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사는 종가에서 새로운 종손과 종부(宗婦)의 취임식에 해당한다. 제사(祭祀)가 고인의 뜻을 기리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것과 달리, 길사는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는 경사스러운 제사이기에 ‘길(吉)’자를 쓴다.
새 宗孫의 등장
이날 길사는 대(大)유학자 퇴계 이황(李滉·1501~1570년) 선생의 17세손 이치억(李致億·50·공주대 윤리교육과 교수)씨가 선친 이근필(李根必) 공의 기년상(朞年喪·1년상)을 마친 뒤, 퇴계와 4대 조상에게 새 종손이 된 사실을 고유(告由)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는 제사를 올리는 책임자가 바뀌었음을 공식적으로 대내외에 알리는 의식이다.
새 종손은 아버지의 신위(神位)를 사당에 새로 모시고, 5대조의 신위를 땅에 묻었다. 고조부까지 4대만 사당에 신위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퇴계 선생은 4대를 벗어나지만,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이른바 불천위(不遷位)로 지정되어 위패가 지금도 종택의 별도 사당에 모셔져 있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길사에 참석하기 위해 퇴계 후손과 영남 지역 불천위 종가의 종손, 유림 등 1000여 명이 제청(祭廳)인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 앞마당과 종택 사랑 마당, 사랑채 바깥마당 등을 가득 메웠다. 사랑 마당과 바깥마당에는 참례객의 편의를 위해 좌석과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었다.
길사 참석자들은 먼저 시도소(時到所)에 들러 시도전(이름·주소·전화번호 등 참석 내용을 적은 종이)을 제출하고, 길사준비위원회가 마련한 식사 티켓과 노자(路資) 2만원, 그리고 기념품(264 청포도 와인)을 받았다. 점심 식사는 인근 퇴계기념공원 풀밭에 뷔페식으로 마련되었다. 이후 발간될 길사 백서(白書)는 참석자 전원에게 일일이 발송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날 길사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꼬박 두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행사 내내 홀기(笏記·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를 읽는 찬자(贊者)의 “배(拜·엎드려 절함)! 흥(興·일어남)! 평신(平身·절한 뒤 몸을 바로 폄)!” 소리가 연신 울려퍼졌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말 해설이 함께 붙은 것도 특별했다.
초헌관으로 선조께 절을 올리다
| 퇴계 종가의 17대 종손 이치억 교수가 초헌례(初獻禮)를 올리고 있다. |
이치억 종손은 제례에 앞서 대야에 깨끗한 물을 받아 손을 씻는 관세(盥洗)를 한 뒤, 퇴계 선생 등 선조의 위패를 사당에서 추월한수정으로 모셨다.
그는 종손으로서 처음으로 제례의 초헌관(初獻官)으로서 선조께 절을 올렸다. 모든 제관과 후손들은 종손이 주관하는 제례 절차에 맞추어 함께 절을 하며 예를 다했다.
다음은 중심 행사인 초헌례였다. 새 종손은 초헌관을 맡아 퇴계와 4대 조상에게 첫 번째 잔을 올렸고, 축문(祝文)이 낭독되었다.
| 길사를 마친 퇴계 선생 17대 종손과 종부. 종부의 화려한 활옷 예복이 눈길을 끈다. |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례(終獻禮)’까지 삼헌(三獻)이 마무리되었다.
이어서 술잔에 술을 다시 따르는 ‘첨작례(添酌禮)’, 신이 음식을 편히 드시도록 하는 ‘유식례(侑食禮)’, 조상을 되돌려 보내는 의식인 ‘사신례(辭神禮)’가 차례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불천위를 제외하고 최고위 조상으로 모셔져 있던 ‘조매위(祧埋位·5대조)’ 신주를 사당에서 모셔 내와 묘소에 묻는 ‘신주매안(神主埋安)’ 의식까지 마치면서 길사가 모두 끝났다. 이때부터 새 종손과 종부가 공식적으로 문중을 대표하게 되었다.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다”
| 길사 참례자들이 제청(祭廳)인 추월한수정 마당에서 재배(再拜)하는 모습. |
그는 “문중 운영과 종가 문화를 선대 어르신들의 뜻에 따라 잘 계승해 가겠다”면서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다”고 소회를 밝혔다.
