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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도 필요한 깜박이

한문역사 2026. 2. 5. 21:21

일사일언] 사람에게도 필요한 '깜박이'

연우·2026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입력 2026.02.05. 00:52
 
6년가량 ‘장롱 면허’로 지내온 필자가 운전을 시작한 건 근 두 달 사이의 일이다.
평소 도심 도로에 가득 차 있는 차들을 보면서 은연 중에 ‘운전할 때 알아야 할 건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상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중국의 수도가
베이징인 것처럼, 지구 대기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기체가 질소인 것을 알듯이
…. 그러나 운전 상식은 이런 지식과는 전혀 결이 달랐다.
대상과 나의 간격, 앞서가는 차와 뒤따라 오는 차 사이의 속도 흐름을 파악해야 했다.

가장 어려운 건 차선 변경이었다. 처음엔 사이드미러로 옆 차선 차들의 상황을 파악하면서

동시에 앞뒤 차량의 흐름도 신경 써야 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방황하는 안쓰러운 ‘왕왕왕 초보 운전’ 스티커를 붙인 나를 위해

속도를 늦춰주는 옆 차선 차를 발견하면 감사의 의미로 ‘비상 깜빡이’를 켰다.

고마운 마음이 얼마나 전해졌을까?

 

어제는 처음으로 나 역시 ‘비상 깜빡이’ 신호를 받았다.

물론 언제나 깜빡이 신호를 잘 지키는 운전자만 있는 건 아니다.

주행 중인 내 앞에 아슬아슬하게 끼어드는 차를 발견하면 마음이 덜컹한다.

상대 운전자에 대한 원망보다는 혹시 내가 당신을 다치게 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먼저 든다.

이런 마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혹시 내가 너를 다치게 하지는 않을지, 전혀 예견하지 못했던 나의 미래에

불쑥 뛰어든 당신을 위해 내가 언제든 속도를 줄일 수 있을지.

그리고 당신 역시 예상 못 했을 순간에 내가 앞으로 뛰어들어도 되는지.

잠깐의 머무름을 통해 고맙고 미안했다는 신호를 충분히 우리가 주고받았는지.

복잡한 도로 위에서 끊임없이 스쳐지나가는 혼란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만의 속도를 찾는다.

누구나 처음 만나는 ‘당신’이 낯설기 때문에 화가 나고 답답한 순간도 있겠지만 갑

작스럽게 나의 길로 뛰어든 ‘당신’에게 속도를 맞출 수 있도록 언제나 집중할 것이다.

연우·2026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