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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투구꽃과 碑木

한문역사 2026. 6. 4. 16:13

세상읽기) 투구꽃과 비목(碑木)

최미화 기자 님의 스토리
 
 

시골집 꽃밭에는 투구꽃이 있다. 청송 야생화 꽃집에서 분양받았다.

매년 여름이면 멋진 투구를 쓴 병사를 대하듯 꽃을 보는 재미가 있다.

투구꽃은 깊은 산, 바위가 많은 계곡이나 습한 곳에 자라는 토종 꽃이다.

꽃 색은 파랑 또는 자주색이다. 꽃 모양이 옛 병사의 투구를 닮아 투구꽃이라 한다.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말아요.’이다, 왠지 병사의 임무와 연관 된 듯하다.

투구꽃은 또 죽음과 관련이 있다. 특히 뿌리는 초오(草烏)라는 약재로 쓰인다.

독성이 강해 잘못 사용하면 목숨을 위태롭게 한다. 투구꽃은 전쟁과 병사,

그리고 약성이 죽음과 닿아있어 새삼 자연의 신비함을 느낀다.

 

나는 투구꽃의 상념에 젖다 문득 오래전 강원도 양구의 깊은 계곡에서 본 투구꽃이 떠올랐다.

당시 나와 일행은 최전방 견학의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정훈(政訓)장교의 안내를 받아

거대한 ‘평화의 댐’에 올랐다. ‘평화의 댐’은 북쪽의 수공에 대비해 국민 성금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 댐을 구경하고 계곡에 내려와 주위를 살피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홀로 서 있는 비목(碑木)을 보았다.

비목을 본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돌무더기 위에 다듬지 않은 나무를 십자로 대고 얼기설기 엮은 모습,

그 위에 씌워진 녹슨 철모는 노래의 가사처럼 ‘비바람 긴 세월’로 인해 나무는 삭고 부서져

앙상한 형해(形骸)처럼 서 있었다. 저 먼 계곡엔 산안개가 그날의 포성처럼 자욱하게 번져갔다.

나는 다시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감정을 누르며 비목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을 올렸다.

신기하게도 주변에는 파란 꽃을 피운 투구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환청인가!

비목의 당사자인 병사의 소리가 들렸다.

‘사랑하는 이여! 우리 모두 어딘가 쉴 곳이 있어야 합니다. 내 영혼이 쉴 자리는 조국의 아름다운 산하,

나에 대한 그대의 사랑과 이해가 사는 곳입니다.’

잠시 이런 생각을 했다. 비목은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닐 거야.

이곳 양구군 천미리 곳곳은 물론 인근 파로호 근처,

아니 격전이 벌어진 우리의 산하 어느 곳에도 비목은 있을 거야.

어쩌면 비목 하나 꽂아두지 못하고 전사한 젊은 넋이 수도 없이 많을 테지.

이런 생각에 젖다 보니 주위에 있는 관목 하나, 하나가 모두 비목처럼 보였다.

최근에 한국 전쟁 당시 국군의 최후 방어선인 칠곡군 다부동 유학산 전투 현장에서

유해를 찾는 일을 영상으로 보았다. 그 결과 조국을 위해 산화한 다수의 유해와 유품을 찾아냈다.

그중의 일부는 고통으로 웅크린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비록 70여 년 전 일이지만 그 아픔은 우리의 가슴에 각인처럼 새겨져 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곡으로 잘 알려진 다게스탄의 위대한 민족시인 ‘라슬 감자토비치 감자토프’는 전사들을 위한 서정시 백학(白鶴)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은/ 이국땅에서 전사하여/ 흰 학으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들은 하늘을 날며/ 우리에게 애원합니다/ 우리는 그러나 하늘을 보며 침묵합니다. -후략-

유월의 하늘에도 ‘감자토프’ 시의 배경이 되는 ‘카프카스’ 전사들처럼 한국 전쟁의 젊은 영혼들이 흰 학이 되어 하늘을 날아다닐지도 모른다.

하청호 대구문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