길사준비위원회 위원인 배영동 경국대(前 안동대) 교수(문화유산학)는 “길사에서 후손은 가통(家統)을 새로 잇고, 조상은 축복을 내린다”며 “그래서 이 제사만큼은 ‘좋다’는 뜻의 ‘길’자를 붙인다”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 “이번 퇴계종택 길사의 이모저모는 다시는 재현되지 않을 수도 있는 귀중한 행사로, 역사적으로나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배 교수의 기획과 지휘 아래 경국대와 안동시립박물관이 공동으로 행사의 모든 과정을 기록하여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제작하고 있다. 내년 초에는 관련 PDF 자료와 동영상이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한편 퇴계 이황 선생의 16대 종손이었던 이근필 공은 지난해 3월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생전에 문중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제사 시간을 오후 6시로 조정하는 등 제례의 현대화를 추진했으며, 도산서원 향사(享祀) 때 최초로 여성을 초헌관에 임명하는 등 종가 문화의 민주적 개혁을 이끈 인물로 평가된다. 퇴계의 선비정신을 실천하고 계승하기 위해 그는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과 ‘거경(居敬)대학’을 설립·운영했다. 거경은 ‘항상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가짐을 조심하여 덕성을 닦는다’는 뜻으로, 고인은 이를 자신의 삶의 근본으로 삼았다. 또한 그는 ‘조복(造福·스스로 복을 짓는다)’과 ‘은악양선(隱惡揚善·남의 나쁜 점은 덮어 주고 좋은 점은 널리 알린다)’을 인생철학으로 삼아, 참선비로서 유교문화의 창달과 현대화에 헌신한 인물이었다.
고인이 퇴계종택에서 수련원생들과 만날 때 반드시 무릎을 꿇고 대화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새 종손 이치억 교수에 따르면, 손님을 맞을 때 무릎을 꿇어 자신을 낮추는 것은 이 집안의 오랜 전통이라고 한다. 안동시는 고인의 유업(遺業)을 기려 지난 10월 3일 안동의 날 기념행사에서 안동시민상 특별상을 추서했다.
퇴계의 철학과 정신, 안동을 넘어 세계로
경상북도 안동은 단순한 지방 소도시가 아니다. 이곳은 조선의 사상과 정신이 지금도 숨 쉬는, 유교문화의 원형이 살아 있는 고장이다.
안동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산서원·하회마을·병산서원 등이 있으며, 마을 사람들의 삶 곳곳에 유교적 가치가 깊이 배어 있다. ‘효(孝)·예(禮)·의(義)’는 이 지역에서 박제된 개념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이자 생활의 태도이다. 특히 안동은 조선 성리학의 대표 학자 퇴계 이황이 태어나고 활동했던 곳이다. 퇴계의 사상은 단지 서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풍경 속에, 사람들의 말씨와 표정 속에 살아 있다.
하회마을의 고택을 지나 병산서원 마루에 앉아 있노라면 사색과 절제, 자연과 조화를 중시했던 퇴계의 철학이 바람결처럼 스며든다. 이곳에서는 현대와 과거가 겹쳐지고, 철학이 일상의 결로 다가온다.
그래서 안동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다. 수많은 학자와 유학생, 그리고 철학적 삶을 탐구하는 이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동은 역사를 보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철학’을 체험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현장이다. 퇴계의 사상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안동은 그 질문을 곱씹을 수 있는 풍경이 되어 준다. 이 고요하고도 단단한 도시는 한국 인문학의 보고(寶庫)이자, 철학적 여정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닿는 지점이다.
퇴계 이황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단순히 학문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 내면의 수양과 실천윤리를 강조한 사상가였다. 그의 대표 사상인 ‘경(敬)’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늘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를 뜻하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퇴계는 공자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조선의 현실에 맞게 유교를 해석하고 정착시켰다. 특히 그는 “배움은 나를 바르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하며, 학문을 단지 지식이 아닌 ‘도(道)의 길’로 보았다.
이런 철학은 도산서원(陶山書院)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는 말년에 도산 서당에서 제자들과 더불어 자연 속에서 학문을 나누며, 탐욕 없이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실천했다. 도산서원에 가면 퇴계가 제자들에게 남긴 편지들과 강론이 전시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지금 읽어도 느껴지는 진심과 겸손, 그리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퇴계의 철학은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중심을 잡는 삶의 태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퇴계 선생의 철학과 삶, ‘선비정신’을 배우고 체험하는 교육장이다. |
특히 2002년부터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을 찾아 퇴계의 정신과 삶을 탐구하고 체험하는 소정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10월 말 현재 172만 1000여 명에 이른다. 각급 학교 학생은 물론 공무원, 기관·회사 단체, 개인, 그리고 한국 거주 외국인 등 해를 거듭할수록 참여 열기가 뜨겁다고 수련원 관계자는 전했다.
