 비록 불법적으로, 폭력으로 정권을 취득했지만 다스릴 때는 순리로 하라는 것이다.

이 같은 '전통'에 따라 조선은 한 번도 무인 지배를 허용하지 않았다. 반면에 고려는 1백여 년, 대한민국은 30여 년의 무인통치를 겪었다. 문치 전통으로 조선왕조는 문약에 빠지기도 했으나, 독서인을 관리로 뽑고 문장력을 과거 급제의 기준으로 세울 수 있었다. 조선 시대 대표적인 문인의 문장과 군주의 문장론·독서론을 살펴보자.

조선왕조의 문장가와 명문장 (1)

서거정의 문장론

조선 초기, 세종에서 성종대까지 활약한 서거정은 문과에 급제한 뒤 45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 무려 23차례에 걸쳐 과거시험을 관장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문신이자 학자였다. 학문의 폭이 넓어 천문·지리·의약·복서·성명·풍수에까지 관통했으며 문장에 일가를 이루었다. 그가 편찬한 ,

등은 민족문화의 보고로 남았다.

, , 등의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은 골계문학의 정수로 꼽힌다. 그가 '태재선생문집서(泰斋先生文集序)'에 쓴 문장론은 5백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신선도가 채마밭에서 갓 뽑은 싱싱한 시금치와 같다.

천지의 정영(精英)한 기운이 사람에게 모여서 문장이 되니, 문장이란 사람의 말 가운데 정화(精華)했다. 이 때문에 좋은 때를 만나 임금과 신하가 서로 화답하는 노래 '서경(書經)'을 옳은 자는 그 문장의 밝게 드러남이 마치 다섯 위성이 하늘에 걸려 있어 찬란하게 빛나는 것과 같고, 좋은 때를 만나지 못하여 산림에 은거하면서 시를 읊조려 빈번에 의탁한 자는 그 문장의 빛남이 진주와 구슬이 산골짜기에 버려져도 밝게 빛나 끝내 그 광채를 가릴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당시에 보고 들은 이들을 놀라게 하고 명성을 무궁한 후세까지 남기는 것은 마찬가지다.(……) 옛날 시를 논평한 이들이 "조정대각의 시가 있고 산림초야의 시가 있다."하였는데, 처한 상황이 같지 않으면 표현하여 문장을 짓는 것이 이와 같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태재(泰齊)선생이 뛰어난 재주와 깊고 넓은 식견을 대각 위에서 펴지 못하고 초야 가운데 묻혔으니, 어찌 깊이 애석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문장을 논평하는 자들이 또 말하길 "기쁘고 즐거운 시절의 문장은 훌륭하기가 어렵고, 곤궁하고 괴로운 시절의 문장은 아름답기가 쉽다" 하였지만, 어찌 곤궁할 때는 잘하고 곤궁하지 않을 때는 잘하지 못하는 자가 있겠는가? 만일 태재 선생이 높은 벼슬과 현달한 지위에 올라 예약을 제직하는 반열에 서서 국가의 성대함을 문장으로 올렸다면, 웅장하고 풍부하고 화려해서 장차 금옥(金玉)이 울리듯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니, 어찌 다만 여기에 그치겠는가? 슬프다!

임원준의 문장론

임원준(任元濬, 1423~1500)은 여러 차례 과거에 급제하여 성종대에 좌리공신 3등으로 서하군에 책봉되었다. 문장이 뛰어나고 경사와 의학에도 정통했으나, 중종반정 후 아들 임사홍의 죄로 관직이 삭탈되었다. 저서에 의서인

관련 동영상: 조선의 왕들을 만나는 시간 역사학자가 직접 들려주는 조선왕조가 세워지는 과정|클래스e|알고e즘 (EBS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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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을 만나는 시간 역사학자가 직접 들려주는 조선왕조가 세워지는 과정|클래스e|알고e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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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다.

소개하는 글 는 임원준이 서거정의 문집

을 펴내면서 쓴 서문이다. '사가'는 서거정의 호다.

천하에는 문장이 비록 고금의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그 높고 낮음과 성하고 쇠함은 세도의 오르내림과 정치의 높고 낮음에 따라 나타난다. 그러나 문장은 시보다 어려운 것 없으니, 시는 바로 문장의 정화이다. 아송(雅頌)이 강등되어 국풍이 되면서부터 변하여 소사(騷詞)가 되고, 한(漢)·위(魏)의 문체가 되고, 육조(六朝)의 문체가 되고, 수·당의 문체가 되고, 송·원의 문체 등이 되어서, 작가가 계속하여 나왔지만 사람마다 각기 음률을 달리하였으니, 여기에서 세도를 보고 정치를 알 수 있다.

우리 동방은 세상에서 문헌의 나라라고 일컬어져서 문장을 짓는 선비가 대대로 끊어지지 않았는데, 고구려의 을지문덕과 신라의 최치원, 고려의 김부식과 이규보는 그중에서도 더욱 뛰어난 자들이다. 고려 말에 이르러 익재 이공이 고문학을 제창하자 목은(牧隱) 부자가 따라서 동조하였으며 포은의 엄중함과 도은의 정련됨과 삼봉의 호탕함은 모두 명가의 큰 솜씨로, 양촌 권 선생 또한 그 중의 한 분이었다.

양촌은 몸소 이 도를 책임지고 성리학을 연구하여 오경의 깊은 뜻을 발명해서 후학의 문을 열어주었으니, 사문에 큰 공이 있다. 어찌 다만 사문이겠는가? 이는 실로 고려조 5백 년 동안 교육한 영재를 하늘이 우리 조종조에 물려주신 것이다.

이수광의 문장론

조선시대 학자 이수광(李晬光, 1563~1628)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으로 어지러웠던 사회 변동기에 새로운 사상의 방향을 탐색하고 개척한 인물이다. 조선 사회가 전기에서 후기로 이동하는 가운데 실학파의 선구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조선의 백과사전이라 할 을 편찬했고 시문집인 을 남겼다.

 
 
 
 

에 나오는 몇 편의 '시론'이다.

문장은 자연스러운 것이 귀중한 것이요, 인위적인 기교를 부려서는 안 된다. 이런 경지에 이르면 글 짓는 데 힘을 억지로 들이지 않아도 된다. 문학을 하는 사람은 이 말을 꼭 알아야 한다.

시나 산문이나 길든 짧든 간에 사상, 감정을 따라 써야 하며 사상, 감정이 다하면 그만두어야 한다. 한유의 시 '원도(原道)'와 두보의 시 '북정(北征)'은 길어도 싫증이 나지 않으며, 한유의 '획린해(獲麟解)'와 맹호연의 절구는 짧아도 모자람이 없다.

대체 글이란 조화다.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문장은 반드시 정교하게 되나 손끝으로 이루어진 문장은 정교하게 되지 않으니, 진실로 그러하다. 그런데 세상에는 마음속으로부터 글을 이루는 이가 적으니, 그 글이 정교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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