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전의 명장에서 군정의 전장으로… 서른둘 청년 육참총장의 탄생
유광종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이사
입력 2026.05.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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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정치 파동' 후 이종찬 후임 총장으로
야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시험대
밴 플리트 "말 많이 하지 말고 들어라" 조언

거친 야전(野戰) 현장을 전전했던 백선엽은 1952년 7월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임시 경무대가 있던 부산에서 일어난 정치 파동이 계기였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던 이종찬 중장이 돌연 사임했다. 이승만 대통령과 불화 때문이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제출했으나 국회가 부결했다. 이를 정치적 압력으로 돌파한 게 이른바 ‘부산 정치 파동’. 이 총장은 군 병력 동원을 거절했고, 결국 물러나야 했다.
야전의 맹장(猛將)으로 주가를 올리던 백선엽은 2군단 재출범을 순조롭게 진행하다가 육군참모총장 임명 소식을 들었다.
6·25전쟁 개전 때만 해도 대령 계급으로 1사단을 이끌었던 그는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짧게는 10개월에 한 단계씩 진급했다. 지리산 빨치산 토벌을 마쳤을 때 정일권, 이종찬 등과 같은 중장으로 진급한 상태였다. 미군의 탄탄한 신뢰를 등에 업고 그는 이종찬 총장 후임으로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야전 사령관에서 군정(軍政)을 총괄하는 참모총장으로 새 임무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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