안동시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2006년 7월 4일 특허청 브랜드 등록)를 자임한 배경 또한 퇴계의 철학과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 안동이 유교문화의 원형을 간직한 ‘추로지향(鄒魯之鄕·공자가 태어난 노나라와 맹자가 태어난 추나라처럼 정신적 유산을 품은 고장)’이라는 점이 그 근거다. 또한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인 석주 이상룡(石洲 李相龍·1858~1932년) 선생과 국민회의 의장인 일송 김동삼(一松 金東三·1878~1937년) 선생 등 걸출한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우수한 정신적 가치를 지닌 지역민들이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분연히 일어나 호국(護國)을 실천한 만큼,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 실천 사례의 표본이 되는 고장이라 할 수 있다. 퇴계의 가르침인 ‘지행병진(知行竝進·앎과 실천이 일치함)’과 솔선수범 정신이 혁신 유림(革新儒林)의 애국애족 실천운동으로 승화된 사례라고 김언종 한국고전번역원장(고려대 명예교수)은 평가한다.
이와 함께 향약(鄕約)을 실천하며 이웃과 더불어 어려움을 극복하는 ‘인보협동(隣保協同)’ 정신이 안동에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전통문화의 의미를 되새기고 퇴계 선생이 일생을 통해 강조한 공동체 정신과 교육철학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함께 담고 있다는 것이 안동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12회째 맞은 ‘21세기 인문가치포럼’
|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입교생들이 서원 앞 시사단(試士壇)을 찾았다. 시사단은 1792년 정조 임금이 퇴계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도산서원에서 별도로 치른 과거시험(도산별과·陶山別科)의 역사적인 사실을 기념해 1796년 세워졌다. |
포럼은 인문학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세계적 교류와 협력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매년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실천적인 인문적 가치를 주제로 글로벌 학자, 정책 결정자,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모여 다양한 학술 발표, 세션 토론, 문화 프로그램 등을 통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권기창 안동시장은 “물질만능주의, 인공지능(AI)의 대두 등으로 인간성이 날로 상실되는 시대에 국내외 도시 간 인문학 교류 협력 플랫폼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의 틀을 넘어 글로벌 민간 교류 협력체를 구축하고자 지난해 창립 총회를 가진 세계인문도시네트워크(World Humanistic Cities Network·WHCN)도 더욱 심화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현재 WHCN 가입 현황은 22개국 54개 도시에 이른다.
권 시장은 “자기 성찰과 타인 존중, 조화로운 공동체를 중시하는 퇴계정신을 기반으로 단순한 전통 계승이 아닌, 21세기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천적 프로젝트로 인문도시네트워크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동이 우리 사회의 중심, 세계인의 인문 가치관의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펼쳐 나가겠다는 포부다.
실제로 안동시는 퇴계정신을 현대에 적용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초등학생을 위한 인성 교육 프로그램, 퇴계정신을 기반으로 한 공직자 윤리 교육, 퇴계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기업 교육 프로그램 등이 그 예다. 안동은 과거 유학의 도시에서 벗어나, 오늘날에도 통하는 가치와 철학을 실천하는 ‘철학적 도시’로 진화하고 있다. 또한 퇴계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연극·전시 등이 꾸준히 제작되며 그의 정신을 대중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퇴계 이황의 성가(聲價)는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대학자로 자리매김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 등 가히 세계적으로 학덕(學德)이 알려지고 있다. 나라 안팎에서 다종다양한 연구 및 저술 활동, 학술대회 등 존모(尊慕)의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는 것은 비단 학문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본받을 점이 많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 꼬장꼬장한 유교 사회에서 빼어난 학문적 성취와 함께 흠잡을 데 없는 언행과 원만한 인격으로 주위를 밝힌 특별한 존재였던 까닭이다. 그렇기에 퇴계의 정신과 삶은 오늘에도 되새기고 거울로 삼아야 할 값진 유산이다.
퇴계가 한국 정치판을 본다면…
퇴계 선생이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 특히 정치판을 굽어보신다면 아연실색하실 게 틀림없다.
지난 10월 13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초유의 대법원장 질의를 놓고 벌어진 범여권 의원들의 ‘사법 수장 조리돌림’ 사태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장을 감금한다”며 야당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은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약 90분간 고성과 인신공격성 막말이 오가는 상황을 견뎌야 했다. 사법부 수장을 향한 정쟁성 ‘모욕 주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출된 권력’임을 방패 삼아 헌법적 권력에 의해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사법부를 유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국감장에서 나이가 어린 야당 의원에게 대놓고 보란 듯이 “너한텐 반말 해도 돼”라고 말하는 여당 중진 의원, 선수(選數)가 적은 여당 의원에게 “초선은 가만히 있어”라는 말을 내뱉는 야당 중진 의원, “한주먹거리” “내가 이겨” 등 원색적 비난을 주고받은 의원 등 낯뜨거운 장면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한마디로 상대에 대한 존중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아수라장의 단적인 사례다.
