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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과 아이젠하워의 첫 만남,노르망디 영웅과 마주하다.

한문역사 2026. 6. 13. 15:34

백선엽과 아이젠하워의 첫 만남… 노르망디의 영웅과 마주하다

유광종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이사
입력 2026.05.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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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겨울 극비 방한
국군 운명을 바꾼 '영어 브리핑'
한국군 전력 증강 이끈 승부수

야전에서 백선엽이 지켜봤던 우리 국군 전투력은 허점 투성이였다. 우리가 본래 못나서 제대로 싸우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일제(日帝)가 남기고 갔던 정강이에 두르는 각반, 그들이 또한 챙기지 못하고 갔던 99식 소총 등으로 아주 기초적인 무장(武裝)만 한 채 출범한 한국군은 김일성 군대와 용감히 맞서 싸웠지만 역부족일 때가 많았다. 압록강을 넘은 중공군은 그보다 더 노련한 군대였다. 그 중공군 앞에서는 지레 겁을 먹고 등을 보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육군참모총장에 오른 백선엽은 그런 점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기에 국군의 전력 증강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 제주도 모슬포 제1 훈련소의 시스템을 정비하고, 제2 훈련소인 논산도 경험이 풍부했던 옛 총참모장이자 원로에 해당했던 이응준 소장을 중장으로 진급시켜가면서 맡겼다. 국군 장교들의 급여 인상에도 신경이 쓰였으나 이를 건의하자 “군인들이 애전(愛錢·돈을 좋아하다)하면 나라가 망한다. 군인은 나라에 서비스해야 하는 것이야”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신념을 듣고 그만둔 일도 있었다. 그렇게 육군참모총장으로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밴 플리트 미8군 사령관으로부터 연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