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동남풍은 부는데 황개가 없다

삼국지의 압권은 누가 뭐래도 적벽대전을 앞두고 벌어지는 위오촉 3국 인재들의 치열한 전략전술 게임이다.
208년11월 하북을 평정한 조조의 80만 대군이 천하통일을 목표로 장강을 건넌다.
조조의 대군을 맞는 유비와 손권. 유비의 책사 제갈량과 오나라 손권의 책사 주유와 노숙은
머리를 맞대고 머리를 짜낸다. 오나라 출신으로 유비에게 의탁하는 방통은
조조에게 연환계를 건의해 조조군 병선을 모두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 대승의 기반을 닦는다.
제갈량은 사흘 밤낮 하늘에 기도를 올려 한겨울에 동남풍을 부른다.
전대미문 전설적인 전승에 마지막 남은 숙제, 苦肉之策이었다.
오나라의 노장 황개가 나섰다. 황개는 나이어린 도독 주유와 말싸움 끝에 피투성이가 되도록 곤장을 맞는다.
황개가 누구인가? 선대 손견으로부터 손권의 형 손책을 거쳐 3대째 전쟁을 누빈 백전 노장이다.
그 황개가 자신을 희생해, 조조에게 거짓항복할 명분을 만들고 마침내 조조군 본진에 쳐들어간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안다.
1천800년 뒤인 2026년6월 한반도에서는 영남에서 동남풍이 불기 시작해 충청도를 지나 서울을 강타하고 있다. 지방선거 판세 이야기다. 한달 전만 해도 여권은 압도적인 지지율을 바탕으로 15:1의 전무후무한 압승을 꿈꿨다. 아무 경력없는 듣보잡 후보조차 지지율이 4선 현역 시장에 대권주자 상수로 꼽히는 거물 현역 시장에 20% 앞설 정도였으니. 여권의 태도는 자신감을 넘어 오만으로 비칠 정도였다. 절대 열세인 국민의힘은 대구 하나 더 건지기를 구걸할 뿐이었다.
손유동맹의 적벽대전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처지였다.
그런데 5월 둘째주, 선거를 3주 앞두고 판세가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변곡점은 김부겸의 대구시장 선거사무소 개소식이었다.
험상궂은 이미지의 정청래가 전현직 배지 60명을 대동하고 대구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민심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미 공소취소 특검과 부동산 정책, 이란 전쟁과
한미 동맹 위기까지 겹쳐 여권은 옴짝달싹 못하는데….
스스로 연환계에 걸린 꼴이다. 때마침 동남풍도 거세게 불어온다.
화약과 기름을 지고 조조의 본진으로 뛰어들 황개가 없다.
모두가 택도 없이 자신이 주유와 제갈량이라고 나댄다. 아무도 황개 역할을 자임하지 않는다.
한동훈이든 장동혁이든 이진숙이든 셋 중 누구 하나라도 황개가 되면 대승일 텐데….
국민의힘과 보수 지지층으로서는 勿失好機, 아쉽기 짝이 없다.
반면 민주당으로서는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한국 정치에서 뭐를 해서 대통령 된 사람은 딱 하나 이명박 뿐이다. 대기업 CEO로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어냈고, 서울시장으로 청계천 살리고 서울 교통체계 혁신하고 주택난을 해결했다. 정치의 세계는 별나서, 뭐 해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대성하는 일은 드물다. 버리고 희생하고, 탄압받고 박해받아야 스타가 되고 대권주자가 된다. 자신을 버려야 더 큰 것을 얻는다. 한국 정치가 특히 그렇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이재명, 역대 대통령은 뭐를 해서 대권주자 되고 대통령 된 게 아니다. 대부분 정권의 탄압을 받아 대권주자가 되고 대통령이 되었다. 윤석열도 박근혜, 문재인 정권이 탄압하지 않았다면 평범한 검사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재 국민의힘 계열 정치인 가운데는 희생하고 탄압받은 자가 별로 없다. 모두가 "니가 가라 하와이"만 외치며, 자리싸움에 여념이 없다.
그나마 대구시장 후보로 지지율 1위였던 이진숙이 수갑을 찼고, 당의 컷오프를 받아들여 자기를 버리는 모습을 보였고, 정진석 전 비서실장이 보궐선거 출마 의지를 접었다. 오세훈 서울시장만 해도 20년 전 불출마 선언 하나로 서울시장 5선과 차기 대권에 도전한다. 그만큼 정치에서는 자신을 버려야 산다.
한동훈, 장동혁에게 권고한다. 법조문 몇 개 주워섬기는 알량한 지식으로 제갈량인 척 하지 마라.
제대로 전투 한 번 치르지 않은 주제에 주유 행세 하지 마라.
차라리 지금 황개가 되어라! 그래야 더 길게 더 크게 살아난다.
김구철 전 한국기자협회 부회장, 금강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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