그런가 하면 국회 국정감사 기간 딸 결혼식으로 논란을 빚은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이 대기업·언론사 관계자 이름과 축의금으로 추정되는 액수가 적힌 명단을 지난 10월 26일 텔레그램을 통해 보좌진에게 전달하는 장면이 한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됐다. 해당 메시지에는 피감기관 및 기업들 목록 옆에 ‘100만원, 20만원, 50만원, 30만원, 총 930만원’ 등의 액수가 나열돼 있었다. ‘900만원은 입금 완료’ ‘30만원은 김 실장께 전달함’ 등 메시지도 적혀 있었다.
퇴계와 고봉의 서신 논쟁
생전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검소 질박한 삶을 살다 간 퇴계 선생의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선생은 인권을 존중하여 노비를 대할 때도 존댓말을 했을 정도로 신분이나 성별,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예로써 대했다. 모든 사람을 중히 여기며 사회적 윤리와 도덕적 책임을 다하는 것을 중시한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했던 퇴계의 겸허함이야말로 현재 한국 사회에 필요한 자세가 아닐는지.
고소·고발은 물론 막말과 혐오가 당성(黨性)의 잣대로 여겨지는 극단의 정치판을 볼 때마다 국민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어느 때보다 ‘정의’를 말하는 사람이 많은 지금이지만, 오히려 사회의 갈등과 반목은 커져 가고 있기에 퇴계 선생의 정신과 삶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퇴계는 “어찌 자신만 옳다고 할 수 있겠나?”라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겸손을 실천했다. 자신보다 26세나 어리고 직위도 한참 낮은 신진 유학자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과 8년 동안 120여 통의 편지를 교환하며 사단칠정(四端七情)에 관한 논쟁인 ‘사칠논변(四七論辯)’을 전개했는데,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고봉을 ‘고마운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항상 진지하게 대했다. 고봉이 퇴계의 주장을 반박하는 편지를 보내왔을 때, 퇴계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자신의 주장을 재검토하고 고봉의 반박을 수용한다. 퇴계는 이렇게 자신의 대유학자로서의 위명(威名)만 믿고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의견이라도 열린 마음으로 경청했다.
퇴계의 일생은 수양(修養)과 실천의 삶
| 김병일 도산서원 원장 겸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사진=도산서원 |
자신만이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이론도 귀담아 듣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예의를 다해 대하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항상 어질고 의롭고 바르게 살려는 태도를 유지하는 그런 자세야말로 전형적인 ‘섬김(servant) 리더십’의 모습이다. 퇴계 선생은 일찍이 16세기에 봉사자 리더십, 사람 중심 리더십을 몸소 실천한 선각자이다.
김병일(80) 도산서원 원장 겸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은 이런 퇴계의 마음가짐, ‘선비정신’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정신적 가치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은 발전하고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오히려 정신문화는 빈곤해졌다”며 “겸허함과 배려를 보여 준 퇴계의 선비정신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학문과 덕성을 겸비한 선비정신을 본받고, 겸손과 배려를 실천한 퇴계정신을 통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인성(人性)의 회복이 절실하기에 청렴과 공감의 선비정신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소중한 가치라는 것이다.
아울러 선비정신, 즉 유학이 추구하는 가치의 실천을 모두가 잘되는 ‘대동사회(大同社會)’라고 김 원장은 풀이했다. 이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퇴계는 ‘소원선인다(所願善人多·착한 사람이 많아지길 소원함)’라고 표현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착한 사람이 많아져 세상이 살기가 좋아지려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정신이 실현돼야 한다는 것. 물아일체란 나와 타인이 하나라는 의미로 유학의 기본 정신은 바로 이 물아일체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만인이 형제이자 나의 이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선비정신이라는 설명이다.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21세기,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사회 속에서 퇴계 이황의 철학이 이처럼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의 사상이 ‘인간답게 사는 삶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기 때문이다. 퇴계는 지식보다 ‘성찰’을, 경쟁보다 ‘공존’을, 권력보다 ‘겸손’을 강조했다. 이는 오늘날 지나친 자본주의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삶의 나침반이 된다. 퇴계 이황은 단순한 과거의 위인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묻는 지혜로운 스승으로 남아 있다.
퇴계 선생은 상대가 누구든 간에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삶을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일생을 통해 마음에 새기고 실천한 ‘사무사(思無邪·마음에 간사함이 없음)’ ‘무자기(毋自欺·자기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무불경(毋不敬·항상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라)’ ‘신기독(愼其獨·혼자 있을 때도 행동을 바로 하라)’ 등 선생의 네 가지 좌우명은 오늘날 도덕과 품격이 무너진 사회에 죽비(竹篦) 같은 말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