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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1사단,고향땅 평양을 미군에 앞서 제일 먼저 밟다.

한문역사 2026. 3. 29. 06:51

백선엽의 1사단, 미군 정예를 제치고 고향 땅 평양을 먼저 밟다

유광종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이사
입력 2026.03.13. 03:00업데이트 2026.03.1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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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정예 1기병사단과 '평양 입성' 경쟁
'모스키토' 정찰기가 선두 경쟁 중계
1사단이 40분 차로 앞서…한국군의 기개

미 1기병사단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대동강 남쪽 선교리에 선두 입성한 뒤 1950년 10월 19일 백선엽의 1사단 장병들이 평양에 들어서 시가전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백선엽 장군 기념재단

백척간두에 걸린 위태로운 국가 운명을 지탱케 한 백선엽 1사단의 다부동 전투는 ‘구국의 전투’라고 부를 수 있다. 그로써 1945년 12월 월남해 낯설기만 한 서울에 온 백선엽은 자신의 이름을 떨쳤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군 주요 지휘관으로서 다부동 전투는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성명(成名)의 전장이었다.

그 뒤 벌인 유엔군의 북진 공로(攻路)에서 미군의 최정예 1기병사단과 선두 다툼을 펼치다 끝내 그들을 물리치고 평양에 첫 입성한 진격전은 그의 이름을 더 크게 세상에 알린 계기였다. 그러나 개인적인 승리에 그치지 않았다. 한반도를 강점했던 일본 군대가 남긴 각반, 구식 소총, 허름한 군모 등을 걸치고 출범했던 후진적인 한국 군대가 미군 최정예와의 선두 경쟁에서 당당하게 승리를 거뒀다는 의미가 더 컸다. 몇 수 아래 군대로 깔보기만 했던 미군 시선에서 백선엽 1사단의 진격은 한국 군대의 커다란 잠재력을 과시하는 작전이었다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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