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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아버지의 육아일기, 성재일기

한문역사 2026. 5. 4. 11:24

조선 아버지의 ‘육아 일기’…성재일기로 본 16세기 교육 풍경

오종명 기자2026. 4. 2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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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베끼고 스승 찾아 보내며 자녀 학업 직접 챙긴 기록
한국국학진흥원 공개…가정·지역사회 함께한 전통 교육 실상
▲ 성재일기(1577(정축, 선조10)1월) 봉화금씨 성재종택 기탁자료,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조선시대에도 아버지는 자녀의 학업과 생활을 세심히 돌봤다.

책을 직접 베껴 주고, 스승을 찾아 보내며, 먼 길을 동행하는 모습까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의 '부모 돌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어린이날을 맞아 조선 중기 문인 금난수(1530~1604)의 '성재일기(惺齋日記)'를 통해 조선시대 자녀 교육과 돌봄의 일상을 소개했다. '성재일기'에는 네 아들 경·업·개·각의 독서와 과거 준비,

스승에게 나아가 배우는 과정이 날짜별로 기록돼 있어 당시 교육의 실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기록 속 자녀 교육은 집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1576년 1월 15일에는 셋째 아들 금개가 이황의 손자 이안도에게서 '고문선' 전질을 빌려 온 사실이 등장한다.

같은 해 8월에는 첫째 금경과 둘째 금업이 별시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로 떠났다가 9월 돌아온 기록도 남아 있다.

1577년에는 막내 금각이 '논어' 읽기를 시작하고, 둘째 금업은 봉화현에서

조목에게 '고문진보'를 배우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는 조선시대 교육이 친족과 지역 학문 네트워크 속에서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역할은 더욱 구체적이었다.

1580년 금난수는 막내 금각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가 아이가 학질을 앓자 역참에 머물며 돌봤다.

이동 중에도 학업은 이어졌다. 금각은 '사략'을 하루 10장씩 외우며 공부를 지속했다.

특히 1585년 기록은 아버지의 교육 열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금난수는 아들이 읽을 '강목'을 직접 베껴 쓰기 시작했다. 공무와 제사, 손님맞이로 바쁜 가운데서도 매일 7장에서 10장씩 필사를 이어 갔고, 두 달여 만에 일곱 번째 책까지 완성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마련한 책을 받아 하루 15장 이상 읽고 외우며 학습을 이어 갔다.

스승을 찾아 보내는 일도 중요한 교육 방식이었다.

1586년 금각은 허전한에게 나아가 한 달 가까이 머물며 공부한 뒤 귀가했다. 자녀에게 맞는 배움의 환경을 마련하는 것 역시 부모의 역할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성재일기는 조선시대 아이들이 책을 읽고 과거를 준비하며 스승에게 배우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생활 기록"이라며 "어린이날을 맞아 전통사회에서도 아이의 배움이 가정의 중요한 관심사였음을 되새겨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기록은 조선시대 교육이 단순한 훈육을 넘어, 가정과 스승, 지역 사회가 함께 만들어 간 '공동의 배움'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오늘날 자녀 교육을 둘러싼 부모의 역할을 돌아보게 하는 역사적 사례로도 의미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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