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태의 신노인 산책] 돈의 심술

가난한 청년 어부가 어느 날 엄청 큰 진주를 품은 조개를 잡았다.
갑자기 찾아온 그의 행운이 불행으로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진주를 훔치러 침입한 도둑과 싸우다 어부는 도둑을 살해하게 된다.
가족과 함께 도망자 신세로 쫓기던 그는 하나뿐인 아들을 추격자의 총알에 잃기도 한다.
긴 도주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어부는 재앙의 원인이 된 그 진주를 바다에 던져버린다.
미국 작가 존 스타인 백의 유명한 소설 『진주』의 줄거리다. 이 작품은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져 수많은 관객을 감동시켰다. 횡재가 재앙이 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다.
횡재수에 가까운 천문학적 이익을 남긴 기업에서 성과급을 둘러싸고 벌이는 '쩐의 전쟁'을
보면서 나는 오래전에 읽었던 이 소설이 생각났다. '돈이 또 심술을 부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라서다. 성과급 다툼이 다른 기업으로도 번져 국가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까 봐 걱정도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성과급 파도는 들불처럼 번질 조짐이다. 노사가 다투고,
노동자끼리 다투고, 주주가 들고나온다. 제 몫 챙기기 싸움 속에 기업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소리는 잦아든다.
'돈은 좋은 하인이지만, 고약한 상전'이라는 속담에서 보듯, 돈은 집착의 대상이 되었을 때
화근이 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인 돈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돈은 독을 뿜는다.
한자어 '돈 전(錢)' 자에는 돈을 경계하는 모양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황금을 뜻하는 글자와
두 개의 창이 뒤엉킨 모습이 합쳐진 모양이다. 돈이 자칫 인간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염려를 형상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노년에도 돈의 사슬에서 풀려나지 못한다면 불행한 일이다.
무소유의 삶을 산 것으로 잘 알려진 법정 스님의 일화 한 토막이 생각난다.
스님은 지인한테서 선물 받은 난(蘭) 한 포기를 정성스레 키우고 있었다.
어느 날 물을 주면서 바깥에 내어 놓은 채 길을 떠났다. 그런데 난을 내놓은 곳에
햇볕이 들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스님은 급하게 가던 길을 되돌아와 난을 그늘로 옮겨놓고
다시 집을 나서야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스님은 난 한 포기 가지는 것도 쓸데없는 소유로 인한
번뇌라 생각하고, 그 난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렸다고 했다.
"돈을 묘비에 쌓아 둘 이유가 없다"라는 올해 96세인 워런 버핏의 말처럼 황혼의 나이에 많은 돈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전설적 투자자인 그는 70세부터 기부를 시작해 2025년까지 한국 돈으로 80조
원을 자선단쳬 등에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를 사회로부터 얻었으니 사회로 돌려줘야 한다"
라는 말을 평소에 즐겨 했다고 한다. 세 자녀에게는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 대신에 그들이 운영하는
자선단체에 상당량의 주식을 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돈은 물려주지 않겠다"는
자신의 다짐을 실천한 셈이다.
부자로 죽는 것은 가난뱅이로 죽는 것보다 더 딱한 일일 수 있다.
법정으로 번지는 부자들의 상속분쟁이 해마다 크게 늘어난다는 뉴스가 자주 등장한다.
내가 구독하는 신문의 2025년 10월21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은
'혈육 간 상속 전쟁 연 3000건'이었다. 법정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가족끼리
돈 때문에 원수로 돌아서는 숨겨진 '전쟁'은 또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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