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파면안 폐기하십시오"… 인재 지키려 대통령에 맞서다
유광종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이사
입력 2026.05.08. 03:00업데이트 2026.05.0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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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장 일괄 진급시켜 조직 사기 제고
휘하 장군 파면하란 대통령 지시에 이의
"전투 지휘관을 지켜야 군이 산다" 신념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스타일은 백선엽과 전혀 맞지 않았다. 그는 늘 ‘일’을 찾아 먼저 움직이는 타입이었다. 격전이 벌어지는 다부동 전투 현장에서도 그는 시간이 아까워 사령관 자리가 아닌 무전실 무전기 옆에 앉은 적이 많았다. 전투 현장에서 날아들어오는 급보(急報)를 먼저 듣고 신속하게 판단을 내리기 위함이었다.
밤새워 무전기 옆에 앉아 있는 사령관 불빛에 비친 모습을 텐트 바깥에서 지켜봤던 장병들이 “사령관은 잠도 자지 않는다”고 수군대기도 했다. 1952년 7월 육군참모총장에 오른 뒤에도 그런 모습이었다. 당시 육군의 가장 절실했던 과제는 ‘전투력 증강’이었다. 6·25전쟁 개전 때 북한군에 심하게 밀렸었고, 그해 가을 압록강을 넘은 중공군에게 ‘쉬운 먹잇감’ 정도로 치욕적인 퇴각과 분산(分散), 와해(瓦解)를 거듭했던 뼈아픈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싸워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이 풀리지는 않는다. 그 뒤를 받쳐주는 훈련과 노력이 있어야 했다. 32세 나이로 육군참모총장에 오른 백선엽은 우선 그 점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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