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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에 한국군 최초 4성장군이 된 백선엽

한문역사 2026. 6. 13. 15:48

유랑 사단장'에서 한국군 최초 대장된 백선엽

유광종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이사
입력 2026.04.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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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이 세운 한국군 새 이정표
도망치기 바빴던 국군 지휘관들
새로운 리더십 보여주며 고속 진급

1952년 봄 한국군 현대화 첫 걸음에 해당하는 2군단 재창설 작업을 펼칠 당시 백선엽 장군. /백선엽 장군 기념재단

위 사진에서 보듯이 백선엽의 이마 위에, 그리고 어깨 위에 별이 하나씩 더해졌다. 6·25전쟁이 벌어지던 1950년 6월 그는 대령이었다. 그리고 임진강 일대에서 정신없이 적을 막다가 하염없이 밀려 낙동강 전선으로 내려가는 이른바 ‘유랑극단(流浪劇團)’과도 같았던 ‘유랑 사단(師團)’의 사단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후퇴 대열을 제대로 수습해 낙동강 전선에 임하면서 별 하나를 어깨에 달았다. 이어 이듬해 4월에는 강원도 강릉에 있던 1군단장으로 발령받으면서 별 하나를 더 달았다. 다시 이듬해인 1952년 1월에 지리산 숲 속에서 별 하나를 더 어깨에 얹었다. 호남선 철로까지 위협하던 빨치산을 제대로 섬멸한 공로였다.

그는 1953년 1월 한 계급 더 승진해 대한민국 최초 대장(大將)이 된다. 남들은 이런 ‘출세’와 ‘진급’의 코스를 “전쟁 중이라 얻은 행운”으로 가볍게 치부할 때가 많다. 아니다. 백선엽은 이 진급의 각 단계마다 미군의 매우 엄격한 ‘시험대’를 통과한다. 다부동 전투, 북진(北進) 혈로 개척, 평양 첫 입성, 중공군과의 조우전 속 성공적 후퇴, 서울 재(再) 수복, 강원도 전선의 북상(北上), 휴전회담 한국 첫 대표, 지리산 빨치산 토벌이다. 중장까지 진급하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역할이자 빛나는 전공(戰功)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