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語西話] 세도가의 무릉도원 석파정, 이젠 모두의 쉼터

조선 후기 權門勢族들은 黨爭 정치의 틈바구니 속에서 緊張感을 解消하고자 나름의 避身處를 찾았다.
스트레스를 달래고자 훌쩍 다녀올 수 있는 곳을 수소문했다.
이구동성으로 자하문 고개 너머 서쪽 언덕을 지목했다.
지금은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면 금세 도착하는 곳이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니 하늘까지 닿을 듯한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인근 주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오래된 기도터다.
제대로 기(氣)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있다.
사방이 화강암 덩어리다. 말 그대로 석파(石坡·바위 언덕)라 하겠다.
이곳에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은 물가에 청나라 양식을 가미한 정자를 지었다.
바위가 주는 강렬한 힘을 담아내고자 석파정(石坡亭)이라 불렀다.
내친김에 호(號)도 석파로 바꾸었다.
왕권 강화를 염두에 둔 근육질 같은 직설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예술가적 면모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붉은 단풍을 바라보는 누각,
즉 ‘유수성중관풍루(流水聲中觀楓樓)’라는 이름으로 덧칠을 했다.
이전 주인이던 안동김씨 영의정이었던 김홍근(1796~1870)이 머물던 시절에는
삼계정사(精舍·고요한 집)가 있었다. 거북바위 일부분을 깎아 수직 평면을 만들고서
삼계동(三溪洞)이란 글자까지 남겼다. 3개의 계곡물이 모인다는 의미다.
동(洞)은 동천(洞天)이다. 신선들이 산다는 별유천지(別有天地)를 말한다.
이 골짜기로 들어왔을 때만큼은 사대문 안의 복잡한 일을 놓아버릴 수 있는 무릉도원을 꿈꿨을 것이다.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각자(刻字)는 ‘소수운렴암(巢水雲簾菴)’이다.
원래 주인장인 조정만(1656~1739)이 동문수학한 권상하(1641~1721)에게 받은 글씨다.
그런 사연을 1721년 암반에 새겨 두었다. 권씨는 별장을 가진 벗을 가까이 두는 것이
여러모로 실리적이라 판단했던 모양이다.
관리 부담도 없고 필요할 때만 잠시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물을 둥지(巢) 삼고 구름을 가리개(簾)로 삼는 작은 집(菴)”이라는 최고의 작명 실력으로 보답했다.
임차료는 건물주의 은자(隱者)적 풍모를 한껏 추켜세우면서
자신의 지적 소유권까지 넌지시 포함된 가격으로 지불했다고나 할까.
좋은 자리는 욕심 내는 사람이 많기 마련이다.
이처럼 종로구 부암동 석파정 주변은
당시 세도가들의 정치적 부침이 그대로 드러나는 별서(別墅) 구역이기도 하다.
송나라 대혜종고(大慧宗杲·1089~1163) 선사는 집 혹은 땅과의 인연을 토지연(土地緣)이라 했다.
명당이야 변함없겠지만 인연 따라 주인은 늘 바뀌기 마련이다.
좋은 터에서 주인 행세를 오래 하고 싶다면 항상 이웃에게 덕을 베풀라고 했다.
개인 별장이 아니라 지금처럼 공공 미술관으로 바꾸고서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차별 없는 문화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하겠다.

조선 후기 권문세족들은 당쟁 정치의 틈바구니 속에서 긴장감을 해소하고자 나름의 피신처를 찾았다. 스트레스를 달래고자 훌쩍 다녀올 수 있는 곳을 수소문했다. 이구동성으로 자하문 고개 너머 서쪽 언덕을 지목했다. 지금은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면 금세 도착하는 곳이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니 하늘까지 닿을 듯한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인근 주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오래된 기도터다. 제대로 기(氣)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있다.
사방이 화강암 덩어리다. 말 그대로 석파(石坡·바위 언덕)라 하겠다. 이곳에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은 물가에 청나라 양식을 가미한 정자를 지었다. 바위가 주는 강렬한 힘을 담아내고자 석파정(石坡亭)이라 불렀다. 내친김에 호(號)도 석파로 바꾸었다. 왕권 강화를 염두에 둔 근육질 같은 직설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예술가적 면모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붉은 단풍을 바라보는 누각, 즉 ‘유수성중관풍루(流水聲中觀楓樓)’라는 이름으로 덧칠을 했다.
이전 주인이던 김홍근(1796~1870)이 머물던 시절에는 삼계정사(精舍·고요한 집)가 있었다. 거북바위 일부분을 깎아 수직 평면을 만들고서 삼계동(三溪洞)이란 글자까지 남겼다. 3개의 계곡물이 모인다는 의미다. 동(洞)은 동천(洞天)이다. 신선들이 산다는 별유천지(別有天地)를 말한다. 이 골짜기로 들어왔을 때만큼은 사대문 안의 복잡한 일을 놓아버릴 수 있는 무릉도원을 꿈꿨을 것이다.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각자(刻字)는 ‘소수운렴암(巢水雲簾菴)’이다. 원래 주인장인 조정만(1656~1739)이 동문수학한 권상하(1641~1721)에게 받은 글씨다. 그런 사연을 1721년 암반에 새겨 두었다. 권씨는 별장을 가진 벗을 가까이 두는 것이 여러모로 실리적이라 판단했던 모양이다. 관리 부담도 없고 필요할 때만 잠시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물을 둥지(巢) 삼고 구름을 가리개(簾)로 삼는 작은 집(菴)”이라는 최고의 작명 실력으로 보답했다. 임차료는 건물주의 은자(隱者)적 풍모를 한껏 추켜세우면서 자신의 지적 소유권까지 넌지시 포함된 가격으로 지불했다고나 할까.
좋은 자리는 욕심 내는 사람이 많기 마련이다. 이처럼 종로구 부암동 석파정 주변은 당시 세도가들의 정치적 부침이 그대로 드러나는 별서(別墅) 구역이기도 하다. 송나라 대혜종고(大慧宗杲·1089~1163) 선사는 집 혹은 땅과의 인연을 토지연(土地緣)이라 했다. 명당이야 변함없겠지만 인연 따라 주인은 늘 바뀌기 마련이다. 좋은 터에서 주인 행세를 오래 하고 싶다면 항상 이웃에게 덕을 베풀라고 했다. 개인 별장이 아니라 지금처럼 공공 미술관으로 바꾸고서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차별 없는 문화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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