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 성공률 100%… '그라운드의 AI' 이강인
38차례 패스로 체코전 지배
체코를 2대1로 꺾은 지난 12일(한국 시각)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는 한국 축구에 ‘이강인 시대’가 열렸음을 세계에 알린 무대가 됐다. 황인범이 1골 1도움을 기록하고, 오현규가 결승골을 터뜨린 가운데 경기 흐름을 틀어쥐고 공격을 진두지휘한 선수는 25세 미드필더 이강인이었다.

FIFA(국제축구연맹) 공식 경기 자료에 따르면, 이날 이강인의 활동 반경은 한국 수비진 바로 앞부터 중원에 집중돼 있었다. 후방에서 공을 받아 직접 전진하면서 공격수들에게 결정적인 패스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의미다. 그는 수비 진영에선 동료들과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경기 템포를 조율했고, 공격 지역에서는 날카로운 침투 패스로 체코 수비 뒷공간을 공략했다. 이강인의 패스를 받기 위해 손흥민과 이재성 등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이를 쫓던 체코 수비진은 일찌감치 체력적인 부담을 드러냈다. 이강인은 0-1로 끌려가던 후반 22분 황인범에게 절묘한 패스를 찔러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날카로운 크로스로 조규성의 헤더를 도운 2022 카타르 월드컵 가나전에 이어 두 대회 연속 도움을 기록했다.
체코전에서 이강인의 존재감은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이강인은 이날 패스 38개를 시도해 단 한 차례도 실패하지 않았다. 패스 횟수 자체는 황인범(79회), 백승호(63회)보다 적었지만 정확도와 효율성은 단연 돋보였다. 특히 파이널 서드(경기장을 세 구역으로 나눴을 때 최전방 지역)에서만 18차례 패스를 성공시키며 공격 전개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
공을 소유한 채 상대를 제치고 전진하는 ‘드리블 성공’도 5차례 기록했다. 월드컵 본선에서 한 선수가 드리블 5회를 성공한 것은 2018 러시아 월드컵 당시 에덴 아자르(벨기에) 이후 8년 만이다. 이강인이 드리블로 체코 수비를 흔들면서 빈 공간이 생겼고, 그는 이를 활용해 공격의 활로를 열었다. 전반전에 선보인 위협적인 중거리 슈팅 역시 그의 존재감을 확인시켜 준 장면이었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 축구의 중심에는 늘 손흥민(34·LA FC)이 있었다. 득점력은 물론 선수단에 끼치는 정신적 영향력까지 그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대표팀 전술 또한 손흥민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하지만 손흥민은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체코전에서도 6차례 슈팅을 시도하며 여전히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결정력과 스피드는 전성기 시절에 비해 다소 떨어진 모습이었다. 그런 가운데 홍명보호는 이강인을 중심으로 공격의 실마리를 풀어가며 짜릿한 역전승을 일궈냈다. 홍명보 감독은 이강인에 대해 “정말 똑똑하게 축구를 하는 선수”라며 신뢰를 보내고 있다.
이강인은 경기 후 자신의 활약을 앞세우기보다 동료들에게 공을 돌리는 성숙함을 보였다. 그는 “언제나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득점한 선수들뿐 아니라 벤치에서 응원해 준 선수들과 훈련 때 함께 준비한 동료들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손흥민에 대해서도 “흥민이 형이 상대 수비수들을 계속 끌고 다니며 팀에 큰 도움을 줬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유럽 축구계도 이강인의 활약을 주목하고 있다. 이강인은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주로 교체 자원으로 활용되며 챔피언스리그 등 주요 무대에선 출전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했다. 체코전 이후 유럽 팬들 사이에서는 “왜 이런 선수를 벤치에 앉혀 두느냐” “그럴 거면 우리 팀으로 보내 달라”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이적설이 제기된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들은 “그가 합류한다면 팀의 레전드인 앙투안 그리즈만과 같은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리버풀 역시 이강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주가가 치솟는 분위기다. 프랑스 매체 ‘풋 메르카토’는 “이강인이 월드컵 기간 내내 이런 경기력을 유지한다면 그를 영입하기 위해 많은 구단이 경쟁에 뛰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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