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7. 04:00ㆍ베트남 하노이와 북부 여행기 2024

만세사표(萬世師表)
오랜 세월이 지나도 모든 이의 스승이 될 모범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공자를 가르킬 때 표현으로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지 싶습니다.
좌우 기둥의 대련(對聯)에는 왼쪽에는 天開文運宰天下之中有天下로 하늘이
문운(文運, 학문과 문화의 운세)을 열어, 천하의 중심에 진정한 도(道)와 학문이 자리
잡는다는 의미고 오른쪽은天明聖道承秋之後無春秋로 하늘이 성인의 도를 밝히니
사계절이 돌고 돌아도 성인의 도는 끊이지 않는다는 뜻이겠지요.

더 안으로 들어가면 제4정원에는 대성전(大成殿, Đại Thành Điện)이 있는데 그곳에는
공자와 사성(四聖: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및 십철(十哲)을 모신 사당입니다.
이곳은 문묘에서 가장 중요한 제례가 거행되는 장소로 엄숙함이 느꺄지는 곳이지요.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이 제5정원: 국자감(Quốc Tử Giám)으로 1076년 설치된
우리나라 성균관과 같은 베트남 최초의 국립대학이 바로 이곳입니다.

귀족 자제에서 시작해 후에는 재능 있는 서민도 입학 가능했다고 하는데 유학 교육과
과거 시험 준비를 위한 최고 교육기관으로 운영되었다는데 사실 공자의 교육이념은 당시에
귀족 자제만이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을 일반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던 것이지요.

하노이 문묘의 고요한 돌바닥 위 거대한 거북이 한 마리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그냥 장식이 아니라 지혜를 짊어진 등과 고귀함을 품은 날개를 상징하는
거북과 학이 함께 있는 모습으로 공작이나 봉황으로 보이는데 진실은 학이랍니다.

그 등 위에는 고고한 자태의 학이 서 있는데 이 둘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닙니다.
베트남의 유교적 전통과 학문에 대한 존중이 깃든 깊은 상징의 언어라고 합니다.
거북이는 오래된 지혜를 품고 있으며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며 과거의 이름들을 지탱해온
그 등은 인내와 장수의 상징이자 학문을 향한 집념의 표상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 위에 선 학은 고귀함과 이상을 상징하며 날개를 펴지 않은 채
거북이 위에 선 모습은 지혜 위에 세워진 고결한 정신을 말해줍니다.
이 둘은 서로를 누르지 않는다고 하며 거북이는 학을 받치고 학은 거북이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데 마치 지혜와 고귀함이 함께 협력하여 진정한
학문을 이루는 듯하며 말입니다.

이곳은 국자감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옛날 베트남 최초의 국립대학과 함께 있지요.
우리나라 성균관을 연상하면 되는데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성종 때( 992년)
국자감이 세워졌으나 이곳은 조금 늦은 1127년에 세워졌네요.

베트남도 통치의 근간이 우리 조선과 같은 유교에 바탕을 두었고 과거 제도는
지방의 향시(鄕試)와 전국 중앙 시험인 회시(會試)로 나뉘었다는데 거의 3년마다
치러졌으며 회시에는 향시에 합격한 거인(擧人)만이 응시할 수 있었으며
회시에 합격한 사람을 수재(秀才)라고 했다지요.

과거시험은 필기시험으로 문학, 도덕, 역사문제가 주로 출제되었다고 하며
이곳은 다른 곳 보다 상당히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베트남은 호찌민 묘소나 동상 외에는 관리가 부실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여기도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들만 붓을 이 연못에서 씻었을까요?
그러나 옛날 과거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의 이름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거북이의 머리가 일정치 않고 높낮이가 다른데 기명된 자의
업적에 따라 달리했다고 하네요.

3년마다 치러진 3년 시인 會試에 합격한 사람들의 이름이 거북등 위의 비석에 적혀있는데
우리가 3.1 독립 만세운동을 하던 1919년까지 과거시험이 존속되었다고 하네요.
이곳 연호인 <경흥 36년 을미과 진사 제명비>라고 된 비석으로 가만히 이름을 보면
이곳 베트남을 지배한 왕조인 응우웬(院). 쩐(陳), 레(黎)씨 등이 많이 보이네요.

첫 비석은 1484년도에 세워졌으며 그 뒤로 모두 82개의 비석에 모두 1306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한 회의 회시에 합격한 사람들의 숫자가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61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합격자의 나이도 16세에서 61세까지로 폭이 매우 넓습니다.
이 비석들을 세월이 지나며 30개가 없어지고 지금 이곳에는 52개만 남아있답니다.
기록이란 그나마 이렇게라도 남아있어 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어 좋습니다.

전경적학(傳經正學)
경전을 전하고 학문을 세운다는 의미인가요?
그러니 공자의 뜻을 계승하고 바른 학문을 전파한다는 의미지 싶습니다.

분재로 장식된 국자감 앞 뜰..
글 읽는 소리가 여기에도 들리는 듯....

이곳이 국자감으로 지방에서 치러진 향시에 합격한 자들이 이곳에 모여 공부를
했을 것이고 이곳에서 최종적으로 시험을 보아 국가의 인재로 등용되었을 곳입니다.

과거에 과거시험에 장원 급제나 방안 급제 시 입었을 듯...
1075년에 첫 번째 시험이 있기 전까지는 베트남 사람들은 중국의 과거시험에 응시를
했다는데 그때까지가 이들은 중국의 지배를 1.000여 년간이나 받았으니까....

지붕에 앉는 기와가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마치 조개처럼 만들었습니다.

문묘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곳인데 화장실 사용료를 또 받는다는 것은...
입장료는 과거 5천 동일 때 다녀온 곳으로 지금은 7만 동이라고 하네요.
몇 배가 오른 것인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 거북이와 학의 조합은 베트남 문묘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며
학문을 향한 존경과 유교적 가치의 구현을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이는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베트남의 교육과 철학적 전통을 상징하는
베트남의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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