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격렬한 논쟁 벌인 무초 미국대사, "당신네 잘못" 3차례나 지적
유광종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이사
입력 2026.01.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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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의 '북진통일' 주장에
"우리더러 포위당하라는 얘기?"
휴전회담 속 한·미 갈등 증폭

이승만대통령 우:정일권중장 한국군 육군총장
뒤 좌: 백선엽 소장 한국군 1군단장
1951년 7월 개성에서 벌어진 휴전회담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공산 측의 ‘잔꾀’에 가까운 행위들이 아군의 신경을 자극하면서 몇 가지 해프닝만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정도였다. 회담은 벌써 치졸한 말싸움으로만 번지고 있었다. 그러나 막후에서는 회담에 임하는 아군 진영 사이의 기 싸움이 먼저 번지고 있었다. ‘휴전선을 어떻게 그을까’라는 주제는 처음부터 아군 진영, 특히 대한민국과 전쟁 전반을 지휘하는 미국 사이의 매우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공산 측과 담판에 앞서 먼저 해결해야 할 대목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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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회담을 시작한 날은 1951년 7월 10일이었으나 사실상 진전은 거의 없었다. 공산 진영과 마주 앉아 휴전을 논하기 전에 사실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공감대’가 거의 없었다. 휴전선을 어떻게 획정하느냐에 대해서 특히 그랬다. 회담이 벌어진 지 6일이 지난 7월 16일이었다. 개성에서 유엔군 대표단은 공산 진영과 마주 앉았으나 역시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백선엽이 적은 휴전 일지에는 이날 공산 진영과의 회담을 마친 뒤 돌연 헬리콥터 편으로 서울 동숭동 미 8군 사령부를 방문한 기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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