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가깝게 지내던 유가형 시인이 헌시(獻詩)를 낭송한다고 했다. 난감했다. 손수, 운전을 못해 오지인 망정마을을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전날 칠곡향교 김정립 전교로부터 전화가 왔다. 배 회장 행사에 가자고 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주민들이 모여 있었고 칠곡군청과 칠곡군의회, 보훈청,
군 부대장, 안보 관련 단체 임원과 회원도 참석했다.
무엇보다 마을 주민이 주관한 행사라는데 의미가 컸다.
고지를 오르던 길을 '호국 평화의 지겟길'로 명명하고 지게 모형을 설치했다.
식전 행사로 유가형 시인의 헌시 낭송이 있었고 이어 한국무용가의 진혼무(鎭魂舞)가 펼쳐졌다.
이어 제관들의 엄숙한 제례와 각 기관을 대표하는 사람의 축사로 행사가 종료되었다. 특히, 유 시인의 군번 없는 민간인으로 전투에 참가하여 큰 희생을 치른 전쟁의 숨은 주역
지게 부대원들을 위로(慰勞)하는 헌시 「그날의 영웅들」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았다.
「그날의 영웅들」
하늘도 땅도 통곡하며 핏빛으로 물든 낙동강 전선 /
열다섯 번이나 쓸려가고 밀려오던 파고 /
숨 가빴던 328고지 /
수암산 유학산 기반산 황악산을 수시로 오르내리며 /
군번도 없이 수백 명이 목숨을 /
헌 신짝처럼 내던진 지게 부대 /
삼베 실 같은 할머니의 하얀 가르맛길 치열했던 각 능선에 걸쳐 놓고
총알이 머리 위로 제비처럼 휙휙 날아다니고 /
쇠 잠자리도 떨어지는 폭우 속 /
군수물자 지고 불개미처럼 오르내리는 지게 부대 곁에는 /
검은 죽음이 바싹 붙어 다녔다 팔월 염천 피부가 벗겨지고 총알이 박혀 앓던 고지들 /
귀를 찢는 포탄 소리에 /
가르마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갈 앉기를 수천 번/
질척거리는 발밑엔 돌멩이도 풀꽃도 목이 헐어 짓물렀고 /
쏟아지는 잠은 죽음이 무엇인지 알 리 없었다/
영혼이 날아간 피 묻은 군복을 입은 손에는 /
허공이 한 줌 쥐어져 있었을 뿐/
여기저기 터지는 파편은 공중제비를 돌고/
죽음이 물구나무를 섰던 바지저고리 길
군번없는 용사 지게부대. 출처 중앙일보, 2022
"머리를 숙이고 앞만 보고 걸어라."라는 지침에 /
가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섰던 /
당신들이 계셨기에 지켜낼 수 있었던
이 나라 이 강토 우리들의 영웅들이여!
헌시의 전문이다. 국군 제1사단 15연대와 북한군 제3사단이 벌인 3. 28고지 전투는 1950년 8월1일~1950년 9월4일까지 55일 동안 아군 1만여 명, 적군 1만7천500명이 희생되었으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게 한 낙동강 방어 전투 소위 "다부동 전투"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12일동안 교전 중 15번이나 주인이 바뀐 3. 28고지
그러나 어느 곳의 전투보다 더 가슴을 저미는 것은 8월13일~8월24일까지 불과 12일간의 전투였지만
고지(高地)의 주인이 하루 한 번이 아니라, 어떤 날을 두 번 즉 모두 15번이나 바뀔 만큼 치열했고
그 전투의 승리에는 지게 부대원(정식 명칭, 한국노무단)의 활약이 컸다는 점이다.
다부동 전투 작전상황도
적의 공격으로부터 숨을 곳이 없는 바위산 3. 28고지는 방어에 불리했다.
하지만 적군이 주둔하고 있는 낙동강을 가장 가깝게 내려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만에 하나 북한군이 고지를 점령하면 왜관으로 진출하여
대구로 쉽게 갈 수 있게 되므로 반드시 사수해야 할 전장(戰場)이었다.
칠곡군 석적읍 망정리 호국목(護國木)이 더이상 총탄의 흔적으로 썩지 않도록 방부제를 발랐다.
총검으로 찌르고 치고받으며 대혈전 끝에 지켜냈다.
잔악무도한 그들은 남한에서 강제 징집한 의용군에게 독한 술을 먹여
이성을 잃게 하여 돌격하게 하고, 뒤에서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독전대(督戰隊)가
총을 겨누며 물러서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피란에서 돌아온 주민들이 살펴보니 호(壕)마다 시신 5~6구가 들어 있었고,
골짜기마다 30~40구씩 널브러져 있어 보이지 않게 얕게 묻어주는 데 그쳤다고 한다. 이런 처참한 현장을 보면서 호국과 평화의 소중함과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며 위령제를 지낸다고 했다.
칠곡군 망정리 주민들이 세운 우리나라 유일의 호국목 표지판.
망정마을에는 또 다른 하나 평화의 기념물이 있다. 바로 호국목(護國木)이다. 식물 사전에 호국목은 없다. 또한, 그렇게 불리는 나무는 전국 어디에도 없다. 마을 입구 큰 느티나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군과 적군, 지게 부대원들이 함께한 전투 현장을 지켜보면서 살아남은 끈질긴 생명력의 나라 지킴이 나무이다. 비 오듯 날아오는 총탄을 온몸으로 막아 가슴 속에 무수한 파편을 훈장처럼 품고 또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